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아홉 번째 질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함께 간 헌혈의 집은 허름했다. 분명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왜 우리는 적십자사의 로고가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층계를 오르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의 반짝이는 눈에 홀려서 제 발로 찾아왔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겁이 덜컥 났다. 긴 바늘을 팔에 꼽고 내 피를 내준다니, 그것도 내 자발적 의지로.
우연히 접촉사고를 본 게 계기였다. 두 차가 나란히 갓길에 서 있었고 두 사람이 말짱히 서서 온 힘껏 싸우고 있는 걸 보아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고 남자 친구는 정말 피를 많이 흘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사고현장 근처를 지나가 본 적은 있지만 피를 본 적은 없었다. 흥건한 피를 생각만 해도 죽음이 떠올라 아찔해져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드는데 그는 그동안 수능을 마친 다음 날부터 꾸준히 헌혈을 해왔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헌혈을 시작했냐고 묻자 잠시 머뭇거리다 그가 굳어있던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의 이야기는 끔찍하게 생생했고 불편할 만큼 듣기 힘들었다. 절절히 와 닿는 그의 이야기보다 천천히 말을 떼어 놓는 그의 표정에 그동안의 시간이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비쳐서, 어떻게든 그 어둑함에 잔잔하게나마 빛을 쏘아주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헌혈을 하러 갔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자비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애였다.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앓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약을 먹는지, 해외에 나갔었는지 등 질문이 가득한 자가 문진표를 다 작성하고 나서도 주사 바늘을 보면 뛰쳐나갈 것 같았다. 당연히 주민등록증을 건네는 내 손은 머뭇거렸고 문진실로 먼저 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덜컥 더 겁이 났다.
간호사가 혈압과 맥박을 재고 혈소판 수치를 재야 한다며 손가락을 달라고 했다. 겁먹지 않은 척 태연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따끔한 침이 손가락 끝에 닿기도 전에 움찔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간호사는 순식간에 피를 냈다. 얇고 작은 판 사이에 채운 피 한 방울을 기계에 넣더니 나를 바라보더니 '그럴 것 같았다'는 눈빛을 줬다.
"혈색소 수치가 너무 낮아서 헌혈 못해요."
속으로 얼마나 큰 함성을 질렀는지 겉으로 아쉬운 척하느라 애를 썼다. 남자친구가 400ml 양의 피를 온전히 내어주는 동안 나는 근처에 앉아 서서히 차오르는 헌혈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포카리스웨트 한 병 양도 안된다며 환하게 웃는 그가 열심히 주먹을 쥐었다 피는 사이 팔에서 흘러나와 차오르는 피는 점점 더 검어졌다.
그와 이별하고 나서 몇 년 후 한 번 더 헌혈의 집에 갔었다. 처음으로 제 발로 찾아간,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한 도전이었는데 역시 문진실에서 혈색소 부족으로 거절당했다. 이번 거절은 안도라기보다 아쉬움이 더 컸다. 충분히 잘 먹고 운동도 하는데 왜 혈색소가 부족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벌써 7년이 넘은 일이다.
한국을 떠나와 유럽으로 오고 나서 헌혈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병원에 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피를 선뜻 내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지역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헌혈의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사실은 몸집도 생김새도 다른 유럽 간호사에게 팔을 내주는 게 두려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히 헌혈할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마련한 헌혈의 날 행사에 등록하고 당일이 될 때까지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우리 팀에서 등록한 사람은 나와 다른 동료 단 둘 뿐이 었는데 서로 일정 차이로 함께 갈 수도 없었다. 신분증을 들고 혼자 헌혈하러 내려가는 층계에서야 첫 헌혈의 집을 방문했던 십여 년 가까이된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거절당할 것 같았다. 비건 식단이 영양균형에 부족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래 묵혀둔 고정관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기를 먹었던 시절에도 혈색소 수치가 낮다고 했는데, 채식을 지향한 지 벌써 5년이 넘은 지금 내 피 건강이 더 나빠졌다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좋은 일 하겠다고 피 뽑아주다가 쓰러지면 어쩌나 생각하다 보니 한국에서 두 번 다 헌혈을 거절당한 이유가 생각났다.
줄을 서서 내 문진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혈색소에 대해 찾아봤다. 혈색소는 영어로 헤모글로빈(hemoglobin)이라 한다. 혈액 중 적혈구에 단백질 형태로 들어있는데 그 안에 있는 철분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붉은색을 띤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피가 붉은 이유는 그 혈액 안에 철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혈색소가 부족했던 건 아마 철분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문진실에 앉아 부족한 독일어로 내가 이전에 한국에서 헌혈을 하려고 했지만 혈색소가 부족해 못했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는 가만히 듣더니 일단 보자며 손가락을 콕 찔러 피를 냈다. 몇 초만에 내 문진표에 130이라고 크게 적고 의사에게 가보라고 했다. 헌혈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반신반의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나에게 간호사는 그렇다며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혈색소 수치를 통과한 후 혈압검사도 적정 혈압이 나왔다. 매번 저혈압이라고 들어왔다며 웃자 의사는 정상혈압이라며 나를 다음 순서로 가라며 손짓했다. 어색하게 문진표를 건네고 간이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어벙벙했다. 그저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헌혈을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아서 간호사가 큰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주먹을 쥐었다 펴며 얼마만큼의 피가 뽑아지는지 보여주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피를 500ml나 뽑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정말 튼튼하던 전 남자친구도 400ml를 내주고도 한참이나 쉬었어야 했는데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주삿바늘도 빼고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서 사무실에 올라가 그 날 일을 마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멀쩡했고 조금은 자랑스럽게 헌혈한 팔을 들어 보이며 팀원들에게 자랑도 했다. 비건으로서 충분히 건강해서 헌혈을 한 것도 스스로 대견했지만 수혈이 필요한 응급 환자들에게 내 피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더 뿌듯했다. 세상 누군가와 내 피를 나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며칠 전 다시 또 한 번 간이침대에 몸을 누였다. 이번엔 우리 동네에 분기마다 찾아오는 헌혈의 날에 직접 예약도 하고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피를 나누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철분이 가득한 비트, 두부, 수수, 해바라기씨 등을 많이 먹고 물도 충분히 마셨다. 왼쪽 팔을 내주고 열심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주변을 둘러본다. 양 옆 헌혈자와 눈이 마주치자 작은 미소로 인사를 한다. 그 짧은 순간 안에 생명으로 이어진 빛이 가득하다. 더 이상 피는 내게 시간의 끝이 아니고 체구도 눈 색깔도 다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내 것이 나간 자리에 나보다 더 큰 무언가가 다시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