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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성 Jun 01. 2023

이탈리아 북부 마을, 시르미오네에서

프롤로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시간은 언제나 내 옆을 성큼성큼 지나간다. 사실, 주의를 기울여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어른들 앞에서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요.’라고 말하면, 대개 어른들은 ‘나이 들을수록 더 빠르게 느껴질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른 아침의 가벼운 햇살과 산뜻한 공기가 좋아 먹다 남은 복숭아와 식빵을 들고 베란다에 나와 아침을 먹었다. 빵을 두 입 정도 먹고 아침과 곁들여 마실 커피를 내릴 생각이었는데, 모카(이탈리아의 커피 원액을 내리는 주방용품)로 커피를 내리는 것이 귀찮게 느껴져서 어제 선물로 받은 람부르스코(F가 맛 좋은 와인이라며 나에게 선물했다)를 잔에 따라 가지고 나왔다. 아침으로 와인을 곁들인 탓인지, 아침을 다 먹어갈 때쯤에는  내 몸의 저- 안쪽, 마음보다도 깊은 어딘가에서 뜨겁고 달콤한 구슬들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피처럼 붉은 와인이 혈관을 타고 전신을 순회하여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렇게 베란다의 의자에 누워 두 눈을 감으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또한 어떠한 언어로 들려왔다. 나는 알아듣지 못할 그들의 언어를 백색 소음 삼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창 밖에 보이는 하늘, 이국적인 빌라, 가로수가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내는 이곳, 시르미오네는 '밀라노, 베니스, 로마, 피렌체'처럼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매년 여름이면 유럽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탈리아스러운’휴가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아주 예쁜 마을이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내가 알기로는 주로 돈이 많은 이탈리아인, 혹은 독일인이다)  이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사 두고 온 여름을 시르미오네에서 보내기도 한다.

 

 시르미오네는 많은 사람들의 여름을 예쁘게 포장해준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Call me by your name)’을 촬영한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그 명성을 더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도 줄지어 이곳을 찾아오며 카메라에 가르다 호수와 시르미오네를 담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에는 올드타운으로 산책을 나가면 이곳저곳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따금 반가운 한국어가 들린다. 시르미오네에 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지만, 이 소중한 마을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글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이십 대 초반이었을 무렵 ‘사랑’이 가진 인력이 나를 어느 문 앞에 데려다 놓았고, ‘용기’라는 열쇠가 그 문을 열었다. 그렇게 그 문 뒤로는 나의 인생에서 이국적이고도, 특별한 경험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그렇다고 해서 결코 흔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을 담백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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