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Jin Apr 22. 2024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나로 살았으니까 나로 죽을래

주말 오후 9시 20분이 되면 나와 아내는 약속이나 한 듯이 TV 앞에 앉는다. 눈물의 여왕을 보기 위해서다. 


극 중 홍해인(김지원 배우)은 머리에 종양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백현우(김수현 배우)는 수소문 끝에 독일에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낸다. 예후가 비교적 좋은 수술은 한 가지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수술 전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사실 해마가 손상되는데 장기 기억이 소실된다는 건 말이 안 된... 아니, 다시 몰입해서 보자)


홍해인은 두 가지 기로에 서있다. 수술을 받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수술을 받고 새 삶을 얻지만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3년 전 신혼여행지를 다시 찾은 홍해인은 백현우에게 말한다.


그날 밤의 향기, 달, 바람. 다 또렷해. 그런 것이 기억이잖아. 살아있다는 건
그 기억들을 연료 삼아서 내가 움직이는 거야.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다 사라지는 거라고




나한테 여기도 그냥 모르는 풀밭이 되는 거고, 너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런데 어떡해. 그게 나야. 그래서 난 그따위 수술은 안 받겠다는 거야.
나로 살았으니까 나로 죽을래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제를 기억하기 때문에 오늘이 존재한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다. 이전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순간, 그건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태까지 존재하던 나는 죽고, 새로운 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 아닐까.


한편, 해인이 고모 홍범자(김정난 배우)는 말한다. 

해인아 너 잘 생각해 봐라. 너 개이득이야. 너 좋은 기억도 사라지겠지만 나쁜 기억도 사라지는 거잖아. 


어떤 누구는 죽을 만큼 힘든 기억들을 안고 산다. 그들에게는 '개이득'인 걸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적당히 나에게 유리한 것들만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기억하는 과거들이 내 인생이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나로 살았으니 나로 죽겠다는 홍해인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


홍해인이 백현우에게 했던 말이 있다.

잘 생겼지, 착하지 똑똑한데 잘난 척도 안 하지.
백번 다시 태어나도 백번 다 당신하고 만나고 싶은데.


어쩌면 작가도 수술을 받고 기억을 잃은 홍해인을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해피엔딩이 보이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정장애의 원인은 이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