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를 기다리며
500원 동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동전이 특이해요. 구멍이 났습니다. 500원은 다 똑같으니까 그게 경도 물건이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거라고 볼 수도 있죠. 근데 그 동전이 회중시계에 담깁니다. 두 사람의 만남의 상징이었던 구멍난 동전이 회중시계에 담겨져요. 두번째 헤어짐에서는 지우가 그 동전이 담긴 회중시계를 놓고 가버리기도 하고, 카메라고 클로즈업을 하죠.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동전은 만남을 뜻하고, 시계는 시간을 뜻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에 맡긴 채 흘려보내지는 않는다고요. 사랑은 우연을 지나 시간을 관통하는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500원 동전이 특별한 이유는 가운데가 뚫려 있다는 점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지우는 그 동전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거든요. 구멍이 있다는 건 시간이 이 사랑을 막아 세운 게 아니라, 그저 통과해 갔다는 뜻입니다. 만약 막혀 있었다면 그건 시간에 가로막힌 사랑이었겠죠. 시간에 깎이고, 닳아서 끝내 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다릅니다. 동전을 관통하듯 시간을 관통합니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사랑은 거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20살이든, 28살이든, 38살이든 시간은 흘렀지만 사랑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을 관통한다’는 건 시간을 무시하거나 뛰어넘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시간을 피하지 않고, 겪을 수 있는 만큼 전부 겪어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시간을 건너뛴 게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여기까지 온 사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경도나 지우로 보자면 시간은 너무 많은 것을 변하게 하거든요. 풋풋한 대학 신입생이 기자가 되고 유학생이 되구요. 지우는 이미 다른 사람과 잠도 자봤구요. 세번째는 결혼도 하고 이혼까지 한 시간들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리는 시간들이에요. 사람이라면 마음이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들이죠. 사랑이 흐릿해지고, 기억이 변색되고, "그땐 그랬지"로 정리되어도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모양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월’이 아니라 ‘관통’에 가깝습니다. 시간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랑이 아니라, 시간 한가운데를 그대로 몸으로 통과해 온 사랑거든요. 살다 보면 보통은 시간이 사랑을 바꾸죠. 닳게 하거나, 희미하게 만들거나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시간을 겪었는데도 영향받지 않습니다. 시간을 무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전부 통과하고도 그대로 남아 있는 감정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기다림은 특별하죠. 제목도 그렇고, 연극의 제목도 그렇습니다. 사실상 경도는 지우를 한없이 기다렸구요. 여기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도는 세 번이나 이별을 겪고, 괴로워하고, 무너지고, 때로는 술에 기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게 원래 그런 일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매일을 버텨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다림은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바뀌어도, 사람이 망가져도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겁니다. 기다림은 그저 참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이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지나온 연인은 수십 년이 흘러도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마음이 변하지 않죠.
사랑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서 추사의 시는 시간을 견딘 마음과, 그 시간을 통과해 남은 사랑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도망시’에서 부부는 같은 시간도, 같은 공간도 공유하지 못해요. 심지어 생과 사마저 엇갈려 있죠. 그런데도 추사는 말합니다. "내세에 입장을 바꿔 태어나서라도 이 마음을 알게 하고 싶다"고요. 먼 훗날이에요. 내세면 정말 영겁의 시간입니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부부의 사랑입니다. 이건 슬픔을 예쁘게 포장한 말이 아닙니다. 사랑이 시간과 생을 지나서도 계속된다는 확신이거든요. 추사의 시에서 사랑은 만났느냐로 증명되지 않고, 지금 함께 있느냐로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그 사랑은 시간이 흐른다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그러니까 이 말의 핵심은 이겁니다. 시간이 사랑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사랑이 시간을 견뎌낸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거죠. 20살, 28살, 38살을 통과한 지우와 경도의 사랑은 어쩌면 추사의 사랑처럼 죽음을 닮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연인은 결혼까지 했고, 세 번이나 떠나버렸는데도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삶의 형태는 달라졌는데, 사랑의 태도만은 끝내 바뀌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겁니다.
여기서 잠시 제목을 봐야죠. ‘경도를 기다리며’에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오지 않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연극 속 인물들은 "고도가 오면 지금은 견뎌도 된다", "고도가 오면 삶이 달라질 것이다"라며 현재를 유예합니다. 떠날 수 있는데 떠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데 미루고, 사랑할 수 있는데 기다리죠. 그 기다림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을 멈추게 하는 기다림입니다.
