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공과 사를 잘 구분하고 싶다면

by 백윤

일과 개인사를 잘 구별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을 갖추고 싶다면 어쩔 수 없게도 경어를 원칙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말에서 사람 사이에 적절한 어투를 고른다는게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스무 살 차이 나는 사장님이 신입사원에게 세 번째 만남부터 말을 놓기 시작하는 것이랑, 두 달 먼저 들어온 선배가 첫 만남부터 말을 놓아도 되냐 물으며 반말을 시작하는 건 보통의 역사를 살아온 한국사람에게 라면 다르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는 개념이 나이와 연차입니다. 그 두 개가 맞물려 선후배 관계를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말 놓는 게 대수냐며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지만, 기업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거나 태초에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곳에서는 서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대원칙은 존댓말입니다.


연로한 사람이 젊은이에게 은근해서 드러나지 않는 포인트에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면 우린 그 사람을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나보다 이 조직에 일찍 들어왔지만, 감정을 자제하고 논리를 바탕으로 내게 존대를 해주는 사람을 능력도 좋고 인성도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은 사용하는 말에 따라 그다음에 떠오르는 문장이 시시각각 바뀌게 되는데 최고 단계의 논리적인 대화의 근간은 존댓말입니다. 이거 해, 저거 해,라고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때에는 반말이 나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보통 그럴 것 같습니다. 모두가 공동의 목표에 신속함이 아주 중요하다는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복잡한 관계의 벽을 허물고 반말을 합니다. 거의 살이 맞닿기 직전까지 바투 가까워집니다. 이러한 경우는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스포츠 같지 않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끼리 어쩌다 보니 한 곳에 오래 머무르게 되어, 직장 동료로 시작해 관계를 맺는 게 대부분입니다. 일이 바쁜데 언제 이것저것 따지냐고 하기엔 우리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아침에 면도를 하고 이를 닦습니다. 최소한의 방어선이란 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존중, 상대에 대한 배려. 그것이 말의 최소 방어선 존댓말입니다. 특이점이 필요할 때에, 리스크를 감수하고서 하는 것이 반말입니다. 이 정도만 인지해도, 한국말로 어떻게 친절한 소통과 효율성을 다 잡을 수 있을까 여전히 어렵지만, 애매함 속에 때마다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래서 똑같이 중간에 반말을 섞어도 덜 불편한 사람, 더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꽤 자주, 양방향 반말도 아닌 것이 위라고 해서 공동의 목표의식과 연대감 없이 반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이제 그런 것이 쓸모 있는 시대가 지났습니다. 한쪽이 편하자고 선택한 지루한 방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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