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애청자의 기쁨과 슬픔
Blonker의 Travelling이 흐르면, 어떤 이의 목소리를 먼저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음악도시 시민이었을 것이다. <음악도시>라는 프로그램명에 맞춰 DJ는 시장(님), 음도의 청취자는 음도 시민으로 불렀다. <FM 음악도시>의 초대 DJ, 즉 첫 음도 시장은 신해철 님이었다. 유희열 님은 부시장으로 요일별 코너를 맡다가 2대 시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3대 시장은 이소라 님이었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나 제작진이 바뀌는 것을 여러 번 보면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간접 체험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동료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이후 모든 라디오의 막방을 들으면 나는 눈가가 촉촉해진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원스>는 감독의 첫 영화, 뮤지션인 신인 배우들이 처음 모여서 만들었기에 우연이 빚어낸 마법이라고 했다. 첫 영화 <원스>의 투박함이 주는 감동은 두 번째 작품 <비긴 어게인>과 결이 다르다. 심야 라디오를 처음 듣던 어린 날의 기억은 ‘처음’이 주는 특별함에 대해 환기시킨다.
<음악도시> 막방의 트라우마 이후 라디오에 대해 애정을 덜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처럼, 라디오 막방이 끝난 후 12시가 되면 허전했다. 어떤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두려워졌다. 악순환을 끊고자 의식적으로 사람과 프로그램에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었다. 잡다한 일에도 신경이 많이 쓰이고 예민한 편이라, 어떤 라디오에 애정을 쏟고 그 마음을 거두는 일이 시작부터 부담스럽고 무서워졌다.
하지만 특유의 성정 때문인지 그런 경계를 한 것 치고는 자잘하게 라디오를 많이 들었고, 그 순간마다 그 프로그램과 DJ에 풍덩 빠져들긴 했지만(이번 생은 라디오가 내 안에 있는지, 떼어내려 노력해도 소용없다)
예전에는 좋은 작품이나 열정적인 사람을 보면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바랐다. 환희가 끝나고도 미련이 남아 텅 빈 무대와 관객석을 보며 서글픔을 느끼는 청승맞은 사람, 그 여운에 밤새 끙끙 마음앓이하던 사람이 나다. 약도 없는 미련 많은 사람은 오롯이, 꿋꿋이 일상에서 그 허전함과 추억을 되새기고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대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사그라진다는 점을 발견해왔다.
라디오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배운다. 어떤 라디오를 처음 듣던 순간, 처음 라디오에 빠졌을 때의 흥분과 설렘, 그 DJ의 목소리와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며 느껴지는 편안함, 라디오가 어떤 상황에 의해 더 이상 같은 시간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슬픔, 나를 구속하던 라디오가 끝나고 났을 때의 아이러니한 후련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는 비단 라디오뿐만 아니라 사람, 일, 세상에도 통용되는 이야기 같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에 대하여 글을 쓰며, 앞으로 이런 이별의 순간이 오면, 그 당시의 감정, 느낌, 생각들을 잘 기록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며, 나에게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의 의미는 ‘내게 소중한, 나와 추억이 많은’으로 이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는 적당한 친밀감과 책임을 다하는 사이랄까. 너무 의미를 두면 애착이 집착으로 변질될까 봐 다가가지 못했던 경계심 대신 순간순간 함께 해서 좋은 친구 같은 사이, 딱 그만큼의 관계가 좋겠다.
혈님이 음도 막방에서 들려준 Alan Parsons Project - "Old and Wise"처럼 다시 그 시절을 사는 느낌이 든다. 검색을 잘하면 그때 그 라디오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기억과 기록을 잘했는지, 귀한 추억을 나눠가질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