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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an 13. 2021

프롤로그

당신들에게 차마 전할 수 없는 편지 한 통

 하필 그날 눈보라가 몰아쳐서는. 가뜩이나 허했을 당신들 마음만 더 시리게. 결항하는 것 아닌가 괜한 희망이나 가지게. 새벽 4시부터 길이 얼진 않았는지, 지하철을 타는 게 나을지 한참을 들락날락거리던 당신과, 전날 우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난 당신. 더블린에 갔다 올 때나 쓰고 창고에 처박아 뒀던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차에 탄다. 가는 길에 혹여나 추울까 당신은 미리 히터를 켜 두었다. 아주 느리게 미끄러운 길을 지나며 공항으로 향한다. 앞좌석에서 당신은 눈물과 콧물을 삼키고 있다.


 입국 허가가 떨어진 날, 좋은 소식이라며 바로 당신에게 달려갔지만 사실 그날 밤에는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캐나다로 가져갈 물품들을 준비하고 주변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던 한 달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고, 이제 당신들은 공항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당신들을 향해 돌아섰을 때, 당신들이 나를 보고 서 있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렇게 조그만 게 시집을 간다고…….’ 그때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당신은 얘기했다.  


 출국장에 들어서며, 인사하기 너무 힘들 것 같으니 그냥 여기서 가라고 부탁하다가 결국 주체하지 못한 슬픔과 죄책감을 터뜨린다. 당신을 안고 펑펑 운다. 당신도 나를 안고 펑펑 운다. 또, 여태껏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당신은 자기도 한번 안아달라고 웃으며 말한다. 가야 할 시간이다. 당신들은 말한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을 한다. 그건 ‘잘 다녀와’가 아닌 ‘잘 살아’


 비행기 좌석에 기대어 이륙을 기다린다. 제설작업으로 지연됐다고 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문자를 보내며 생각한다. 차라리 결항되었으면. 딱 일주일만 더 당신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그때 당신들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당신들을 더 이해하는 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당신들을 아프게 하는 선택을 하는 딸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끝없는 가정들에 비행기에서 뜬눈으로 15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찌저찌 몬트리올에 도착한다.


 전화를 건다. 잘 도착했다고. 춥지 않다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고. 집도 괜찮다고.


 그리고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당신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고. 커피를 받아 든 뒤 뒤돌아 나란히 서 있는 당신들을 본 순간, 내 선택에 자신이 없어졌다고. 사실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두렵다고. 당신들 곁에 머물지 않는 삶이 괜찮지 않을 것만 같다고.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른거리는 당신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릴 때, 옆에 누운 이 몰래 눈물과 콧물을 훔칠 때면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한 얘기를 생각한다.


 언제든 돌아와.


스르륵 눈이 감긴다. 당분간은 그 말에 기대어 곤히 낮잠을 잘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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