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음 (주의)

리움미술관 카텔란 전시 후기

by 백윤

나은이 친구가 리움 미술관 표를 네 장 주었다. 이번주 주말 효력이 다하는 긴박한 티켓이었다. 일요일에는 아빠 환갑 식사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토요일에 가야 했다. 나은이는 새로 맡은 프로그램 편집이 남아 시간이 나질 않았다. 받아 든 네 장의 티켓 중, 두 장은 평소 신뢰하는 직장 동료에게 주었고 나머지 두 장 중 하나는 내가 쓰기로 했다. 마법처럼 하필 한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현장에서 만나면 남은 내 표를 건넬 생각이었다. 전시 하나 보러 가면서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이태원에서 한강진은 점심 이후 도착하면 주차 자리가 없을 걸 알기에 오전 일찍 움직였다. 오전 11시 한남동 주민센터는 자리가 많았다.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는데, 밖은 흐리지만 비가 떨어지지 않았다. 울음을 겨우 참는 잿빛의 하늘이었다. 리움 앞에 도착했다. 주차 대수가 얼마 되지 않는 매립형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난 보행로를 따라 가족, 연인, 친구들이 길을 올랐다. 터벅터벅 그들을 따라 리움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엔 한적한 한강진 거리와 다르게 관람객으로 대기 소파가 가득 차있었다.


카텔란 전시 입장엔 줄 서기가 필요했으므로 상설 전시를 먼저 보기로 했다. 어림잡아 삼국시대부터 근현대, 조선까지 닿는 도기나 장신구를 내놓은 조용한 전시였다. 사 층부터 시작해, 한 층 씩 내려오는 식으로 관람을 하라고 했는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표를 나눠준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옆에는 개성 넘치는 착장을 한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 직장 동료 H에게 어제 출근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왔느냐고, 농담을 하려다 나만 재밌지 무례할까 싶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형광색 버킷햇을 쓰고 있었다. 나는 오디오 해설에 쓰라고 미술관이 준 무선 헤드폰 음질이 좋지 않아 반납 후 다시 올라가는 길이라고, 당시의 날 소개했다. H는 이 사람이 표를 준 사람이라고 친구에게 날 소개했다. 하필 여기서 만나냐고 그녀는 농담했다. 은인을 마주쳤는데 하필 이라니,라고 맞받아치고, 서로 즐거운 관람이 되길 안녕을 고하면서 우린 각자 루트로 찢어졌다.




도기 관람을 마치고 카텔란 전시장으로 향했다. — 백자가 특히나 인상 깊었다. 대호라고 하던가.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백자의 가슴팍이 내 마음을 채우고 안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 발 디딘 전시장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렌즈가 있었다. 천장에 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벽 아래에 만화 톰과 제리의 제리가 탈 만한 작은 엘리베이터가 뚫려있었다. 온갖 기행이 카텔란의 아이디어로 익살, 해학을 두르고 물질로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셔터를 눌렀다. 감상하기 전에 사진을 먼저 찍었다. 실은 감상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원하는 모양이 이미지 파일로 스마트폰에 저장되었다 싶으면 다음 작품으로 이동했다. 카텔란의 전시는 지금 유행이다. 꼭 먹어봐야 할 인터넷 맛집 메뉴랑 비슷해졌다. 의문인 것은, 맛집 메뉴를 사진으로 찍는 것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휴대폰에 저것을 담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기 어려웠다. SNS에 올린다고 해도, 어째서? 비싼 차도 아니고, 비싼 차라고 해도 자랑거리는 아니고, 심지어 무료 전시에 수천수만 장이 이미 온라인에 퍼져있는 이 사진이 어떤 희소성과 가치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나의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 왔고, 그래서 팬시하고, 그래서 내가 유행적인 이 전시를 보았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것일까.


카텔란의 미술 철학은 기성 예술에 대한 저항이다. 파괴다. 분해다. 그는 아크릴판에 Z 자로 흉한 벤 자국을 남기고 예술 권력의 허례허식을 완전히 거부했다. 자기 자신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의인화해 (카텔란은 자기를 사람이면서 다른 종으로 생각하는 듯싶고, 작품으로서 사람처럼 자기를 드러냈으므로 이는 의인화로 보인다.) 진지하게 자기 작품을 다루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관람객들이 누르는 셔터는 그를 우상화하는 조각을 한 조각씩 쌓는다. 해시태그 하나로 카텔란을 봤다면 트렌디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낳는다. 리움미술관, 천장에 매달린 말을 그럴싸하게 담음으로써 현대 미술의 양가성을 이해하는 자처럼 자기를 꾸민다. 카텔란에게 계속 조금씩 의존한다. 자기가 느꼈던 감상, 비판은 별로 없다.


나는 왼팔을 뒤로 죽 빼고, 그걸 오른팔로 붙들고 작품 사이를 걸었다. 작품 '냉장고'(였던가?)를 관람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 줄을 섰다. 그리고 순서가 되면 눈으로 먼저 보지 않고 카메라부터 켰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갇힌 카텔란을 찍고 재료를 찍었다. 그리고 도망치듯이 다음 사람에게 순서를 내주었다. 카텔란은 이 광경을 어떻게 생각할까? 순서가 돌아온 어떤 여성 노인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이 과정을 따랐다. 감상은 전혀 없었다. 기회를 나누기 위해 휴대폰으로 먼저 찍고, 사진으로 감상해야 하는 고도의 배려심이 작동하고 있는 걸까? 난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냉장고 바닥부터, 기계의 위에 쌓인 먼지까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호기심을 북돋으며 작품을 지켜봤다. 냉장고 안에 배치된 식료품들은 대충 아무것이나 넣은 것일까, 아니면 치열한 고민의 결과일까.


관람객 사이엔 팔짱을 끼고 미술관 전체를 감상하듯 다니는 히스패닉과 동양인 듀오가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작품이 무얼 하는지 궁금한 듯 서로 얘기했다. 한국에서 예술이 과연 의미는 있을까? 마라샹궈에 어떻게 하면 소고기를 추가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며 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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