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너의 계절에’ 눈에 들어온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어요. 하란 얼굴에 난 상처입니다. 이번에 아버지와 찬이의 갈등과정에서 생긴 상처에요.
처음에는 굳이 얼굴에 상처를 왜 낼까. 그것도 디자이너인 하란의 얼굴에요. 근데 그 상처를 자세히 보니까 어디서 본 상처거든요. 찬이가 예전에 받았던 상처와 같은 위치, 같은 크기예요. 똑같은 상처입니다. 똑같은 상처를 하란의 얼굴에도 생긴겁니다. 정말 아픈 상처는 누가 만드는걸까요? 사랑이 만드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먼저 찬이의 상처부터 볼게요.
7년 전 보스턴때 생긴 상처에요. 찬이는 아버지 몰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엄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죠. 또 찬이한테 그림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어느 날 아버지가 기숙사에 찾아옵니다. 그림을 발견해요. 미술 도구들을 발견하죠. 아버지가 폭발합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지만요. 그 순간 찬이한테 보인 건 분노뿐이었어요. 책상 위를 쓸어버리는 과정에서 컵이 깨지고, 그 파편이 찬이 얼굴에 상처를 냅니다. 찬이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대들어요. 아버지가 떠나고 얼마뒤에 찬이는 창문 앞에 섭니다.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죠.
찬이 얼굴의 상처는 그냥 상처가 아닙니다. 찬이가 안에 품고 있던 아픔이 밖으로 드러난 거예요. 엄마를 잃은 슬픔,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절망, 아무도 곁에 없이 왕따가 되버리는 외로움. 그게 아버지와의 충돌을 통해서 상처가 얼굴 위에 새겨진 겁니다.
근데 그때 하란의 메시지 알림이 계속 울려요. 찬이 창문에서 내려와요. 상처 바로 뒤에 구원이 온 거예요.
이제 7년 뒤로 와볼게요. 하란의 상처입니다.
찬이와 가까워지던 시기에요.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찬이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가 찬이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찬이가 폭발해요. 하란이 처음 보는 모습이었죠. 그 과정에서 도자기가 깨지고, 그 파편이 하란 얼굴에 상처를 남깁니다. 찬이가 7년 전에 받았던 것과 같은 자리에요.
하란의 얼굴에 생긴 상처, 그건 찬이의 상처가 하란에게 옮겨간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이 드라마에서 상처라는 건 아무한테서나 오지 않거든요. 상처는 가까운 사람한테 올 때 가장 크잖아요. 별로 안 친한 사람이 뭐라 그러면 넘어가는데, 사랑하는 사람한테 같은 소리 들으면 잠을 못 자는 것처럼요. 찬이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준 건 아버지였어요. 유일한 가족이거든요.
아버지의 속사정을 보면요. 아내를 잃어버린 사람이에요. 그림 공부를 무리하게 하다가 과로로 죽게된 아내에요. 찬이는 하나뿐인 유일한 가족이고 아들입니다. 아들이 같은 길을 가는 게 공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찬이마저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으로 보이죠. 물론, 자신과 같이 공학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지만 두려움 역시 있었을 겁니다. 그게 분노로 나온 겁니다. 방식이 잘못됐던 거지, 마음이 잘못됐던 건 아니었던 것같애요. 아버지 연구실에서 찬이와 아내의 흔적으로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던게 아버지 마음을 설명했던 것같습니다.
찬이가 아버지 연구실에 가요. 거기서 보게 됩니다. 찢어버렸던 그림을 풀로 붙여서 보관하고 있었다는 걸. 찬이와 엄마 그림을 책상 위에 놓고 매일 봤다는 걸 알게되죠. 조교한테 듣게 되죠. 아버지가 얼마나 찬이를 그리워했는지요. 찬의 실험실 사고 때 중요한 연구 발표까지 포기하면서 찬이를 간호했다는 것도요.
아버지의 사랑을 들여다본거에요. 표현이 서툴렀던 거죠. 근데 찬이한테는 그게 겨울이 된 거예요.
여기서 시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다투며 하란에게 상처가 생기던 날, 아버지 시계를 보게 되죠. 오래된 시계였고 고장난 시계였어요. 깨어진 관계, 멈춰버린 관계를 말합니다. 그 관계와 멈춰버린 시간을 회복시킨건 하란이에요.
