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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쏨바디 Aug 15. 2022

갈수있을 때 가는 회사원의
2022 북유럽 음악여행#4

오전 7시 30분의 기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전 5시 30분쯤에 다시 눈이 떠졌다. 

스웨덴에 도착한 이후 충분히 쉬지 않았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더 자려고 뒤척이다가 잠이 안 와서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좀 피곤하더라도 기차에서 눈 좀 붙이면 되니깐. (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밤 천둥 때문에 눈이 떠졌던 게 생각나서 바로 커튼을 걷혀 창문으로 날씨를 확인했다.

아니 웬걸? 언제 천둥과 번개가 쳤냐는 듯  비는 다 그치고 맑은 날씨인 거다. 아니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강수확률 80퍼센트였는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바뀔 수가 있나? 뭐 그런가 보다. 


기차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고민하다가 '달리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날씨도 좋고 마침 딱히 할 것도 없었다. 달리기는 건강도 챙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뛰면서 동시에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사전 탐색'해 볼 수 있는 좋은 운동이기 때문에 상황과 여건이 된다면 꼭 해보는 걸 추천하는 바이다. 원래 여행 때마다 달리기를 했었던 건 아니고 나도 이번 여행부터 하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스웨덴들이지만 역시 토요일 오전 6시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을까. 관광객들의 많이 모여있었던 집 앞 도로를 포함, 길거리에 아무도 없었다.  마치 고요한 도시를 내가 점령한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에 있는 신호등들도 바쁘게 일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비로소 한 숨 쉬는 듯했다. 





30분 정도 가볍게 뛰고 미리 맞추어둔 알람이 울리자 집으로 돌아가 후다닥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아 기차를 놓칠세라 후다닥 준비를 했다. 친구에게 주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꾸러미들을  전날 밤 미리 챙겨두었던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사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혹은 여행 동안 만나게 될 누군가를 위해 많은 과자와 사탕들을 캐리어에 함께 실었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고, 여러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분량을 준비하다 보니 '그래 뭐 길 위에서 만날 누군가에게' 조금 나누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하고 판이 커졌던 것 같다. 


엄마는 떠나는 날 새벽 내 캐리어를 보시고서는

"너 과자 팔러 북유럽 가니? 저 저 과자들만 빼도 짐이 가벼워지겠는데? "라고 하실 정도였다. 캐리어를 잠그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나누어주고 나면 가벼워질 것 같아서 그냥 모두 다 챙겼다. 


그렇게 숙소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근처 역인 Slussen으로 이동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탈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빠르게 기차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 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기차 출발시간 3분 전에 간신히 탑승 완료. 원래 기차 안에서 푹 자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설렘 때문이었을까 사실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 가는 Uppsala (웁살라)라는 도시는 스웨덴 남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이다. 




 오늘 만나는 친구의 이름은 Elena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 전 스웨덴 우메오라는 곳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만났던 스웨덴 친구이다. 대학교 졸업 이후 다른 지역에 있다가 결혼하면서 Uppsala (웁살라)에 정착한 걸로 알고 있기에 이번 여행이 확정되었을 때 미리 연락했었었다. 


사실 토요일 오전 8시는 친구 집을 방문하기에는 매우 이른 시간, 아니 방문하기에는 적합한 시간은 아니다. 1달 전에 친구랑 방문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볼 때 친구는 4살 아기 때문에 어차피 매일 새벽 6시에 강제 기상한다며 시간 상관없이 최대한 빨리 와서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였다. 역에 내리니 저 멀리 마중 나와있는 친구가 보인다. 정말 신기한 건 약 200m 거리였는데도 저 친구가 나의 친구 Elena 같다는 확신이 들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역시나 동시에 손을 흔들어 답하는 그녀. 


무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이다. 사실 친구와 종종 연락하지는 않았고 아주 가끔 2~3년마다 형식적인 짧은 안부 서로 주고받는 게 전부였었다. 근데 말이다 1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만나자마자 서로의 근황들을 업데이트하기가 바빴다.

 내 기억에 친구는 보통의 스웨덴인 답지 않게?! 본인의 여러 생각들이나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기는 다소 불편하고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들도 쿨하게 드러내는 친구였다. 친구도 그러다 보니 나도 나에 대해서 말할 때 굳이 무언가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래 서였었을까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이따 오후 2시 기차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짧은 일정이지만 최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5분 정도 걸어서 걸어서 도착한 친구의 집. 계단을 통해 올라간 주택가의 2층 일부분이 친구네 집이라고 했는데 문을 들어서고 나는 흠칫했다. 친구 가족 3명이 살기에는 매우 집이 넓어서 1차로 놀랐고 그럼에도 여전히 넓어서 2차로 놀랐다. 현관을 지나 짧은 복도를 지나자 매우 광활한 거실이 나왔다. 이게 거실인가 아니면 파티장인가? 과장 한 숟갈 보태서 지극히 평범한 우리 집을 모두 다 합친 크기가 친구네 집 거실의 크기와 비슷한 듯했다. 


아무튼 내가 살면서 본 집들 중 가장 거실이 넓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의 집에 가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다)  친구에게 웃으면서 "미국 TV 쇼에 나오는 연예인 집"인 줄 알았다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친구가 멋쩍어하며 아버지 집으로 잠깐 빌려주신 거라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원래 벽이 있었는데 허물고 공간을 확장 시킨 듯했다. 


친구의 아이 이름은 리니아로 낯가림 때문에 처음에는 경계 태세를 보이다가, 내가 한국에서 야심 차게 공수해간 '핑크퐁 아기 상어 노래 책'을 선물하자 조금씩 경계를 푸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을 찾는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역시 보람이 있다) 식탁에 앉아 한국에서 준비해 간 스낵 꾸러미를 푸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와 나 둘 다 공통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그러다가 나온 이야기 "No money, No fun"에서 서로 웃음이 터졌다. 그래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니. 


