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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Dec 02. 2023

육아휴직만 5년 인생

뮤지컬 Let me fly

아이 둘 키우느라 휴직, 복직을 반복하다 휴직만 5년을 했다. 그 사이 복직까지 넣으면 8년 남짓이다. 올해 나이 39세, 나의 30대의 사내 직무 이력은 뚝뚝 끊어져있다. 결혼 직후 책임자 승진과 직무 관련 자격증 취득만이 이후 경력과 상관없이 껌딱지처럼 붙어있다. 할 수만 있다면 스크래퍼로 흔적도 없이 걷어내고 싶었다.


직위에 맞는 직무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을 하기란 매일이 버거웠다.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는 희망도 크지 않았다. 일 이년이야 말이지. 집에 가면 회사일을 털어내고 육아로 전환하는 엄마는 절대 시간도 부족했다. 그냥 회사에서 점심시간 쪼개 쓰고 야근해 가며 주어진 일을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직원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좋은 회사라고 감사하며 다녀야 한다는 긍정적 메시지는 남편 입에서만 나왔다. 매 휴직마다 남편에게 휴직할 것을 큰 기대 없이 권유했다.  휴직은 곧 퇴사로 생각하는 남편은 휴직 불가로 내 앞에 선을 주욱 그었다. 월급도 내가 더 많고, 직급도 내가 더 높고, 승진도 내가 더 빠르고 내가 안 써야 할 이유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직한 지 9개월,

그리고 만난 뮤지컬,

Let me fly.


1969년 청년 추남원으로 기억이 멈춘 2020년의 노인 추남원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하는 정분이와 국제복장학원 입학통지서를 갖고 서울 가는 기차를 타러 간 것이 최신의 기억이다. 그러니 멋진 디자이너가 아닌 고향의 수선집 한 칸에서 수선장이로 평생을 살았다는 아내의 말에 당황한다. 그 아내는 심지어 선희란다. 미래탐사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나의 현재를 바꿔보리라 결심한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1969년 청년 추남원이 서울을 가는 날, 정분이가 함께 가지 못한다고 통보한다. 그는 아버지의 사고로 떠나지 못하는 정분이의 곁에 남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영감과 선희라는 이름을 새로이 붙인다. 우주비행사 되어 달에 가기를 꿈꾸는 정분(선희)과 남원이 함께 서있는 공간은 둘만의 달이 된다.


이 과거를 기억해 낸 추남원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하며 끝이 난다.




내가 선택한 결혼,

그리고 육아휴직,

그 덕에 두 명의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워낸 시간들.


비록 회사에서 일로 인정받고 빨리 승진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해졌지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온들 그 결정을 뒤집지 못할 것이다. 망설임 없이 육아휴직을 꽉 채워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나의 달은 사회적 출세가 아닌 가정이기 때문 아닐까. 현재 그 달 안에서 부대끼고 살면서, 다른 달에서 행복을 찾고 있으니 내가 꼭 기억 잃은 청년 추남원이었다.


그런 추남원을 바라보는 아내 선희가 착잡해할 때, 아이들과 남편이 생각났다. 사회적  성취욕구가 강한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못 챙겨줘서가 아니고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답답함에 회사를 나오고 싶었다. 그만둘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한 원망은 언제나 나를 뺀 가족들에게 향했다. 한때 나의 달이었던 회사가 수선집이 되었다.


뮤지컬에서 나온 아폴로 11호 관련 존. F. 케네디 연설을 찾아봤다. 달로 가기서 한 선택은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라는 말이 나를 툭 쳤다. 그래,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남편은 존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렵다. 살림은 정말 출구가 없는 미로이고, 육아는 정답지가 없다. 그 일들을 기꺼이 하기로 한 현재를 인정한다. 나의 수선집에서 화려한 성취를 이룰 수 없지만 밥 벌어먹게 해 줄 테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나의 달이다.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 and do the other things,

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

-John F. Kenn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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