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원더랜드 오타쿠걸 1장 : 최애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어 2
앞 장에서 오시카츠의 기본 개념을 "최애의 성공과 성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덕질"이라 정의했다. 이에, 여기서부터는 가급적 오시카츠는 덕질, 오시는 최애라는 표현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려 한다.
가급적 한국어에 가까운 표현으로 순화시키려 하지만, "오타쿠"는 앞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단어 자체의 인지도도 높은 편이고, 대체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 마땅치 않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니 아무쪼록 양해를 부탁드린다.
Z세대는 보통 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20대 중후반~10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로 규정한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므로, 5년~10년 뒤의 생산과 소비시장을 짊어질 세대이다. 그들이 성장해 온 시대상을 보면, 경제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나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다.
일본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버블 붕괴로 인한 장기 불황 초입에 태어나 IT버블, 리먼쇼크, 동일본대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 거기에 COVID19 팬데믹까지.. 그야말로 좋은 일 하나 없던 불안정한 시대 그 자체다.
장기 불황으로 침체된 일본의 사회 분위기에 어려서부터 영향을 받아온 Z세대는 기본적으로 물욕이 없고 소비에 대해 소극적인 경향이 강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먼저 서술했듯, 자신이 좋아하는 것, 정체성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는 덕질에 대한 소비만큼은 예외적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온라인과 SNS 네이티브로 온라인을 통한 표현과 공유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소비의 유행 흐름을 주도하는데 강한 면모를 보인다. 이런 높은 디지털 능력치 덕질 소비와 시너지를 일으킨다.
구매력과 확산력. 각 업계가 Z세대의 덕질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든 자사 제품이나 브랜드와 연관 지으려는 이유이다.
원래부터 서브컬처 강국인 일본이, 왜 지금 새삼스럽게 덕질을 소비 트렌드로 주목하는지. 그 상세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일본의 덕질 시장 규모 및 유저상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자.
매년 오타쿠 및 콘텐츠 시장의 규모를 조사, 발표하는 야노경제연구소의 2021~2022년 일본 내 오타쿠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21년의 오타쿠 시장 규모는 약 6687억 엔, 2022년은 7164억 엔(추정치)으로, 과거의 전망대로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일본 콘텐츠 시장의 규모를 살펴보자. 전체 GDP 중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율은 2.5%. 이 2.5% 안에 덕질 관련 소비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숫자만 봐서는 그렇게 큰 임팩트가 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상기 추정치는 일본 국내 한정으로 해외 매출 등은 포함되지 않는 수치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 해외 콘텐츠 시장분석"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82억 달러로 전 세계 3위 규모이다. 702억 달러 규모를 가진 7위 한국의 3배 정도 된다)
하지만 덕질의 경제 효과는 단순히 지금 존재하는 콘텐츠의 소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 및 관련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금액적인 면을 떠나, 경제의 순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야노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오타쿠 인구는 증가 추세로, 2030년에는 3명 중 1명이 무언가의 오타쿠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가 경직된 사회에서 오타쿠 층은 돈과 시간을 확실하게 사용하고 있는 우량 고객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세가 기대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럼 1인 당 소비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아래 도표를 보면, 각 분야별 덕질 소비의 한 달간 평균적인 지출 금액의 규모를 알 수 있는데, 장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월평균 1~5000엔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전체 평균은 16,605엔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연극배우, 코미디언(お笑い芸人) 등 공연 특화형 장르가 3만 엔 이상 지출 규모의 비율이 높은 것이 눈에 띈다.
한일 덕질 지출 규모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1원 ~ 5만 원 내외가 최대 볼륨존이다. 월평균 20만 원 이상 지출하는 사람의 비율도 비슷하다. 다만 한국의 답변을 보면 아예 쓰지 않는다는 사람의 비율이 15%로 일본의 5%에 비하면 높은 편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각 나이대 별 평균 소비 금액을 통해, 연령대가 어려질수록 사용 금액 규모가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0대의 평균적인 가처분소득을 고려한다면 전체 소비 금액 중 덕질에 사용하는 비율이 매우 큰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20대 / 30대도 평균 이상의 금액을 지출하고 있는 것에 미루어, 현재의 10대가 장래에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수입과 가동범위가 증가한다면, 덕질에 대한 소비 규모가 얼마나 더 확대될 것인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일본 내 Z세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복수 미디어의 앙케이트나 인터뷰를 통해 소비 내역을 보면, 지방이나 해외 공연 및 이벤트 참가에 특히 많은 비용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덕질에 사용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돈을 모으고 있다는 답변이 눈에 띄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대상에게는 아끼지 않는 Z세대의 소비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연유로, 어떤 배경으로 인해 덕질에 깊게 빠져드는 것일까?
