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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Nov 30. 2020

불필요한 불편함

잊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뇌가 무의식적으로 잊는 것을 동기화된 망각 (motivated forgetting)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을 꼽자면 바로 이 동기화된 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괴로웠던 일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쉽게 잊어서, 가끔 예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 내가 저질렀던 창피할 만한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고된 일은 오래 곱씹지 않고 꿀꺽 삼켜 그대로 배출하는 내 뇌의 신진대사는 너무나 활발하다.


세상을 편하게 사는데 이보다 더 좋은 능력도 없겠지만, 힘들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건 생존에 꼭 필요하다.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난 후로 한동안은 그 음식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왜 잘 먹으며 살기로 했는지, 그렇게 하기 위해 왜 채식을 시작했는지를 깜빡 잊고 다시 예전의 식습관으로 쉽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기억을 많이 잊고 살고 있다.



동기화된 망각의 전제 조건은 고통스럽거나 불안을 야기하는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구워진 케이크의 망한 부분을 제일 먼저 잘라내서 예쁜 부분만을 남기는 것처럼, 나의 뇌는 한 때 어떤 이유로 고생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괴로웠던 날들은 세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슬리는 장면들은 온데간데없고 내 예전 기억들엔 그저 고생했구나 하는 잔상 정도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건강으로 고생했다고 하면 큰 병에 걸렸다거나 사고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겐 병 대신 만성 질환이 있다.


만성 질환은 큰 병에 걸리는 것 못지않게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보통 ‘뭐 그 정도 가지고’ 하고 넘어갈 만한 질환이 내게 너무 많다. 우리는 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종신병이 아닌 이상 병은 걸리면 ‘회복하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반면 질환은 ‘겪는’ 것이고 종료 시점이 없어서 더 무섭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그리고 같은 질환을 겪고 있다고 해도 개인마다 다른 증상에 다 이해할 수 없어서 나만 온전히 겪는 그런 사소로운 불편함이 정말 싫었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질환 중 하나가 자가면역질환인 아토피, 비염, 천식, 한포진, 알레르기 등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도 주변에 한 명쯤은 가지고 있고, 길을 지나다녀도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사람 혹은 빨갛게 일어난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5분간은 끝없는 재채기에 시달렸고, 팔과 다리 접히는 부분, 살갗이 얇은 몸 여기저기에 아토피가 올라와 내 몸을 세상으로부터 숨기고 싶었던 십 대 시절을 보냈다.


이런 만성 질환 때문에 재채기를 하고 피부가 간지러운 건 누구에게 아프다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재채기를 너무 오래 해도 그저 좀 긴 재채기려니, 피부염도 통증이 아니니 버틸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도저히 긁지 않을 수 없게 참을 수 없어서 아토피가 올라온 부분을 벅벅 긁고 있으면 가족들 중 한 명은 ‘그걸 좀 참지 왜 또 긁느냐’라는 눈치나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멈추지만 계속되는 간지러움에 울고만 싶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왜 내게 뭐라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 불편함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만성 질환은 아픔이 아닌 불편을 동반한다. 재채기도, 간지러움도 통증으로 간주하기엔 너무 자질구레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계산할 때 손에 올라온 발진이 마음에 걸려 조금은 위축된다 거나, 재채기를 너무 심하게 해서 주변의 시선을 사는 일들은 그저 일상생활에 불필요한 불편을 더할 뿐이다. 


그렇다고 꼭 나처럼 아토피나 비염이 있어야만 불편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하지 않아서 불편은 다양한 모습으로 개개인에게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남들보다 더 피곤함을 느끼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고생하거나, 혹은 원인 모를 편두통이 이따금 있을 수도 있다. 병이라고 명명하기엔 부족한 자잘한 불편함이 모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불편의 역치가 올라간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편하지 않은 내 몸의 상태가 기본값이 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쓸데없는 불편들이 삶에 이미 너무 많이 녹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모르고 내 몸이 주는 작은 신호들을 놓치며 지내다 보면 그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정말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서서히 불편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서 정말 건강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가 된 나는 막 스무 살을 갓 넘겼었다. 더 이상 불편을 참을 수 없어서, 내 건강한 모습을 찾기 위해 시작한 십 년간의 여정이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채식으로 이끌었다. 



고기에 대한 애정과 채식을 향한 회의감을 완전히 무너뜨린 건 쓸모없는 불필요함을 위해 꼭 필요한 불편함을 완전히 마주했을 때였다. 손가락을 쪽쪽거리며 먹던 과자의 성분 표시를 읽고, 매콤한 양념에 버무리는 닭이 어디서 무엇을 먹고 자라 내 입에 들어오는 건지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의 불편함이 처음으로 마음에 전해졌다. 그제야 나의 편안한 삶을 위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야만 하고 실천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채식주의자가 하는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 역시도 한 때 채식은 생각할 수 조차 없던, 육식을 너무도 사랑하던 사람이었어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은 거북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삶에 득 될 것이 없는 불필요한 불편함을 완전히 잊기 전에 내게 너무나 필요했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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