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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May 08. 2020

선생님, 저 괜찮은 건가요?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가 묻는 네 번째 질문

뮌헨 중앙 역에서부터 내분비학과가 있는 병원까지는 트램으로도 꽤 멀었다. 책을 펴 놓고도 계속 창 밖을 내다보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채식을 시작한 지 거의 2년 만에 처음 한 혈액 검사였다. 내가 그동안 비건이 된 뒤 느껴온 온갖 좋은 점들을 머릿속에 나열해보아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실 너무나 두려웠다. 만약 건강하기 위해 시작한 채식이 사실 내 몸에 좋지 않았다면 어떡하지? 채식을 그만두어야 하는 건가? 그렇담 내 유튜브 채널은? 의사 선생님이 고기를 꼭 먹으라고 하면 어떡하지? 30분 가까이 달리는 트램 안에서 나는 생각이 많았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독제를 뿌려 손을 비비고 접수를 했다. 검사 결과만 들으러 온 날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았고 금방 의사 선생님의 부름에 진료실로 따라 들어갔다. 악수도 없이 머쓱하게 의사 선생님 앞에 마주 앉은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다.


뮌헨 중심에서 열렸던 비건 페스티벌에서.


결과를 듣기 세 달 전 나는 혈액 검사를 위해 같은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질과 비타민 목록을 보여주며 내게 특별히 알고 싶은 수치가 있으면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건강 보험이 제공하는 기본 목록 이외에 나는 채식인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B12와 D 등을 알고 싶었고 추가로 돈을 더 내고 검사를 받았다. 채식을 시작하고 몸무게를 재 본 적이 없었는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몸무게도 쟀다. 혈압은 여전히 낮은 편이라는 말을 듣고 피를 꽤 많이 뽑았다. 간호사가 능숙하게 뽑아내는 통에 검붉게 차오르는 내 혈액이 건강하기만을 바랬다.


그 혈액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왠지 모를 두려움에 비타민 보충제를 샀다.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건데도 왠지 몸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비타민 B 종류가 든 보충제도 사고 비타민 D와 K가 함께 든 스포이드제도 샀다. 워낙 건강을 챙기는 편이지만 보충제를 먹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내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먹는 것으로 챙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아침마다 챙겨 먹는 게 망설여졌다. 건강한 몸에 괜히 보충제를 챙기는 게 더 나쁜 건 아닐까 싶었으면서도 검사 결과를 받는 날이 다가올수록 보충제를 더 열심히 먹었다.


또 그 사이 열심히 비타민과 무기질에 대해 공부했다. 비타민 B12 외에도 일곱 가지 종류의 비타민 B가 있는데 우리 몸에 에너지를 줄 뿐만 아니라 감정 조절과 세포 생성, 면역력과 피부 건강에도 꼭 필요하다. 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자연스럽게 우리 몸이 생성하지만 유럽의 날씨 특성상 거의 절반의 인구가 비타민 D 결핍이라고 한다. 특히 해가 많은 지역에서 살다 유럽으로 온 남미 사람들이나 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할 수 있는 게 이 비타민 D이다. 비타민 D이 뼈에 중요한 건 비타민K와 함께 칼슘을 우리 몸에 저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비타민K는 케일, 시금치,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키위 등 짙은 초록색의 채소와 과일에 많이 들어있다. 매주 이런 채소를 챙겨 먹지만 그래도 부족할까 싶어 함께 남미에서 온 내 동료 중 하나가 추천해 준 제품으로 함께 먹기 시작했다.


채소엔 이미 우리 몸에 필요한 많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 인사도 없었다. 텁텁하다 못해 조금은 차갑기까지 한 독일식 의사의 진료 방식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마우스로 손을 옮겨 내 이름이 적힌 검사 파일을 여는 그의 손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괜찮은 건가요?"

"수치는 다 좋아요."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며 검사 결과를 훑는 그의 손을 잡고 울고라도 싶었다. 너무 다행이다, 잘 됐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몰랐지만 나도 엄청 긴장을 했었는지 어깨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30분이 넘게 의사 선생님은 수치 하나하나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다. 걱정했던 비타민 B12도 정상이었고 비타민 D도, 마그네슘, 칼슘 모두 정상이었다. 하지만 철분이 약간 부족하다며 내게 철분이 첨가된 주스를 마시라고 했다 (독일엔 철분 주스를 판다). 그냥 철분제를 사서 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물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 주스만 마셔도 충분하다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독일에 파는 철분 강화 주스

검사 결과를 듣고 난 후 사무실로 향하면서 그동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어 스스로가 조금 우습기도 하고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채식을 오래 하면 몸에 좋지 않다, 치즈나 계란은 먹어 줘야 한다, 고기를 안 먹으면 몸이 약해진다 등 걱정 어린 충고를 해준 동료들에게도 당당하게 채식을 해도 부족한 게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약국에 들려 철분 주스를 살까 하다가 대신 '철분이 많은 음식'을 검색했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식재료에 철분이 가득했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두부, 두유, 렌틸콩부터 감자, 토마토, 수박, 말린 자두에도 많고 캐슈너트, 잣, 그리고 내가 제일 자주 먹는 귀리에도 철분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비타민 C와 철분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레몬물을 식전에 마시기 시작했다. 철분이 들어간 주스 없이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채우기로 했다. 더 건강해진 기분에 온종일 힘이 더 넘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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