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윤리와 저작권의 이야기
“그 시,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내 시를 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베낀 거였다. 시집에서 본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그땐 그게 뭔가 큰 잘못인지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눈감았다.
그날 이후 ‘창작’이란 말은 내게 불편한 단어가 됐다. 무언가를 ‘내 것처럼’ 만들면서도 누군가의 것을 베끼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 한편이 늘 찝찝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하게도 이것저것 끄적이고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너무도 인간적인 순간들이, 메모장 속에 쌓였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내 손을 멈추게 했다. ‘이건 정말 내 말일까?’
그즈음, 나는 창작자들의 저작권 침해 사례를 보게 됐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글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브랜드, AI에게 창작물을 학습시키면서 정작 출처는 표시하지 않는 플랫폼들, 표절 논란으로 활동을 접게 된 아티스트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어린 시절 했던 ‘베껴쓰기’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긴 결과였다는 걸.
저작권은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창작자에게 “당신의 이야기는 유일하고,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해주는 일종의 존중이다. 내가 창작을 시작하면서 그 권리의 무게를 체감하게 되었다. 내 마음에서 태어난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무단으로 퍼지고, 내 이름 없이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야 깨달았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자존감과 연결된 문제라는 걸.
요즘은 종종 이런 문장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AI가 썼습니다.”
하지만 그 AI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배웠을까?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작가의 문장을 학습시킨 AI. 그 과정에 정당한 동의는 있었을까?
창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의 창작물인지 아는 것 또한 모두의 책임이다.
나는 이제 글을 쓸 때, 더 신중해졌다. 메모장에 적힌 단어 하나도 내 것이 아니면 지운다. 그리고 종종 그때 그 시를 떠올린다.
어쩌면 그건, 아주 오래된 사과문이었다.
표절의 기억은 부끄럽지만, 그 부끄러움이 나를 더 나은 창작자로 만든다. 그리고 누군가의 창작물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 이름 잃은 창작자들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