한 3시간 정도 식탁에서 내리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더 늦기 전에 수영하러 가자며 말을 꺼냈다. 드디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스웨덴 바다나 강에서 수영하기'를 실현하게 되는 건가? 사실 이전 편에 등장한 친구 Johan에게도 같이 수영하러 가도 되냐고 말을 해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남자이다 보니 조금 신경 쓰여서 말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수영은 못하게 될 것 같아 따로 수영복을 챙겨 오지는 않았는데, 친구가 선뜻 집에 여러 벌로 있으니 그중 맞는 걸로 입으면 된다고 했다. 


20여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나오는 한적한 교외. 카페에서는 누군가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은 해변가라기보다는 강이었는데 그날 유독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다른 가족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곳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건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왼쪽에는 봉이 그 아래쪽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발판이 있어서 봉을 잡고 거닐면서 물을 충분히 체험해볼 수 있는 형태의 조그마한 시설이었다.  


사진의 오른쪽이다.



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세게 불어서 감기가 걸리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친구가 먼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하고 나도 바로 입수. 물속은 생각보다 따뜻해서 그리 춥지는 않았다. 다만 수심이 전혀 가늠이 안될 정도의 깊이와 이 드넓은 강에서 자칫하면 바다로 나가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은 인간적으로 있었다. 물아래 나의 다리는 여유롭다기보다는 움직이기 바빴고, 물 위의 나의 얼굴은 애써 태평한 척 웃고 있었다. 아래는 '괜찮은 척'하는 나의 사진이다.





한 20분 정도 짧은 수영을 하고, 주변을 걷기로 했다.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사과, 파프리카 스틱 등을 같이 먹었다. 뭔가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리니아는 본인의 손을 잡아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식이 된 걸까?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이제 기차를 타기 위해 Uppsala (웁살라) 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 10년 혹은 20년 다시 언제 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기차를 타니 오후 2시가 넘은 시각. 배가 슬슬 고파오기 시작했고 기차 안에서 점심으로 먹을 메뉴를 찾아보는데 집중을 했다. 이틀 차이지만 서양 음식들에 벌써 물린 터라 내 머릿속에서 보내는 신호를 즉각적으로 감지했다. 오늘 늦은 점심은 라면과 초밥이다. 집 근처 초밥집을 재빠르게 물색한 후 숙소가 있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가게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게가 오후 4시에 문 닫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재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아니 토요일 4시에 문을 닫는 초밥집이 있나? 스웨덴의 7월은 휴가철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초밥을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행복한 길의 순간을 담은 찰나. 






초밥의 맛은 그냥 그럭저럭이었고 라면도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이 아니라 해외 마트에서 긴급하게 조달한 '수출용 라면'이어서 그런지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그래도 서양 음식이 아닌 것을 감사해하며 맛있게 다 먹었다. 저녁때 다시 친구 요한과 밖에서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기에 시간이 좀 남은 상황. 마음 편히 가지는 여유시간은 도착하고 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초밥 먹으면서 보니 숙소 거실에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에어비앤비 앱으로 호스트에게 혹시 피아노 쳐도 되냐고 문의하니 전자피아노이며 맘껏 두드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1시간 정도 나만의 뚱땅뚱땅 시간을 가졌으며 여기서 멜로디 하나를 만들었다. 이것도 추억이 될까 해서 부끄럽지만 비디오로 남겨놓은 것이 아래다. 


  


 시간이 좀 더 남아서 밀린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실 나는 여행과 관련해서는 '현장주의자'였다. 눈으로 담아야지 이 모든 것들을 오롯이 마음속으로 담아야지. 사진을 찍는 것은 귀찮고, 나를 담은 사진을 찍는 것은 더 귀찮고 심지어 혼자 여행일 때는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찍어줄 사람도 잘 없다. 근데 말이다 문제는 이 '현장주의자'의 기억력 지속성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여행을 종료함과 동시에 여행에 대한 기억은 공중으로 휘리릭 날아가버리는 엄청난 휘발성을 자랑했다. 왜 고온인 곳에서 물을 뿌리면 뿌리는 즉시 물이 공기 중으로 증발되어 날아가버리지 않는가. 내가 누군가를 만났는지는 대충 기억이 나는데 너무 어렴풋한? 몇 번의 여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고 귀찮지만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야 적어도 몇 년 후에 내가 거기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가 보았는지 그 기억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테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여행에 오면서 집에서 굴러다니던 얇은 노트 한 권을 가져왔다.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서 책상에 앉아 1시간 동안 밀린 일기를 열심히 썼었던 것 같다. 오후 9시 쯔음 친구 요한과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Slussen 역에서 만나 주변을 돌았는데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모든 펍들이 만석이었다. 딱히 뭐 멋지거나 분위기 있는 펍을 가야만 하는 것은 아녔기에 시내에 있다고 보기에는 조금 허름한 그런 펍으로 들어가 착석했다. 


메뉴판을 보고 추천받은 Norrland Guld라는 맥주 한 잔을 주문해 마시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걸 느꼈다. 뒤늦게 시차 적응하느라 몸이 피곤했던 걸까? 아니면 도착 이후 너무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던 탓일까. 친구와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선 내 머릿속의 번역 도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그녀는 작동을 더 이상 거부하고 있었다. 어순이 엉망진창인 영어가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인지했다. 도저히 내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졸음이 아니라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본 후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11시 30분쯤 집에 갔다. 아마 약간 각성상태로 계속 깨어있었던 게 펍의 어두운 조명 때문에 졸음이 한 번에 몰려든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고 거의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오전은 아무 약속이 없었기에 푹 잘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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