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말, 한 개의 사랑

경도를 기다리며

by 십팔점오도


드라마에서 아주 중요한 대화가 있었어요. 작가가 숨겨놓은 하고 싶던 이야기겠죠. 아마도 엔딩까지도 감안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엄마와 지우의 대화 그리고 세영과 지우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특히 세영과 지우의 대화는 좀 아리송하죠. "누구든 잘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정확하게 슬프든지 후련하든지 하거든. 너랑 경도는 다시 만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제대로 헤어지면 좋겠어"라고 말을 해. 물론, 세영언니는 경도와 지우를 아끼는 사람이거든. 세영언니의 이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또 재미졌던 엄마와 지우의 대화가 있었죠. 딱 두가지 단어로 함축되죠. 지우의 염치와 엄마의 야반도주입니다. ‘잘 헤어져야 한다’ ‘야반도주’ ‘염치’ 이 세가지는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고 봐야죠. 주제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재회 로맨스가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묻습니다. 우리는 사랑 앞에서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검열이 사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을 계속 미뤄두기 위한 핑계였는지를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드라마에서 지우는 '염치'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두 장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지우라는 인물의 내면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첫 번째는 경도와의 세 번째 만남, 데이트 도중입니다. 지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염치라는 말이 싫어. 발음부터 짜증나. 자꾸 나한테 들러붙어서 싫어. 네가 이렇게 가까이 있잖아, 네가 이렇게 웃잖아. 그럼 이제 그만 가라고 말하기가 힘들어. 그래서 나는 염치라는 말이 싫어."

두 번째는 경도 엄마와의 대화에서입니다. 지우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염치는 있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 경도가 눈앞에 있는데 그러지 마라, 마음 가지지 마라, 그게 잘 안 되네요." 그러자 경도 엄마는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동네마다 왜 야반도주가 생기겠어요?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그냥 튀는 거지." 지우에게 ‘염치’는 도덕이나 예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자기 안에서 계속 작동하던 ‘내면의 검열’ ‘자기 검열’이 말로 튀어나온 형태에 가깝습니다. 지우의 염치는 늘 이런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와도 되나?'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내가 이 사람 인생에 남아 있어도 되나?' 그래서 지우는 염치라는 말이 싫어 합니다. 그 말이 자꾸 자기를 밀어내기 때문이죠. 아마 그 시작은 어릴 때부터였을 겁니다. ‘혼외자’였기에 엄마의 차갑던 태도, 그 시선 속에서 지우는 늘 한 발 물러서는 법을 먼저 배웠겠죠.

이번에는 세영언니의 말을 들여다보죠. 지우와 경도가 두 번째로 만날 때, 연극동아리 선배인 세영은 알쏭달쏭한 말을 합니다. "누구든 잘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정확하게 슬프든지 후련하든지 하거든. 너랑 경도는 다시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헤어지면 좋겠어." 처음 들으면 좀 이상하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제대로 헤어지자”고 말한다는 게요. 하지만 이 말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도망치듯 멈추지 말고, 미뤄 두지 말고, 감정의 끝까지 가보라는 말이죠.

지우와 경도는 늘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멈췄습니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같은 방식이 반복됩니다. 말하지 않고 떠나고, 설명하지 않고 사라지고, 끝에는 늘 “내가 곁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결론만 남습니다. 이 지점에서 경도 엄마의 말, ‘야반도주’가 겹쳐집니다. 야반도주는 도망이 아닙니다. 혼자 빠져나오는 탈출도 아니고요. 그건 결단입니다. 끝을 보겠다는 선택, 그리고 이번만큼은 둘이 함께 감당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세영의 말과 같죠. 세 개의 단어가 어느 순간 하나로 모입니다. 세영의 “잘 헤어져야 한다”, 경도 엄마의 “야반도주”, 그리고 지우의 “염치”. 말은 서로 다르지만 이 셋은 같은 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 앞에서 자기 마음을 먼저 검열해 온 사람들이 피하는 언어라는 점에서요.

