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워홀에서 마음을 따라 한 일들
더블린에 온 지 이 주 만에 시티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마케팅 일을 시작했었다. 지구 반대편인 아일랜드까지 와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회의감을 느껴 이 주 만에 그만두고 집 근처 더블린에서 가장 큰 고급 스포츠 콤플렉스인 West Wood Club 일층에 위치한 아이리시 카페에서 두 번째 일을 시작했다. 트라이얼에서 접시도 깨고 사과 즙을 만들기 위해 사과를 자르다 손가락을 비어 피가 나기도 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웃는 나의 모습과 긍정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어 아무리 실수를 했고 카페 경험이 없었어도 채용을 하기로 했다고 매니저가 말했다.
스포츠 콤플렉스의 직원들과도 친해져서 카페 일이 끝나면 무료로 헬스를 하고 마무리로 수영과 자쿠지를 즐겼다. 낮에 일찍 끝나는 아침 시프트일 때는 남은 스무디를 퇴근길에 테이크 아웃해 마시며 해안 산책로를 쭉 따라 걷다가 중간에 잔디밭에서 요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소소한 삶의 행복들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돌아온 큰 도시에서의 삶에서도 틈틈이 자연과 운동을 찾는 것 같다.
어려운 아이리시 손님들의 발음도 좋았고 특이한 샌드위치 조합을 만드는 것도, 카페 라테에 나만의 추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운동하는 건강한 손님들과 얘기하는 것도 행복했다. 이렇게 한국 돌아가기 전까지 일 년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오 개월이 지났고 일 년 동안 카페에서만 일하러 아일랜드에 온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변에선 새로운 잡을 구한 후에 그만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선 변화를 원했기에 카페에 노티스를 냈다. 새로운 일을 구하기 전까지 계속 일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난 과감히 정해놓은 날까지만 일을 하고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가치, 예술이 흐르는 그래프턴 거리
유럽의 실리콘밸리인 더블린은 최저시급도 가장 높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천국이었다. 일은 Indeed, gumtree, job.ie 등의 잡 페이지에서 위치를 더블린으로 한 후 관심분야 필터링해서 resume와 cover letter를 보내면 된다. 전화, 이메일 등으로 연락이 오면 정중히 답을 하고 인터뷰를 보러 다니며 세 번째 일을 구했다.
오로지 그 회사만을 위해서 진심으로 커버레터를 쓰고 열정을 다해 면접을 본 후 최종으로 합격한 Netflix와 Victoria’s Secret 둘 중에서 고민을 했다. 더블린에는 Google, Facebook, Microsoft, Accenture 등 유명 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해 유럽 전역에서 일을 하러 온다. Netflix도 마찬가지로 좋은 회사이지만 앉아서 많은 콘텐츠들을 검수하며 한국어 자막을 보게 될 것이었다. 반면에 Victoria’s Secret은 아일랜드의 유명한 거리에 새로 오픈하는 곳으로 첫 Retail경험에 아이리시 친구들과 더 어우러질 기회이기에 최종적으로 Victoria’s Secret을 선택했다. 회사, 직위, 연봉을 떠나서 재미, 문화라는 나의 삶의 가치로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가수 애드 쉬런(Ed sheeran)의 Galway girl 가사에 나오는 그래프턴 거리(Grafton street)가 있다. 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 촬영지이기도 하고 데미안 라이스가 무명시절 거리공연을 하던 곳이다. 더블린의 대표적인 거리로 곳곳에서 예술 공연을 볼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 숍들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 거리의 끝에는 아름다운 세인트 스테판스 그린(St. Stephan’s Green)이라는 공원이 있다. 거리의 중간에 새로 생긴 5층짜리 핑크색 빅토리아 시크릿 건물에서 오픈 멤버로 두 달 동안 교육을 받고 한국 오기 전까지 일을 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반년 남았음에도 충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했고 실제로 피부로도 느꼈다.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일을 할 때에는 일부러 일찍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며 지나갈 때마다 듣는 거리 공연의 음악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매번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아쉬워 아예 공연들을 보기 위해 삼십분은 일찍 출근해 거리의 예술들을 느끼며 출근했다. 퇴근하고는 펍에서 공연을 보며 친구들과 맥주, 칵테일, 위스키 한 잔씩을 했다.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 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 소설 ‘율리시스’에 서술된 것처럼 실제로 펍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일랜드의 바비인형 같은 친구들과 너무 재미있는 게이 친구들과 빅토리아 시크릿의 어마어마한 컬렉션들을 보며 일하는 것은 마치 영화와 같았다. 이때 느낀 건 육체적으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온 매니저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24시간 스케줄 근무이기에 밤샘근무를 하는 스케줄에는 영국에서 온 물류 박스들을 옮기고 물건들을 정리하는 힘든 작업을 했지만 새벽에 노래를 틀어놓고 중간에 댄스타임을 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숍의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향수 시향을 나눠줄 때도 있었고 브라 피팅룸에서 사이즈 측정을 도와줄 때도 계산을 해 줄 때도 팬티 바에서 수많은 팬티들을 정리할 때도 있었다. 올블랙으로 꾸며 입은 채 핑크색 줄자를 목에 걸고 더블린의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을 활보할 때면 내가 마치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이 된 것만 같았고 나오는 노래들에 신나 춤을 추기도 했다.
주로 퇴근 시간이 같은 친구들과 다 같이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옆의 펍으로 가서 한 잔씩 했다. 난 만치 애드 쉬런의 노래 가사 안의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Shape of you”가사의 ‘The bar is where I go’ 처럼 정말 바가 매일 가는 곳이었다. 펍을 가거나 친구의 집이나 나의 집에서 맥주나 와인을 즐기며 음악과 대화에 취했다. 아마 내 생에 술을 가장 많이 마신 일 년 일 것이다. 아이리시 친구들과 기네스뿐만 아니라 맛있는 맥주들 위스키들을 가장 많이 마시고 즐길 수 있었던 예술의 천국이기도 한 아일랜드는 사실 술의 천국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