아버지랑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멈춰버린 시계를 다시 돌리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게 되게 의미 있는 게, 하란 자신의 시간도 7년 전에 멈춰 있거든요. 자기와 같은 상태를 찬이한테서 알아본 거예요.
찬이는 그 고장 난 시계를 고칩니다. 고쳐서 아버지 연구실에 갖다 놓으려고 갔던 거예요. 물리적으로는 시계를 수리한 거지만, 실제로는 그날에 멈춰버린 아버지와의 관계를 자기 손으로 다시 돌린 겁니다.
아버지가 그 시계를 받고 차를 타고 대전역까지 와요. 급하게. "시계 고쳐줘서 고맙다"라고 합니다. 이건 시계 얘기가 아니에요. 멈춰 있던 사이를 움직여줘서 고맙다는 거죠. 찬이는 어색하게 "고마우면 나중에 수고비 달라"고 해요. 아직 완전히 풀린 건 아니지만 괜찮아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상처가 회복이 됩니다.
자, 이제 두 상처를 나란히 놓고 볼게요.
찬이의 상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못된 방식으로 전해지면서 생긴 거예요. 찬이는 그걸 분노로만 봤고, 그래서 겨울이 됐어요. 근데 나중에 아버지의 서툴렀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상처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요.
하란의 상처도 비슷한 구조예요. 하란은 7년 동안 혁찬의 죽음을 아파해왔잖아요. 근데 하란이 진짜 사랑한 건 혁찬이 아니었어요.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동안에 혁찬은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번 하란에게 하는데, 하란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구요. 채팅으로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펜까지 선물받으면서 마음이 깊어진 뒤에야 혁찬에게 사랑한다고 했어요. 근데 그 채팅 상대가 혁찬이 아니라 찬이었잖아요. 하란이 사랑한다고 말한 진짜 대상은 처음부터 선우찬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하란의 7년간의 상처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상처인 거예요. 물론 하란이 느낀 아픔 자체는 진짜에요. 근데 그 아픔의 뿌리가 실제와 달랐던 거죠. 아버지가 찬이를 미워해서 상처를 준 게 아니었던 것처럼, 하란의 상처도 진실을 알면 형태가 달라지는 거예요.
하란의 얼굴에 난 상처는 아마도 앞으로 올 일을 예고하는 거라고 봅니다. 찬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찾아오게 될 진짜 상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진짜 상처를 암시하는겁니다. 혁찬이 행세를 하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속였다는 거. 자기가 그토록 아파했던 혁찬이 실은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는 거. 그걸 알면서도 찬이가 자기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거. 이 복합적인 것들이 하란에게 상처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의미에요. 거기에 실험실 사고의 진실까지 숨겨진 거니까요.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올 수 있어요.
하란의 그 상처를 주는 사람이 누구냐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찬이에요. 그래서 더 아프겠죠. 아까 말한 것처럼 상처는 가까운 사람한테 올 때 가장 크니까요.
근데 찬이와 아버지를 보면요. 아버지가 준 상처가 가장 컸지만, 결국 그 상처를 풀어준 것도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이후였어요. 고장 난 시계를 고쳐서 돌려주듯이, 진심을 알게 되면서 상처도 함께 풀렸습니다.
찬이로 인해 하란은 이번에는 진짜 상처를 갖게 되죠. 하지만 찬이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결국 그 상처가 풀리는 거죠. 혁찬이 아니라 찬이가 자기를 진짜로 아껴왔다는 걸 알게 되면, 7년간 자기를 가둬뒀던 겨울의 전제 자체가 바뀌는 거니까요.
살아가면서 겨울과 같은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에요. 그 상처가 깊을수록 그 본질은 사랑으로 인한거라는겁니다. 상처와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붙어있기도 해요. 그래서 상처가 더욱 큽니다. 하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료하고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살이 오르게 하는 것도 사랑이라는겁니다. 겨울과 봄은 전혀 상반되는 계절이지만, 사실은 붙어있는 계절이에요. 봄은 겨울 다음에 붙어서 오는 계절이거든요.
이번 영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영상 좋으셨다면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부탁드리고요. 여러분의 생각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찬너계’ 18.5도와 함께 하시죠. 고맙습니다.
#드라마리뷰 #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