세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대로 헤어져야 정확히 슬프든지, 후련하든지 한다.”


경도 엄마는 더 단순하게 말하죠. “어쩔 도리가 없으면 그냥 튀는 거다.” 이 둘을 겹쳐 보면 의미는 하나로 정리됩니다. 우리는 사랑이 부족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겪을 용기가 없어서 도망친다는겁니다. 지우는 늘 염치 때문에 떠났고, 염치 때문에 말을 삼켰고, 염치 때문에 사랑을 미뤄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별은 끝나지 않았고, 다시 만나도 늘 같은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거죠. 물론, 그래서 세번째 만남에서 사용한 ‘염치’는 용기가 생기고 변화가 생기고, 경도를 기다릴만큼 용기가 생겼음을 암시하지만요. 그렇다면 궁금해져요. '기다림'의 진짜 의미 -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경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도 바로 이 지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기다림’은 누군가 오기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죠. 그래서 〈경도를 기다리며〉에서 ‘경도를 기다린다’는 말은

겉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안쪽에서는 사랑 앞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비로소 읽혀지는 겁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곁에 있고 싶은 사람,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

하지만 이 드라마가 끝까지 붙잡는 건 그보다 한 단계 더 안쪽의 기다림입니다.


사랑은 늘 먼저 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 앞에 설 준비가 사람에게 아직 없을 수 있다는 거죠. 〈경도를 기다리며〉의 기다림은 그래서 경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 사랑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어떤 사랑은 상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됩니다. 사랑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일이 되거든요.


지우는 늘 기다립니다. 경도를 기다린 게 아니라, 자기 검열이 멈추는 순간을 기다린 거죠. 이만큼 좋아해도 되는지, 이 사람 인생에 내가 끼어들 자격이 있는지, 이 행복이 염치 없는 건 아닌지. 이 질문들이 지우를 붙잡고 있었고, 그게 바로 내면의 검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염치'와 '기다림'은 같은 말입니다. 지우는 경도를 기다린 게 아니라 염치가 사라질 순간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야반도주’가 설명하고 ‘잘 헤어지라’는 말이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하는거구요.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고, 설레고, 끌리는 것. 하지만 실제 관계로 들어가면 사랑은 감정보다 훨씬 복잡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감정이기 때문이죠. 오랜 상처가 있다면 더욱 그럴수밖에 없죠. 사랑 앞에 서면 우리는 상대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검열합니다.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만큼 받아도 괜찮을까?' '내가 이 사람 인생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문제는 많은 사랑이 여기서 멈춘다는 점입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리지 못해서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나아지면." "내가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아." 아마도 그게 늘 지우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이 말들은 굉장히 책임감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을 미루는 가장 그럴듯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가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건 단순합니다. 사랑은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살아보는 용기라는 것. 슬프면 끝까지 슬퍼보고, 미안하면 끝까지 미안해보고, 사랑하면 도망치지 않고 남아보는 것. 그래야 비로소 다시 만남이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마치 야반도주의 용기처럼요. 사랑은 완벽해진 다음에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도망치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일일 겁니다. 염치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심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는 거죠. 그 염치가 정말 상대를 지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덜 아프기 위해 사랑을 계속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를요.

〈경도를 기다리며〉는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가 더는 도망치지 않아도 될 만큼

감정을 끝까지 살아내고, 그다음에야 다시 선택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이야기죠. 사랑을 미루지 않고, 피하지 않고, 끝까지 겪어낸 뒤에 그럼에도 다시 고르는 것. 아마 이 드라마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결국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도망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는 것이죠.

지우가 ‘염치’라는 말을 두 번이나 꺼냈다는 건, 그 말을 넘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염치라는 이름으로 늘 먼저 물러서던 사람이 이제는 경도를 기다릴 자리에 조심스럽게 서가고 있다는 신호죠. 도망의 언어가 아니라 ‘기다릴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가 되겠죠. 사랑은 어느 한쪽의 구원이 아니라

서로의 구원이 되는거죠.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비로소 지우에게는 경도가 되고 경도에게도 지우가 되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