반면 시간을 관통하는 사랑은 무언가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미 선택했기 때문이죠. 더 나아진 내가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건이 맞춰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처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나로, 지금의 현실로 그 사랑 앞에 서 있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기다림 속에 있지만 유예하는게 아니에요. 고도를 기다릴 때 인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나아지면", "지금의 나는 부족해". 하지만 시간을 관통하는 사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도 고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남겠다", "도망치지 않겠다" 고도가 바깥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라면, 경도는 곁에 있는 아주 구체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도를 기다리는 사랑은 시간을 이유로 미루는 바람이고, 언젠가를 향해 유예되는 기다림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반대로 시간을 관통하는 사랑은 다릅니다. 시간을 핑계로 삼지 않습니다. 아직이어서, 때가 아니어서, 더 나중에라는 말 뒤에 자기를 숨기지 않죠. 그 사랑은 기다리되 미루지 않고, 시간 속에 있으되 시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경도를 기다린다는 건 결국, 시간을 이유로 사랑을 보류하지 않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 가깝습니다.
놀이공원 비행기가 멈췄을 때 지우가 한 말을 기억하시나요? "내가 잡아둔 시간도 아니고, 누군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잖아. 어쩔 수 없이 묶여 버린 시간 공간. 니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고, 그래서 편해." 이 장면이 중요한 건 지우에게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우에게 멈춘 시간은 편했습니다. 그 안에는 선택도 없고, 결정도 없고, 책임도 없었으니까요. 반대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 늘 질문이 따라옵니다. 곁에 있을 건지, 떠날 건지, 끝까지 감당할 건지 말 건지. 그래서 지우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시간 앞에서 자꾸 도망쳤던 겁니다.
회중시계는 지우에게 ‘함께 견뎌야 하는 시간’을 뜻했습니다. 500원 동전으로 시작된 만남은 “우리의 시간은 계속 간다”는 작은 약속이었고요. 그 시계는 시간을 멈추겠다는 뜻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안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는 연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사랑을 지키겠다는 말보다, 시간을 같이 건너가 보겠다는 조용한 다짐에 가까웠던 겁니다.
그런데 지우는 두 번째 이별에서 그 시계를 말없이 내려놓고 떠납니다. 이건 단순한 이별의 상징이 아닙니다. 지우는 아직 이 시간을 함께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거죠. 흐르는 시간 안에서 너를 계속 사랑할 용기, 그걸 아직 붙잡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건, 지우가 시간을 부정한 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시계를 내려놓는 건 이 시간을 견딜 준비가 안 됐다는 고백이겠죠. 그런 지우를 붙잡았던건 경도였구요. 그래서 제목의 진짜 의미가 드러납니다. 지우는 경도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멈춘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수 있는 상태. 〈경도를 기다리며〉의 기다림은 사람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시간 앞에 설 수 있는 자기 자신을 향한 준비인겁니다.
세 번의 만남은 우연의 반복이 아닙니다. 기다림의 증명이에요. 만약 이 사랑이 순간적인 감정이었다면 첫 이별에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세 번째까지 이어진다는것, 그건 시간을 견디는, 시간을 관통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인겁니다. 사랑은 한 번 선택하는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다시 선택되는 태도라고요. 경도는 늘 지우를 기다렸고, 지우는 그 기다림이 가능한 사람으로 천천히 도착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드라마에서 시간은 사랑을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시간은 사랑을 다스리지도, 닫힌 동전처럼 막아서지도 못해요. 오히려 방향은 반대에요
사랑이 시간을 관통하고, 사랑이 시간을 견뎌내며 결국 시간을 다스립니다. 가벼운 감정은 시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남는 건 시간을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뿐이죠. 그래서 드라마가 말하는거죠. 시간은 사랑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살, 28살, 38살의 지우와 경도의 만남은 결국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시간은 달라졌지만, 사랑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사랑은 우연히 시작됐지만 운명에 맡겨지지 않았고,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지만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사랑이라는걸 말하고 있는겁니다. 500원 동전도, 회중시계도, 추사의 시도, 놀이공원에서 멈춘 시간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멈추지도, 되돌리려 하지도 않고 그 한가운데를 그대로 통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뒤에 끝내 남아 있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죠.
사랑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시간 안으로 들어가 함께 늙어갈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그걸 가장 조용하게 증명하는 물건이 구멍 난 500원이 들어 있는 회중시계죠. 그래서 처음, 500원 동전의 구멍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던 지우의 장면이 유독 특별합니다. 그 순간은 말하고 있는 거예요. 시간은 20살의 하늘에서도, 38살의 하늘에서도 한결같았다는 걸요. 변한 건 사람이었고, 시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걸 말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구멍난 500원의 동전이고 회중시계 의미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