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역, 버스 터미널, 때론 공항. 헤어짐은 언제나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타향이란 말이 무색하게 집을 떠나 온 서울 살이는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간다. 10년의 어른 사춘기 시절 동안 나에게 ‘정착’이라는 말은 쉽게 멤도는 말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네 명이서, 두 명이서, 혼자서. 때로는 해외로 훌쩍 떠나는 날도 많았다.
그건 유랑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때론 그걸 즐겼다. 새로운 시작의 기분을 누리기 좋았다. 낯선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이별이라 자주 헤어져야 했다. 익숙한 공간과 동네를 떠나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깐 혹은 거의 평생을 위한 안녕을 전해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나 자주 떠났다면 헤어짐에도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가벼운 헤어짐에도 아직 내성이 없다. 웃는 얼굴로 다음에 올게, 다음에 만나를 말해도 등을 돌려 혼자 걸어가는 길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는 듯, 온 몸에 힘을 주게 된다. 낯선 곧은 때로 큰 외로움이었고 강한 척 혼자서도 잘 살아남기 위해 바짝 긴장해야 했다.
유랑은 어쩌면 운명,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떠나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받아지는 경험에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의 호기심은 깊어서 아직 어디든 떠나고 어디든 눌러앉고 싶어하지만, 수없이 떠나는 과정에서 해를 거듭할 수록 명확해 지는 것이 있었다.
이 유랑의 끝은 결국 정착이라는 것과, 정착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 방황과 혼란 속에서 훌쩍 어디로 떠났더라도 나는 어딘가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집이라는 곳은 어쩌면 나의 마음이 온전해 지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떠나보니 더욱 선명해 진다. 내 마음이 향해야 하는 곳 말이다. 또 다시 떠나면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먹먹함에 조용히 마음에 새겨본다.
유랑은 어쩌면 운명, 다시 돌아올거야.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