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를 기다리며
세번째 사랑과 이별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38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지우와 여전히 같은 사랑의 자리에 서 있는 경도입니다. 그게 기막힌 대구처럼 연결되고 왜 추사의 시가 등장했던것인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사랑을 이해하는 자리와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마주 세워 놓을 수 있구나 싶어서 조용히 감탄하게 되더군요. 세 번째 이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지우와 경도의 사랑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도 계속 엇갈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연인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 겉으로 보면 우연의 반복 같지만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지우와 경도는 “사랑이 작아져서” 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사랑을 확인하느라 각자가 더 아픈 자리에 서게 되죠. 이 대칭 구조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추사의 시’가 필요했던 겁니다.
첫 번째 이별에서 가족은 연인의 어긋나는 숙제와 같았죠. 연인과는 또다른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게 바로 가족이거든요. 어설프고 풋풋한 어린 연인에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순간들이었죠. 스무 살의 지우가 건넨 32만 원짜리 티셔츠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경도 어머니가 한 달 동안 부업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도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그걸 그냥 말할 수 있을만큼 경도가 지우를 사랑한다는걸 지우가 알죠. 그런데 지우가 당황스러워 합니다. 어린 지우가 먼저 느낀 건 사랑의 설렘이 아니라, 자기 존재가 누군가의 일상을 바꿔 놓고 있다는 아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 자기 때문에 초라해진다고 느끼는 순간. 지우는 그 모든 이유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게 됩니다. 가족은 지우에게 특별하죠. 엄마로 인해 늘 모멸스런 눈빛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마주한 경도와 엄마의 장면에서도 경도가 받을 상처를 예감하고 그 상처가 자기 탓이라고 미리 끌어안기도 합니다. 사랑이 달콤해질수록 지우의 마음은 더 불안해집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들이 모두 자기 책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장님 딸인 지우에요. 그 지우가 자신을 배려해서 늘 떡볶이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죠. 그래서 지우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돈가스를 고집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이 다투게 되고 그 후로 지우가 떠나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고집과 쓸데없는 고집으로 인해 지우에게 상처가 됐다고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티셔츠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마저 입밖으로 말을 했다는 자책까지 경도에게 있죠. 경도는 경도대로 지우에게 상처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후회를 합니다. 연인은 서로를 아끼는데 그 아낌이 겹칠수록 둘 다 자기 탓만 하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두 번째 이별에도 역시 가족입니다. 가족은 더 이상 보이는 상처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버텨야 하는 무게가 됩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에게 큰 사고가 생기게 됩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옵니다. 경도는 병원에 매달려야 하고, 지우는 혼자가 됩니다. 혼자 경도 집에서 지내는 지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 와중에 지우는 언니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 혼외자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죠. 가족인데, 그 혈육인 엄마의 모멸찬 눈빛이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몸서리를 칩니다. 배다른 언니의 사랑이 극진해서 어린 지우가 그 비밀을 알게 될까봐 귀를 막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네가 경도를 사랑한다면, 떠나야 한다”는걸 알려주죠. 지우가 생각하기 싫고 상상하지 않으려던 일, 그 모멸찬 엄마의 눈빛이 경도에게 고스란히 옮겨질거라는걸 확인해주거든요.
지우에게 가족은 처음부터 안전한 장소가 아니에요. 친엄마의 시선은 늘 모멸스러웠고, 지우가 믿고 의지하던 언니와 아빠는 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선택으로 이어진 가족이에요. 이때 생긴 더 중요한 감정은 바로 빚진 마음일겁니다. 혼외자인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언니와 아빠였기때문이죠. 아마도 그 고마움이 편안함이 아니라 ‘더 조심해야 된다’라고 하는 부채감이 됐을겁니다. 혼외자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지우는 민폐가 되고, 짐이 되고 상처를 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겠죠. 따뜻한 언니의 말은 지우에게 더 큰 무게가 됐을 겁니다. 빚진 마음을 갖고 있는 언니와 아빠에게도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지우에게 가족은 당연한 사랑이 아니라, 돌려줘야할 친절과 사랑이 되어버렸거든요.
