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윤 Apr 02. 2023

무대륙 이층의 낯가리는 개

힙스터들이 모이는 동네가 있다. 그곳은 무대륙. 실은 합정에 있기에 합정이 동네라고 해야 하지만 이 가게의 이름은 대륙이고 그래서 장소를 의미하고 따라서 동네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안쪽에 야외 테라스가 널찍하고 바깥으로는 여러 유형의 테이블이 비치된 홀이 있으며, 테라스와 홀을 잇는 중간에 요즘은 보기 힘든 대놓고식 흡연장이 있다. 이제 여기서 힙스터들은 멋스럽게 담배를 피운다. 오며 가며 봤는데 전자담배는 멋이 안 난다고 생각해서인지 보통 연초를 핀다. 흡연을 하지 않는 내게는 효용이 없는 곳이지만 잠깐이나마 멋스러운 고전문학 작가처럼 담배 태우는 자기 모습을 파트너의 눈동자에 비추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에 낭만을 더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요소다. 물론 가끔 으스대는 느낌의 사람들이 몇 있어서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이층과 삼층은 가게에서 — 적어도 내가 보기엔 — 잘 홍보를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의식 못한 지름길과 숨은 장소 찾기에 흥미가 있는 나는 용기 있게 이층으로 향했다. 유리문은 열렸다!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커피와 음식을 파는 비스트로 느낌이 내가 틀리게 찾아오지 않았다는 안도를 주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인기척은 있다. 나는 주문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 햇빛이 드리운,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향했다. 문을 젖히니 짧은 머리의 나보다 열 살 정도 연상으로 보이는 직원이 계셨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 교수님과 그녀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층의 테라스 격인 이곳엔 긴 테이블 두 동이 플라스틱 의자를 줄 세우고는 나란히 서 있었고 한쪽엔 농가 벽돌집에서 구비해 둘 만한 빗자루,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포대, 삽, 기타 생활 용품들이 선반 위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진돗개인지, 시바견인지 모를 노견이 있다.


그는(혹은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왈!, 하고 짖는다. 내가 놀라니 직원은 괜찮다며 넉살 좋은 미소를 보였고 개를 꾸짖었다. 개는 나를 경계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털은 군데군데 까치집을 지었고 눈동자 좌우의 균형도 안 맞고, 얼굴이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이 녀석의 경계를 뚫고 주문에 성공했다. 주인 — 직원 — 을 따라 개는 안으로 향했는데, 안쪽 정가운데의 넓은 소파에 앉은 나는 이 개와 친해지기 위해 개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근에 처음 보는 개와 친해지기 위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건너편 소파만 쳐다보며 따뜻한 카페라테를 홀짝거리는데 이놈은 내 주변으로 슥 오더니 똬리를 틀고 바닥에 배를 깔고 주저앉았다. 시선은 내가 보는 방향과 정반대다. 너도 내가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네 털을 쓰다듬고 억지로 껴안고 눈 마주치자고 고개를 쥐어대니 너는 짖은 것이다. 우리는 찰나지만 서로에게 시간을 줬고 다른 곳을 보지만 잠시동안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나는 웃긴 개라고 생각하며 기념으로 그 모습을 몰래 하나 찍고 신경 안 쓰는 척 커피를 계속 마셨다.


마시다가 날이 좋아 잔을 들고 아까 본 야외의 긴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새 테라스 문 앞에 녀석이 먼저 자리를 잡고 누워있던 터라, 나는 혼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꼬리 밟기에 조심하며 뒤를 지났다. 그러니 짖지 않았다. 개와 나는 같은 햇살을 즐겼다. 사람들이 없어서 좋았다. 하늘은 푸르다. 선텐 하는 겸 마구 햇빛에 부딪쳤다. 그러다 장난을 치고 싶었다. 예민한 녀석이라면 나무 테이블 위를 손톱으로 톡톡 치는 소리에 반응할 성싶었다. 그만큼 주변이 한적했다. 한번 툭, 녀석이 얼굴을 바닥에 붙이고 드러누운 채 눈만 치켜올려 날 쳐다본다. 아닌 척 딴청을 피우다 이번엔 두 번, 툭툭—. 이제 나라는 걸 녀석은 눈치챘다. 내가 보낸 신호는 너와 놀고 싶다는 것이다.


성질낼까 싶지만 이번엔 세 번, 툭툭툭. 녀석은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왈!, 성질을 냈다. 참 사람 같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주인이 마침 밖으로 나오는 차였고, 또 예민하게 군다며 죄 없는 그 개를 꾸짖었다. 개는 이미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는지 인간의 언어를 따라 하길 포기한 듯 듣고도 그대로 평안히 얼굴을 뉘어 드러누웠고,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했다는 데에 머쓱함을 느끼며, 뒤이어 개가 낯을 많이 가리나 봐요 —, 라고 한술 던졌다. 예민하게 구는 애라는 주인의 말에 나는 해명해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나 참았다. 이 개와 나는 닮았기 때문에 어색하지만 친해질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