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내게 물었다. 직장에서 지나치게 욕을 먹는 후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욕하는 명분이 있다고 인정을 해줘야 할지, 아니면 자기는 이러한 생각이 드는데, 적응을 못할 수 있는 게 신입사원인데 사람들이 너무 쉽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며, 동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명백히 잘못한 것도 있고 꼴 보기 싫은 일도 있다고 한다. 자기는 그 후배가 안쓰럽다고 했다. 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선후배라는 말이 잘못 됐다. 선후배라는 말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건조하게 경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위아래를 나누는 말이다.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권위체계에 편승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어쩌다 적절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이지, 이미 선후배란 말은 사람의 격을 나누고 자유를 억압하는 쪽으로, 우리 사회에서 변질됐다. 따라서 그 후배라는 사람, 그 사람을 단순하게 동료로 볼 것이고, 다만 입사하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특성을 가진 자라고 인식하길 조언했다. 키가 크고 작고, 얼굴이 넓고 좁고,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하얗고, 목소리가 굵고 얇은 것처럼, 회사에서 보낸 시간은 각자가 가진 특성이다. 신입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하고, 오래된 사람은 그러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잘하거나 좁은 분야를 전문적으로 안다. 거기까지다. 거기에 위계는 없다. 특성이다.
그렇다면 우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특성을 가진 자를 위계 없이 바라볼 수 있다. 몰랐기 때문에 실수한 것이다. 가르쳐주지 않은 게 대부분일 것이다. 눈치껏 하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다. 후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으른 태도가 생기는 것이다. 동료로 인식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그 사람의 특성을 고려해 조금 더 관대하고 기다려 줄 것이다. 실수가 없도록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전달할 것이다. 그런데 싹싹하고, 사회생활 잘하고, 실수해도 책임 소재 가리지 않고 인정하는 자를 소위 잘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쉽다. 그건 틀렸다. 그런 폭력적인 사고방식이 뒷담화를 만들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만약, 억울해 답답했던 어떤 신입직원이, 어느 날 낙인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 후배인데 그 정도밖에 못했고,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는 아주 먼 미래에, 인간이 더 문명화된 시기에, 교과서에 실릴 만큼 황당한 시절로 기록될 것이다. 산업혁명 땐 아동인권이 없어 아이들이 굴에 들어가 죽을 정도로 일했다. 거리에서 대뜸 반말하는 연장자는 이제 무식한 사람으로 불린다. 선후배를 따지는 그럼 그네들은? 다를 바가 없다.
내게 직접 영향을 끼친 해프닝에만 집중하기. 상대의 실수나 잘못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면 거기서 둘이 해결하면 그만이다. 해결이 안 된다면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사실만 객관적으로 전달하면 된다. 내가 가려워서 주변에게 소문을 낸다, 는 사람의 격을 이미 나누고, 괴롭히는 꼴이다. 신입직원은 이 선후배 프레임에 의해 불가피하게 약자로서 조직 생활을 시작하는데, 알면서도 소문을 내는 건,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정의로운 줄 착각하고 편리한 가십을 만든 것뿐이다.
특성이 다른 사람에겐 다른 대접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똑같이 높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라 할 것인가? 특성을 고려한 대접을 누구보다 받고 싶어 하면서, 자기가 힘을 가졌다고 생각이 들면, 그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사람을 괴롭히게 되는 게 인간의 잔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