경도의 아버지가 위독해요. 가족이 늘 아픔이었던 사람이라면, 또 다른 가족의 상처앞에서 자기가 그 관계에 들어가는걸 본능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내가 끼어드는 순간 누군가 더 아파질거라는 두려움이겠죠. 이미 처음 이별때도 지우는 그랬거든요. 지우에게 가족은 함께 견디는 관계가 아니에요. 지우에게 가족은 조심해서 유지해야하는 관계고 그게 부채 관계같이 되버렸거든요. 이제 혼외자라는 사실까지 알아버린 지우에요. 할 수 있는건 ‘빚진 사람의 방식’ 자신을 그 관계에서 치워버리는것입니다.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의 곁을 지켜야 하는 경도입니다.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지우입니다. 상처가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했을겁니다. 더구나 언젠가 엄마라는 존재를 경도가 그대로 맞닥뜨려야 합니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경도에게 상처를 줄 사람이 엄마죠. 이번에도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지우에게 사랑이 너무 무거워서입니다. 피할 수밖에 없던겁니다. 경도는 또 남겨집니다. 지우가 자신을 탓하는 동안 경도 역시 자신을 탓하게 되죠. 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우 곁에 있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고, 예전 원룸과 돈가스 장면까지 끌어와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립니다. 지우는 피해야하는 사랑의 자리, 경도는 ‘남겨진 사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이별에서 가족은 사랑의 ‘장애물’이라기보다, 사랑의 ‘시험지’에 가깝습니다. 막아서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였다고 봐야죠. 지우에게는 자기 가족마저도 더 어려운 숙제이고 부채가 됐거든요.
세 번째 이별, 이건 아직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만. 불안하죠. 구도가 첫번째 이별과 두번째 이별과 대구를 이룰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자리가 바뀌는 순간이 될 것같습니다. 연인은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되죠. 그런데 세 번째는 반대로 지우의 가족이 무너집니다. 언니의 알츠하이머입니다. 결국 지우가 언니의 알츠하이머를 알게 되겠죠. 언니는 피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어릴때부터 새아빠와 함께 자신을 끔찍하게 아껴준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지우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될까봐 귀를 막아주던 사람이에요. 집안에서 엄마의 모멸찬 눈빛을 견디게 해준 것도 아마 언니 서진연때문일겁니다. 거기에 언니를 이용해 회사를 팔아먹으려는 형부의 배신까지 알게 될 겁니다. 이제 지우는 언니를 지켜야 합니다. 지우에게 가족은 부채와 같았고 빚진 사랑입니다. 회사도 지켜야 합니다. 첫번째 두번째 이별과 상황이 바뀌죠. 이전까지는 지우가 떠났고, 경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지우가 언니를 지키고 회사를 지켜내야 합니다. 이 전쟁 한가운데에서 세번째 이별은 경도가 스스로 짐이 된다고 느낀 순간일 겁니다. 그리고 지우가 그랬던 것처럼 선택이 경도의 몫이 되겠죠. 경도처럼 지우 언니 역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 존재거든요. 경도 역시 지우가 지켜야 하는 것들을 위해서 머무는 사랑이 아니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건 아마도 지우의 전남편이 경도와 지우 사이를 알고 재결합 계획을 하죠. 변호사를 통해서 계획을 세우죠. 이 과정이 지우에게 힘든 순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와 지우의 관계가 이미 이혼전에 불륜으로 계획된 음모라구요. 경도는 덫에 걸린 것처럼 자기 때문에 지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될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서지연의 남편이 안다례와 얽힌 반전카드가 있으니까 아마도 해피엔딩의 단서는 될겁니다.
그래서 첫번째 두번째 이별이 지우가 떠나는 것이었다면 세번째는 경도가 떠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추사의 시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추사’의 시가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도망시’가 현재형이 되는 거죠. 내세에는 부부가 서로 바꿔 태어나 나의 이 슬픈 마음을 그대도 알게 하리라가 이 시의 내용입니다. 이건 죽음이 아닙니다. 입장의 교환입니다. 세번째 이별은 그 장치입니다. 두 번이나 떠나야 했던 그 깊은 지우의 사랑의 자리에 이번에는 경도가 서게 됩니다. 두 번이나 남겨졌던 경도의 자리에는 이번에는 지우가 서게 되게 하는 겁니다. 이 순간, 이 사랑은 처음으로 같은 깊이를 갖습니다.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덜 오해하게 되는 겁니다. 사랑은 각자의 죄책감속에서만 반복됐었거든요. 그런데 입장이 바뀌면서 성질이 달라지죠. 떠났던 사람은 ‘남겨지는 시간’이 어떤 무게인지 알게 되고 남겨졌던 사람은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얼마나 벼랑끝의 절박함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중심이 ‘내 탓이야’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로 이동하죠. 더 이상 혼자 책임질 필요가 없어집니다. 서로 왜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었는지를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죠. 그제야 사랑은 반쪽이 아니게 됩니다.
사랑은 내가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죠. 얼마나 아팠는지 참았는지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지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순간 완성됩니다. 지우와 경도는 오랫동안 서로를 향한 ‘내 마음’으로 유지된 사랑이에요. 지우는 떠나며 사랑했고, 경도는 남겨진채로 사랑했습니다. 둘 다 진심이지만, 서로의 마음은 늘 반쪽만 보였겠죠. 그리고 세 번째 이별에서 상대의 자리에 서게 되면서 비로소 반쪽이 아니라 전부를 보게되는 겁니다. 추사의 시가 실현되는거죠. 사랑이 완성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