[선다방 출연기 ②] 삼청동 그 카페, 문 열기 10초

부제: 청심환도 소용없던 그날의 기억

by 유스타

D-Day, 이게 진짜일 리 없어

녹화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악몽을 연이어 꾸고, 살이 쭉쭉 빠지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 3주가 지나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촬영 당일에는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냥 가지 말까'란 생각이 들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촬영 전에는 기본적인 메이크업을 받고 가야 하기에 평소 다니던 명동 단골 미용실로 갔습니다. 담당 헤어디자이너분에게 "저 오늘 선다방 촬영 가요"라고 이실직고했더니 미용실이 난리가 났습니다. 다들 몰려와서 "진짜냐", "잘하고 와라" 응원해 주셨는데, 그 열렬한 응원을 받으니 심장이 더 쿵쾅대며 떨렸습니다.


한창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작가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다급했습니다."지금 화장받고 계세요? 너무 진하게 하시면 안 돼요! 직전 출연자분이 너무 힘을 주고 오셔서 화면에 좀... 최대한 자연스럽게! 수수하게 해 주세요!" 메이크업 담당자님에게 "최대한 안 한 것처럼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리고, 샵 직원들의 파이팅을 뒤로한 채 촬영지인 삼청동으로 출발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촬영장 가는 길

촬영장은 삼청동의 한 카페였습니다. 회사랑 멀지 않고 전에 우연히 지나가다 위치를 봐둔 터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가는 과정이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명동에서 삼청동까지 꽤 걸어가야 하는 거리인데, 긴장해서 그런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멍하게, 순식간에 촬영장 근처 삼청동까지 순간이동(?)했습니다.


촬영장 근처에서 연락 달라는 작가님의 말에 연락을 드렸더니 승합차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안에서 계약서 같은 종이에 사인을 하고, 유의 사항을 듣고, 허리춤에 마이크를 찼습니다. 사실 그때 계약서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액의 교통비가 지급이 된다 등의 내용 같았습니다. 이후 일반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마이크를 차니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아, 나 진짜 방송에 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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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꼬였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작가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여자분이 이미 도착해 계세요." 상대방 여자분이 수도권에서 오시는 분이라 차 막힐까 봐 일찍 출발하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하셔서 이미 카페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약속 시간보다는 꽤 일찍 온 건데, 혹시 지각한 개념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후 촬영 순서를 맞추기 위해 마이크를 찬 채 카페 옆 골목길에 숨어서 대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주말 삼청동에는 관광객을 포함한 유동 인구가 꽤 많았습니다. 골목에 서 있으니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더군요. "저 사람 뭐야? 선다방 아니야?" 하는 눈빛들. 정말 민망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계속 땅만 보고 한숨 쉬면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평온하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TV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

"이제 들어갈게요!!"

작가님의 큐 사인과 함께 카페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 멀리 카페 앞이 보이는데, 원래 이적 님, 유인나 님 등 카페지기분들은 안에 계셨는데 이날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다들 밖에 나와 계셨습니다. 날씨 좋은 4월의 봄날,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분들이 내 눈앞에 서 있으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더 긴장될 수밖에 없었던 건 TV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촬영장 바로 앞 그곳에는 수많은 스태프와 카메라가 있었고 상상 이상으로 압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중 나오신 이적 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오늘 멋지십니다"라고 해주셨는데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이적 님의 안내를 받아 카페 문 앞에 섰습니다. 이 문만 열면 됩니다. 지난 3주 동안 나를 피 말리게 했던 그 시간이, 지금부터 시작인 겁니다. 후우. 심호흡 한번 하고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드디어 입장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