소비자 행동이나 마케팅 트렌드가 일정 기간을 두고 변화해 나가듯, 일본에서도 시간에 따른 소비관의 변화를 분류하여 카테고라이즈 하곤 한다. 이를 통해 덕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일부 엿볼 수 있다.
버블 붕괴나 동일본대지진 같은 큰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일본의 사회상 및 소비관의 변화는 우리나라와도 유사한 점도 많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버블 붕괴 후, 불황에 빠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사이 일본은 소비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물건이 부족했던 시대였기에, 상품 자체를 소유하는 것에 중점을 둔 물건소비(モノ消費)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 이후는 무언가의 소유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 명목의 소비가 증가하게 된다. 자신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무언가를 구입하거나 돈을 쓰는 것으로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 흔히들 말하는 경험소비(コト消費)의 시대가 도래한다.
같은 시기, 계속된 불황과 경제 침체는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사고의 중심을 옮기게끔 한다. 나홀로족(おひとり様)이 늘어나며, 초식남, 초식녀와 같이 연애와 결혼에서 멀어지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늘어나 출산율 또한 계속 감소 중에 있다. 이런 전체적인 사회 흐름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결혼 / 연애 / 출산이 필수가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혼자서 살아가는데도 큰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며, 인간관계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는 시기. 그 틈새에 새로이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 덕질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즉,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하고 표출하는 자기 정체성의 일부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덕질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정체성을 나타내는 매개체로 진화한다.
덕질이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타쿠가 덕질에 과몰입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2010년대에 이후 소비 행태는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이 시기부터는 시간이나 장소가 한정된, 그 순간에 실시간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을 중시하는 시간소비(トキ消費),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의미소비(イミ消費) 등 자신의 직접적인 참가나 사회 공헌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일본의 경우,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이러한 움직임이 증가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2020년대에 들어서는 감성을 중시하는 에모소비(エモ消費 / emo消費) 스트레스가 넘치는 일상을 떠나 정신적인 휴식을 추구하는 치루소비(チル消費 / chill消費) 등이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소비하는 데는 그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의도와 목적이 있다. 모든 소비가 위의 도표처럼 딱 잘라서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덕질에 대한 소비도 마찬가지다. 덕질의 근간이 되는 인자들을 분해하자면, 크게 수집, 공감, 자율, 귀속, 현시, 창작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보니, 덕질 소비는 어느 하나의 가치에 그치지 않는다. 소유성, 참여성과 같은 승인 욕구부터 최애에 대한 지지, 헌신 등 여러 가지 소비에 대한 가치가 믹스되면서 독특하고 복합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또한, 덕질 소비가 다른 소비와 구분되는 점은 소비의 중심에 자신과 자신의 주변인물이 아닌 최애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행동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소비 형태를 최애소비(推し消費)라고 별도 분류하기도 한다.
굿즈를 구입하거나 (소유), 콘서트를 가는 등 (참가) 알기 쉬운 가치 표현도 있지만, 최애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거나 (의미 + 체험 + 참가), 싸인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대량의 앨범을 구입하거나 (체험 + 참가 + 소유), 최애의 포토카드를 꾸미고 인증 사진을 찍는 문화 (체험 + 감성 + 힐링) 등 시대를 거듭하면서 덕질 소비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출전 및 참고자료
https://www.yano.co.jp/press-release/show/press_id/3121
https://www.yano.co.jp/press-release/show/press_id/3100
https://www.randcins.jp/fin/special/supporting-my-fave/
https://www.mk.co.kr/news/business/8803463
https://pickups.jp/data/survey/47034/
https://seikatsusoken.jp/tokishohi/15581/
https://seikatsusoken.jp/miraihaku2017/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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