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하고 있는 거지? 일단 해봐야지
직장인의 삶은
방학 없는 영원한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다.
중학교로 올라가는 건 이직이 있어야 가능할 테고
방학은 영원히 오지 않는 끝없이 반복되는 삶.
물론 내가 느꼈을 때만 그럴지도 모른다.
마냥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에는 이놈의 '역병'이
한몫을 더했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지 이제 3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오히려 비대면으로 만나는 게
익숙하고 집에 되돌아가는 시간이 줄어드니
더욱 진솔한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한동안은 아무튼 집 -> 회사를 반복했다.
연애도 그만둔 지 4개월이 넘어가니
일상이 좀 더 단조로워졌다.
이래서 다들 결혼을 택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만
나는 다른 거를 택해버렸다.
작년엔 정말 벼르고 벼르다 '펜'기능이 있는 폰을 사버렸다.
갤럭시 울트라 21
원래는 기계에 큰 관심 없던 터라
핸드폰도 3-4년을 계속 'LG'폰을 쓰고 있었다.
남들이 LG에서 폰을 만드는 줄 몰랐다는
말을 할 때도 미동도 않고 버텼더랬는데
그런데 낙서를 끄적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하필 제일 비싼 폰을 사버렸다.
아직도 카메라 렌즈가 왜 5개나 필요한지 모르겠고
방금도 카메라 렌즈가 그래서 총 몇 개인지 세보려
폰을 뒤집었다 놨다.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나 끄적댈 수 있는
낙서장이 생겼다는 생각만으로 무료한 일상에서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내 그림실력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수준인데
한 번은 우리 집 강아지를 연필을 사용해 그린 걸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랬다.
한가닥 한가닥 북슬북슬한 나의 터치감을 보고
'설인'(고대에 나온 괴물)을 그린 거냐며 모두들 웃어버렸다.
(뭐 나도 웃겨서 같이 웃었다.)
인스타그램을 한창 하던 중
월요병에 걸린 월요 새를 보았다.
이름은 개구리 입 쏙독새 (Frogmouth bird)로 호주에 사는 새다.
올빼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은 매와 독수리종에 가깝다고 한다.
부리가 개구리 입처럼 생겼다 해서 이런 귀여운 이름이 붙었다.
내가 본건 정확히 그 올빼미종의 새끼의 모습이었는데
세상 억울하게 생긴 표정에 눈은 초롱초롱한 게 너무 귀여웠다.
원래도 귀여운 동물에는 사족을 못쓰는 성격이라
한참을 보고 있었다.
억울하게 생겨서 털은 다 뭉개진 모습이
꼭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을
사는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 그리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이라고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그려본 게 다였는데 갑자기 그림이라니
이것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먼저, 툴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리는 게 좋은 특성을 고려해
내가 갖고 있는 건 갤럭시(모바일) 이거로 뭘 할 수 있을까 찾던 차
모바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어플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빠듯한 직장인에게는 무료가 최고다.
1. 메디방페인트
제일 먼저 눈에 많이 들어 온건
비전문가들이 많이 쓰는 '메디방페인트'
모바일과 PC가 연동되어
언제 어디서나 클라우드에 저장된 파일을
가지고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최고로 꼽은 장점이다.
물론 단점은 가끔가다 저장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작품이 중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
그리고 광고를 시청해야 저장이 된다는 것이지만
무료로 쓰는 장점에 비하면
나한테는 아주 흡족했다.
처음에 그린 개구리 입 쏙독새의 모습은
디지털 드로잉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처음엔 툴의 기능을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레이어'의 기능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투명 배경의 필요성과 함께 점차
작업물을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작품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울 정도다.
정돈되지 않은 선들의 크기와 색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작업물을 보여주며 뿌듯해하던 모습이
지금 보면 정말
엉망진창이어서
이마를 탁 치게된다.
그러다 목표가 생겼다.
작업물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목표지만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 그 후로는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앉은자리에서 4-5시간을 가만히 그림만 그렸으니
그 모습을 본 엄마가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공부할 땐 30분마다 밖으로 나와 왔다 갔다 했던 나였는데
(대졸인 게 신기함)
그 후의 작업물을 보여주자면
정말로 모양새를 갖춘 캐릭터로 탄생한 새기
두 번째 결과물부터는 'vullo'라는 동영상 만드는
어플을 활용했다.
역시나 나는 귀차니즘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짧게 무언갈 하는 걸
더 좋아하는 인간이라 어플을 통해서
그걸로 동영상 만들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생성해
꾸준한 게시물을 업로드 중이다.
계정명은 '우리 새끼'를 의미하는 'woori_segi'
나를 팔로워 하는 사람들은
'새기덜'이라고 부른다.
그냥 만들어 봤다. 재미로
월요병을 잊자고 시작한 게
무기력증을 잊어보자고 시작한 게
나한테 에너지를 준다.
현재는 이모티콘 36가지를 만들어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에
제안한 상태다.
'새기'덕분에 일러스트에 관심도 생겨 공부해 보고 있다.
이게 쓸데없는 짓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재밌으니까 해보련다.
www.instagram/woori_se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