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잘 사용해 오던 카메라 가방이 하나 있다.
카메라 가방 같지 않은 카메라 가방을 찾아 헤매던 중에
디자인과 기능이 조화로워 5년 전 해외 직구로 구입한 물건이다.
반년 전에 카메라 수납부 지퍼가 고장 나 버린 가방은 카메라 가방으로의 효용을 잃었다.
해외 본사에 문의한 들 수리비를 청구하라는 말 뿐이다.
국내에는 정식수입사나 AS센터가 없다. 동네 수선집 몇 군데를 찾아가 봤지만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카메라가방의 다양한 기능이 담긴 내부 구조가 복잡해 수선이 어렵고, 수선비에 비해 품이 많이 들기 때문 이리라.
카메라 상가가 모여있는 남대문에 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수선 명인이 있다는 의정부도 알아봤다.
의정부나 남대문을 가려면 따로 휴가를 내어 가야 할 판이다.
그러던 중 회사 근처에서 수선집을 찾게 됐다. 빽빽한 오피스, 관공서 사이에 수선집이라니! 신기했다.
찾아가 보니 명품 가방, 신발 등을 전문적으로 수선하는 곳이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후기를 보니 칭찬 일색이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아쉽지만 이 가방의 운명은 여기 까지라 여겼다.
찾아간 수선집의 대표로 보이는 아저씨는 돋보기안경을 목에 걸고,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낚시 조끼를 입고 있었다.
수선에 필요한 공구와 부품들이 주머니 망사 틈으로 보이고 굳은살이 배긴 손마디에서 장인의 분위기가 물씬했다.
가방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가능해요, 다만 수선 주문이 밀려서 시간은 좀 주셔야해요.‘ 라고 한다.
받아준 게 고마웠다. 그저 튼튼한 지퍼로 수선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수선비 5만 원을 선불로 치르고 대략 보름 후에 찾아가기로 했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 연락하니 아직 수선 전이라 한다. 급하지 않다 했지만 약속한 날이 다가오니 바쁜 일 없이 조급해져 버렸다.
다음날 수선집 사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다 됐으니 찾아가라고.
가방은 깨끗하고 투명한 비닐에 포장되어 있었다.
똑같은 지퍼로 수선자국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새 가방이 되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함께 웃는 장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마웠다. 똑같은 지퍼를 찾아 가방을 해체하고 다시 빈틈없이 조립하는 일이 얼마만큼의 수고가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에 쌓여 방치됐던 물건은 보란 듯이 새것이 되었다. 망가진 물건의 가치를 복원해 주는 장인의 손길이 그저 놀라웠다. 똑같지 않아도 튼튼한 지퍼라면 좋겠다는 바람에도 장인의 손길은 허투루 마무리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후기의 찬양 일색이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이렇게 탄성을 지를 정도니.
이런 곳은 널리 홍보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인은 손사래를 내젓는다. 메인인 명품가방과 신발 대신 카메라 가방이 몰릴 것에 대한 우려다. 사람이 여럿이면 모르지만 장인은 한 사람뿐이다. 스스로의 임계치를 잘 알고 이미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일감이 쌓여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 5만 원으로 30만 원이 넘는 가방이 제 기능을 회복했고, 새로 물건을 사지 않으니 환경보호에도 일조한 셈이다. 마침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지구에서 한아뿐’의 등장인물도 수선집을 운영한다니 우연 치고는 기묘하고 재미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