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유 튀김이 맛있는 이유
아름다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한 병과 튀김용 냄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조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종의 ‘요리의 죄악’처럼 여겨집니다. ‘액체 황금’이라 불리는 귀한 올리브유는 섬세한 향을 가졌고, 무엇보다 발연점이 낮아 튀김 요리에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스페인에서는 수 세기 동안 바로 그 올리브유로 모든 것을 튀겨왔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마드리드의 타파스 바에서부터 지중해의 작은 식당에 이르기까지, 바삭한 크로켓과 신선한 생선튀김이 올리브유 속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라면요? 우리가 철석같이 믿어온 상식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튀김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EVOO)를 튀김에 사용하는 것을 ‘낭비’이자 ‘초보자의 실수’로 여깁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부엌에서는 이 ‘금기’가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스페인의 국민 간식인 파타타스 브라바스(Patatas bravas)부터 크로켓(croquetas), 생선 튀김(pescaíto frito)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통 요리가 올리브유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완성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관습으로 치부한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놀랍게도, 과학은 스페인 사람들의 지혜가 옳았음을 증명합니다. 그라나다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채소를 튀길 경우 기름에 풍부하게 함유된 폴리페놀과 항산화 성분이 음식으로 옮겨가 오히려 영양 프로필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올리브유는 음식 속 비타민 A, D, E, K와 같은 지용성 비타민의 체내 흡수를 돕는 운반체 역할까지 합니다.
여기에는 요리 과학의 비밀도 숨어있습니다. 뜨거운 올리브유는 음식 주위에 빠르게 얇은 막을 형성하여 기름이 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 결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기름지지 않고 가벼운 튀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건강식으로 꼽히는 지중해 식단의 핵심 비결 중 하나입니다.
‘발연점이 낮다?’ : 진짜 중요한 것은 ‘산화 안정성’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튀김에 부적합하다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낮은 발연점’입니다. 발연점이란 기름이 타기 시작하며 유해 물질을 생성하는 온도를 말하며, 보통 튀김 요리 온도보다 낮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 통념은 오래되었거나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합니다. 고품질의 신선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최대 410°F (약 210°C)까지 발연점이 올라갈 수 있어, 일반적인 튀김 온도(350-375°F / 176-190°C)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연점이라는 익숙한 개념 너머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기름의 열 안정성을 측정하는 진짜 척도는 바로 ‘산화 안정성’입니다. 이는 기름이 고온에서 산소와 얼마나 잘 반응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를 나타냅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다른 씨앗 기름(옥수수유, 콩기름 등)보다 이 산화 안정성이 월등히 뛰어납니다.
그 비밀은 화학 구조에 있습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의 주성분인 단일불포화지방산은 다중불포화지방산보다 훨씬 안정적입니다. 이는 마치 화학적으로 더 단순하고 견고한 구조를 가져 열과 산소의 공격을 잘 막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폴리페놀’이라는 강력한 천연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열이 가해질 때 기름 자체가 산화되는 것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36시간 연속으로 가열한 후에도 인상적인 안정성을 유지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상징 올리브 가지’
올리브는 서양 문명에서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평화, 신성함, 풍요의 근본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 깊은 의미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화와 희망: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대홍수가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이 바로 올리브 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유래하여 올리브 가지는 오늘날 국제연합(UN)의 로고에까지 사용되며 전 세계적인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혜와 승리: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포세이돈과 경쟁했습니다. 이때 그녀가 시민들에게 선물한 것이 바로 올리브나무였습니다. 식용, 조명, 목재 등 무한한 쓰임새를 가진 올리브나무는 시민들에게 풍요를 안겨주었고, 아테나는 승리하여 도시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신성함: 성스러운 기름으로 여겨진 올리브유는 종교 의식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그리스도(Christ)’라는 이름의 어원 역시 올리브유와 깊은 관련이 있을 정도입니다.
서양의 김치, 올리브? : 닮은 듯 다른 ‘소울 푸드’
서양의 올리브 절임과 한국의 김치는 각 문화권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는 ‘소울 푸드’라는 점에서 놀랍도록 비슷한 위상을 가집니다. 두 음식 모두 식탁의 필수품이자, 지역과 가정마다 고유한 레시피를 가진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빵을 올리브유에 찍어 먹는 것 : 단순한 식전 행위가 아님
김치가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듯, 지중해 사람들에게는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또 하나의 '소울 푸드'가 있습니다. 바로 빵 한 조각과 황금빛 올리브 오일입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식전에 빵과 함께 올리브유가 나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빵을 올리브유에 푹 찍어 먹는 이 행위는 단순히 입맛을 돋우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것은 마치 한국인이 매 끼니 밥상에 김치를 놓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일상의 루틴’입니다. 올리브 오일은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지중해 요리의 맛과 건강, 그리고 정체성의 기반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식탁 위의 역사 한 조각
오늘 우리는 올리브유 튀김에 숨겨진 과학적 진실부터, 평화와 지혜를 상징하는 문화적 의미, 그리고 한국의 김치와 비교되는 ‘소울 푸드’로서의 위치까지 올리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리브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그 안에 과학과 역사, 문화가 겹겹이 쌓인 복합적인 존재였습니다.
결국 스페인의 식탁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이라 믿었던 지식은 정말 완벽했는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잃어버린 전통의 지혜는 없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튀김 요리는 수 세기에 걸쳐 검증된,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은 현명한 전통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