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마침표를 찍은 사람들

by 유월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었던 적이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단 어르신, 우두커니 앉아 혼잣말을 내뱉는 어르신, 기력 없이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시는 어르신. 수십 분의 침상을 지나다 보면 할아버지가 계셨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5년이 지나도록 요양원에서 지내셨고, 얼마 전 기나긴 병원생활을 마무리하신 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편안하셨을까. 오고 가는 환자들 사이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는 병원 침상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어쩌면 연명 치료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연명 치료는 가족의 이기심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간절한 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생각이 한 길로 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맴돌았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의 나도 이런 고민에 잠긴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한 번씩 고향에 들러 할아버지를 뵈러 가실 때마다 말이다. 병원에서 수년을 지내고 계신 할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비슷한 연세의 어르신들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계신지 궁금해졌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존엄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써 내릴 이야기는 죽음 앞에서 삶의 결말을 자신의 것으로 이끈 사람들에 대함이다.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저 김병국은 85세입니다.
전립선암으로 병원생활을 한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병세가 완화되기보다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습니다. 전립선암이 몸 곳곳에 전이가 되었습니다.
소변 줄을 차고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정신은 아직 반듯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능동적인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_ 김병국 할아버지의 생전 장례식 부고장


2018년 8월 14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김병국 할아버지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살아 있을 때 장례를 치르다니, 누군가에게는 꽤나 불쾌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김병국 할아버지는 "죽고 나서 장례 지내면 뭐하나, 살아 있을 때 작별 인사해야지."라고 말하시며 가족, 지인과 함께 생전 장례식을 치르셨다. 할아버지의 부탁대로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은 검은 옷이 아닌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오셨다. 부고장에 쓰인 그대로 사람들은 함께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눴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소 즐겨 들으시던 노래를 부르심으로써 자리에 참석해 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선일보


장례식을 떠올리면 항상 엄숙한 분위기 속에 눈물 흘리며 묵념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은 가라앉고, 영정 사진을 마주한 순간 억눌렀던 슬픈 감정을 토한다. 생전에 못 해주었던 것들,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고 말 못 한 과거에 한이 맺히기도 한다. 김병국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죽고 나서 장례를 지내봤자 뭐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는 후회는 절대 해소하지 못한다. 그러니 차라리 죽기 전에, 병세가 악화되기 전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생전 고마웠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고마운 사람에게는 고맙다 말하고, 미안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사과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껏 그 마음을 표현한 후에 세상을 떠나는 것. 후회 한 점 없는 삶은 없다지만, 적어도 김병국 할아버지는 최소한의 후회만을 가지고 가셨지 않나 싶다.


남은 생을 병원에 이끌려 살지 않고 자신만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인간의 주체적인 죽음을 존중하여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존엄사법이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하는 제도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고 2년이 좀 지난 지금까지, 죽음 앞에 선 환자 중 몇 분이 주체적으로 삶을 마무리하셨을까.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인간다운 죽음이란
일방적으로 병원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선택을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병원 본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처럼,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꼭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라는 법은 없다. 각자마다 이루지 못한 꿈 내지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환자가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매듭지을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병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명에만 집착하며 살지는 않았나. 오래 사는 것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닌 듯하다. 주어진 시간 동안 주체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간으로서 가장 존엄하고, 삶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여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했고, 2019년 11월을 기준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한 환자가 7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사전에 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들은 2019년 1월 기준 11만 명을 넘어섰다. 이중 60~79세에 해당하는 등록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50세 미만의 등록자는 5~6%의 비율을 차지했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체적인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누군가는 기회를 마련하여 가족 및 지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현실에 부딪혀 잊고 살아야만 했던 못다 이룬 꿈에 다시 도전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원 없이 세상을 누빌 것이다.


자신이 병에 걸릴 것이라는 걸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 몇 분 뒤 일어날 일조차 모르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의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직감하겠나. 하지만 죽음 앞에 마주 서게 되었을 때, 자신이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임을 직감했을 때, 우리는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 아마 모두가 바라는 삶의 결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이루는 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제도 절차에 따르면 연명치료 중단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판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윤리위원회가 있는 병원의 수는 상급병원을 제외하고 종합병원은 302곳 중 95곳, 요양병원은 1526곳 중 22곳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죽음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를 자꾸만 함구하려 든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죽음, 그중에서도 존엄한 죽음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함께 고민하고 직접 행동한다면, 사회는 우리에게 발맞춰 나아갈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