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 유전자 미운 오리 새끼?
[다시 읽는] 미운 오리 새끼
글공부를 위해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를 다시 읽어 보았다. 이미 잘 아는 내용이더라도 세세한 묘사에 다시금 명작임을 느꼈다.
다시 읽고서 가장 놀랐던 점은 등장인물들이 미운 오리 새끼를 향해 너무 심하게 말한다는 점... 주변 인물부터 형제들, 어미 오리까지 미운 오리 새끼에게 폭언을 날렸다.(죽었으면 좋겠다느니 어미 오리에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까지...ㅠ) 그로 인해 미운 오리 새끼는 내내 매우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마지막 즈음에 자살하려고 할 때 너무 충격이었다.
또한 명작임에도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 놀랐다. 못생겼던 주인공이 멋있어지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력 없이 그냥 얻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주인공에게 이입을 해 핍박받았다가 통쾌하게 복수를 해서 같이 즐거웠다. 특히나 주인공과 내가 닮았다고 느껴서 스스로에게 빗댔다. '알고 보니 나도 백조?'라는 기대감이 생겨 그냥 별 노력 없이 누군가 알아서 내 가치를 알아주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는 꺾여가고 '나는 오리였던 걸까'하며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이 동화를 싫어하기도 했다.(그래서 놀랐다. 어릴 때 나 혼자 삐진 것처럼 싫어했던 건데 실제로 비판받는 포인트였구나... 하며)
그런데 이 동화 정말 그냥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모지상주의 이야기인 것일까?
천천히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모든 등장인물이 심지어는 현자로 묘사되는 늙은 오리까지 미운 오리 새끼를 외면하고 폭언을 하는 건가?
뭔가 이질감을 느끼고서 생각해보니 ‘못생겼다'기보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외형’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았다. 마치 외눈박이 마을에 두눈박이처럼 오리 무리에게 미운 오리 새끼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특징을 지닌 것이다.
외눈박이 마을의 두눈박이 역시 온갖 핍박과 차별을 당했을 것이다. 못생겼다고도 놀림을 당했을 것이다. 너무 낯서니까. 두눈박이 역시 그 주변을 견디지 못하고 벗어났을 것이다. 일단은 탈출하고자 했을 것이다. 밖 세상이 어떻든 그 안에 있기엔 힘들었을 테니. 접한 것은 폭언과 폭행뿐이라 누굴 만나도 폭언을 들을 것이라 예상하며. 그렇게 길을 걷다 걷다 우연스럽게 두눈박이 마을에 닿을지도 모른다. 죽을 각오로 벗어난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외형의 사람들을 보고선 처음 느끼는 소속감에 벅찼을지도 모른다.
미운 오리 새끼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모든 순간에 무기력하게 다니다 정말 죽을 각오로 뛰어든 곳에서 우연히 자신의 소속감을 찾은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지 않았어도 백조 무리는 미운 오리 새끼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낯선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그저 자신들의 새끼와 닮은, 길 잃은 아이일 테니.
그래서 백조가 된 자신을 마주한 미운 오리 새끼의 감정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처음 느끼는 소속감에 벅차오른 감정이 겹쳐져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를 외면당하지 않는 공간, 오롯이 자신일 수 있는 공간에서 미운 오리 새끼는 꼭 백조이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저 자신 스스로면 되었기에.
백조니까 아름답다며 칭찬하는 곳이나 새끼니까 못생겼다며 욕하는 곳이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공간.
이 동화는 그런 공간을 찾는 여정이자 자아를 찾는 여정, 성장의 여정이 아닐까 싶다.
'낯선 것'은 당연히 두려움을 준다. 우리는 예상할 수 없는 것에 공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나의 행동을 돌이켜 봐야겠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소속감을 찾으러 계속 나아가고 나아가야겠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