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삶이 완성된다 - 프란츠 카프카-
2024년이 밝았다.
별다를 것 없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지만, 2023년이란 이름에서 2024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2023년 마지막 날에서 겨우 24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어제보다 한 살 더 많은 32살이 되었다.
(왜 32.1살, 32.2살은 없는 걸까)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삶에는 죽음이 반드시 필요하고, 죽음이 있어야 비로소 삶이 완성된다
2023년이 끝났기 때문에 2023년이 완성되었고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똑같은 24시간, 하루지만 날짜가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 아닐까.
2024년이 끝날 때 2024년이 의미 있었노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계획을 세우고 소원을 비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을 맞이하며 읽기 좋은 책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한다.
봄바람처럼 산뜻하고 싱그러웠던 스무 살 때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수능 하나만을 바라보고 견뎌온 초, 중, 고 10대의 시절이 끝나고 시작된 20대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23살, 본과 1학년 때 카데바 실습을 하며 마주한 첫 시체(?)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였다. 하지만 카데바 실습은 이내 끝이 나고, 터널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본과 공부를 하며 그 고민은 흐릿해졌다.
이후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하며 다시 한번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심폐소생술을 했음에도 깨어나지 않아 사망선고를 내렸던 환자도,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응급실로 들어왔음에도 건강히 회복하여 두 발로 걸어 나가던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죽음'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있지 않고 '환자', 즉 제3자에 있었다. 마치 나는 죽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어느덧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30대가 되었고, 술을 먹어도 숙취 하나 없던 내가 점차 숙취에 힘들어하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헐떡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유난히 책을 많이 읽었다. 1주에 한 권씩 책을 읽어 52권 읽기가 목표였다. 습관이 되어버린 독서 덕분에 목표를 훌쩍 넘어 85권의 책을 1년 동안 읽었다. 그중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이었고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처음으로 '죽음'의 주체를 '나'로써 고민하였기에.
사람들은 본인들이 영생을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운다. 짠테크를 하는 것도, 재테크를 하는 것도 행복한 노후 생활을 오랫동안 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죽음이 결국 찾아온다면 그걸로 "끝"이다. 나의 존재는 비존재로 돌아가고, 나를 기억하는 이들조차 죽는다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돌아갈 것이다.
물론 수년간의 병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사람의 목숨은 질기고도 강하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처럼 죽음이 갑자기 찾아와도 쫓아낼 수 있다. 암처럼 죽음이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워도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죽음은 언젠가 온다는 사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바로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가슴속에 새겨두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과연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사는 삶과 아닌 삶은 무엇이 차이가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