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귀가하신 남편을 용서하는 법
자다가 눈을 번쩍 떴다. 즉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남편이 자는 침대 자리는 비어있었다. 제기랄. 내 양옆 두 아이는 내 팔을 한쪽씩 베고 고요히 자고 있었다. 디지털시계는 새벽 4시 25분을 번쩍이고 있었다. 자정 12시를 넘겨 마지막 통화를 했다. 1시간 뒤에 오겠다는 말을 믿어주고 잠이 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안 받지. 안 받아. 끝까지 통화연결음을 듣고 끊기를 반복. 다행히 세 번째에서야 전화를 받았다.
“어, 나 가고 있어.”
“정신 차리고 아이쉐어링이나 풀어라.”
뚝 끊었다. 다시 휴대폰을 켜고 아무 에세이나 읽어 재꼈다.
아참, 그전에 카카오톡 멀티 프로필 상태 메시지를 바꿨다. 또 새벽 5시가 넘었다 지긋지긋. 이전 문구들은 ‘새벽까지술마시면얼어죽어’, ‘아빠는술마시고아이는기다리고’ 등이 있다. 이 멀티프로필에는 사진이 없고 지정된 친구는 남편, 어머님, 아버님이다. 카카오톡으로 거의 왕래가 없는 시부모님이 나의 상태 메시지에 관심 가질 리 만무하다. 좀 알아달라는 마음 조금, 봐도 아는 척 안 하시겠지라는 마음 등 정리하지 않은 속내가 있음은 맞다. 혼자 실컷 쓰고 내릴 뿐이었다. 그 사실을 남편에게도 흘렸다.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무응답으로 나중을 도모했다.
띠리릭. 이사할 때 지문 도어락을 괜히 했다는 후회가 잠시 왔다 갔다. 번호만 있는 도어락이면 잘못 누르고 그 앞에서 잠들 수도 있는데. 나는 번호 누르는 소리로 남편의 무사 귀가를 확인하고, 그는 술 취한 손 탓에 불편하게 자고. 내가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는 복수의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었다. 일단 자는 척했다. 그는 옷방에서 겉옷을 벗고 화장실에 갔다가 안방으로 들어와 기척을 살폈다. 지난밤, 자는 척하는 나에게 쓰윽 다가오자 강시처럼 발딱 일어나 소리를 꽥 질러 혼비백산시킨 적이 있다. 그건 12시에 왔을 때고. 오늘은 말 한마디 섞기 싫었다.
잠자리에 있었던 그가 갑자기 나갔다. 온갖 감각을 동원하여 그의 행적을 살폈다. 여기서 주안점은 티브이를 켜는지였다. 새벽 5시에 들어와서 넷플릭스나 골프를 틀고 늘어져 있는 순간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거실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지 머리맡 안방 창문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10년 전 저음성난청 진단받은 적 있는 내 귀만 믿었다간 놓칠 수 있으니. 오늘 아무래도 티브이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사각 트램폴린 안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니 벌떡 일어나 좀비마냥 걸어가 침대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 좀비의 아이 둘은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었다. 첫째 아이는 일어나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자신의 공부를 했다. 둘째도 평소와 같았다. 일어나라는 말을 허공에 날리고 침대 끝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찰싹 붙어 있었다. 질질 잡아끌고 침대 위에서 겨우 옷을 입혔다. 영양제 젤리를 입에 넣어주고 잠이 깨기를 바랐다. 계란볶음밥 주문을 마치고 침대로 냅다 달려가 아빠 옆에 숨었다. 머리 묶자는 내 말은 또 안 들렸다. 하아. 숨 한번 고르고 소리를 빽 지르는 것까지도 어제와 같았다. 늦게 들어온 남편 때문에 분노로 눌려있는 내 마음만 빼고. 어머. 그런데 남편은 이 큰 고함이 안 들렸나 보다. 출근은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기회가 오는 것인가. 스쳐 지나가는 마음의 소리였다.
처음부터 안 깨울 생각은 아니었다. 재택이라 늦게 일어나려나 보다 했다. 깊이 자는데 깨웠다가 싫은 소리라도 한번 들으면, 분노가 터질까 봐 깨우길 미뤘을 뿐. 어제 저녁밥을 부실하게 먹고 잔 둘째 아이가 밥을 달라 했기에 정성을 담아 부지런히 밥을 볶았을 뿐. 문득, 9시쯤 되지 않았을까 싶어 시계를 살짝 보니 정각 아홉 시였다. 어머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스르륵 안방으로 들어가 우아하게 읊조렸다.
“여보 출근 안 해?”
번쩍, 벌떡. 고함.
“너 일부로 안 깨웠지?”
새벽에 들어온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저 포효만큼은 이 순간 용서했다.
“아니야. 밥 볶다가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
화난 목소리에 1그램의 억울함을 담았다.
‘자기가 술 마시고 못 일어나서는 누구 탓을 하는 것이냐. 출근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 놈.’
회사 컴퓨터를 눈앞에 두고 못 찾을 정도로 정신이 나갔다. 고함도 쳤다가 구시렁구시렁 내 욕도 했다가 어떻게 일부로 안 깨울 수가 있지 라는 탄식도 이어졌다.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는 내 마음속에만.
둘째 아이를 슬슬 밀며 서둘러 현관을 나왔다. 열심히 볶은 계란볶음밥은 집에서 먹이지 못하고 차 안에서 먹였다.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데 들어가기가 싫었다. 어떤 폭탄을 맞게 될지 가늠이 안 되었다. 살짝 무섭기도 했다. 집이 고요했다. 방에 틀어박혀 자는지 일하는지 모르겠다. 첫째 아이 아침을 차려주고 수영장 셔틀버스를 태워 보냈다. 나도 짐을 주섬주섬 쌌다.
“나 나가. 수영장 셔틀버스 12시 45분에 오니까 여보가 내려가서 챙겨. 설거지 다 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
“......”
자는 이는 말이 없었다. 들은 것으로 알고 나갔다. 읽을 책을 들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집에 있어봤자 조용하면 내 속이 터지는 거고, 시끄러우면 내 기운이 빠지는 거고. 일을 하는지 자는지 모르는 사람의 끼니를 생각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다 불편함의 영역이다.
생크림카스텔라를 야무지게 먹고 이 이야기를 다다다다 썼다.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아직 분이 덜 풀려서 일러바치듯 소상하게 써야 했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내가 얼마나 너그러운지를 어필하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어디야?”
“왜 물어봐?”
“수영장 셔틀버스 언제 와?”
“12시 45분”
“설거지했으니까 집에 와.”
“어차피 치과에 가야 해서 2시 전까지 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설거지 그게 뭐라고. 설거지했다니 집에 들어갈 마음이 생겼다. 물론 그 면죄부 내가 준거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벌을 받았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나 죄지은 사람의 마음은 한결 편해지지 않나. 물론 나도 분노가 누그러질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그 편해짐의 기회를 겨우 설거지로 주다니. 참 쉬운 여자 아닌가. 음, 아침의 그 소동은 잠시 뺀다면.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평화로웠다. 이제 들어가도 폭탄이든 실탄이든 다 불발 나겠군.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지나가듯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진짜 일부러 안 깨운 거 아니지?”
“당연하지. 그럼 10시에 깨웠지. 나도 몰랐어.”라고 시치미를 뗐다.
이제 이 답은 남편을 위해서였다, 그도 용서할 수 있는 뭐라도 던져줘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테니. 네가 원하는 답을 주겠어. 아. 끝까지 사려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