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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水飛)의 추억

수영비행장을 아시나요?

by 박지욱

수비(水飛)의 추억


2016년 6월 말, 우리 국민들의 입과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들 중 하나는 ‘김해국제공항’이다. 부산시에 있는 유일한 공항이자, 김해에는 없는 공항인 <김해국제공항(PUS)>은 원래 부산의 수영강변에 있었던 <수영비행장>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부산 사람들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수영비행장>의 옛이야기를 알아보자.


지금은 대규모 쇼핑몰과 <영화의 전당>이 들어선 곳,‘센텀시티’로 부르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일대는 오래 전에는 <부산국제공항>이 있었다. 이 지역은 수영강이 바다와 만나면서 넓게 펼쳐진 평지를 이룬데다가 한반도에서는 일본 본토와도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에 이미 일제강점기 때에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이 이곳을 접수하여 ‘K-9’ 혹은 ‘동부산(Pusan East)' 비행장(Air Base)으로 불렀다. 6.25전쟁이 터지고 국군의 방어선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지금의 구마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경주포항고속도로를 잇는 낙동강 교두보가 구축되었을 때 K-9 비행장은 미국 극동공군의 B-26 인베이더(Invader) 경폭격기의 발진기지로 쓰였다. 동시에 부산 임시수도 기간(1950.8.18~1953.8.15.)에는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 역할도 했다.

휴전이 되고 1958년부터는 <수영비행장>으로 불렸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들이 뜨고내리는 곳의 명칭과는 어울리지 않게 ‘수영’이란 이름은 조선시대의 해군기지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조선시대에 해상 방위를 위해 남해안의 네 곳에 해군기지 역할을 하는 수군통제영(水軍統制營)을 세웠는데 줄여서 수영(水營)으로 불렀다. 이 해군기지의 이름은 한양 도성에서 봤을 때 오른 쪽인 서쪽부터 전라우수영, 전라좌수영, 경상우수영, 경상좌수영으로 불렀다. 지금의 해남, 여수, 통영, 부산에 있었다.

경상좌수군통제영 즉 경상좌수영은 지금의 수영강변에 있었다. 왜구가 오는 길목에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는 수사가 제일 먼저 도망을 가는 바람에 변변한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부산진과 동래를 왜군에게 넘겨주었다.

1895년의 갑오경장 후에는 완전 해체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 간신히 남아있다. 하지만 부산사람들은 수영이란 이름을 아주 사랑해서 지금도 수영구, 수영동, 수영강, 수영만, 등등의 지명에 남겨 쓰고 있다(어감도 얼마나 좋은가? 수영이란 이름의 부산 딸들도 얼마나 많은지!).

해군기지의 이름 수영을 이름으로 쓴 <수영비행장>은 1963년에는 <부산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수영이란 이름을 버렸고, 1976년에는 지금의 김해로 이전해 <김해국제공항>시대를 열면서 수영과는 완전히 헤어졌다.

국제공항이 떠난 수영비행장은 큰 역할은 못하고 월남난민 수용소, 육군부대, 컨테이너 야적장 등으로 쓰이며 지역사회 발전의 장애물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가 1996년에 군용 비행장이 폐쇄되면서 부산시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비행장 터 전체가 <센텀시티>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사오십대 이상의 부산사람들은 ‘센텀시티’보다는 ‘수비(수영비행장)’라는 이름이 친근할 것이다. 특히 동래와 해운대 그리고 남구에서 오는 간선도로가 만났던 ‘수비삼거리’는 대표적인 교통 요충지로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수영만이 매립되고, 센텀시티가 조성되면서 이 근처의 지형 변화는 컸다. 그 와중에 ‘수비3거리’는 ‘수비4거리’를 거쳐 ‘수비5거리’가 되었는데 그래도 예전의 ‘수비3거리’ 만큼의 명성과 무게감은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도 수영강을 건널 때마다 40년 전, 수영강을 건너 해운대로 가던 40번 버스의 지붕 위로 스치듯 낮게 날던 무거운 비행기의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가 귓가에서 들린다. 마치 이름만 남은 수비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경상좌수영. 수영사적공원.




좌수군 병선. 수영사적공원.




대동여지도. 지금의 수영강 일대. 수영사적공원.



대동여지도. 지금의 수영강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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