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에 일정이 없는 관계로 정말 늘어지게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편하게 오전 7시까지 잤다. 중간에 1번 깨긴 했으나 조금 더 푹 잤고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자 그냥 '달리기'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어제와는 다른 곳을 가보는 거다. 마침 가보고 싶었던 Vitabergsparken이 근처길래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뒷동산이었는데 나처럼 이른 시간에 달리는 사람들을 몇 명 마주쳤고 가볍게 서로 '굿모닝'이라면서 인사했다.
최근에 달리기 관련해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사실 공원이나 특정 장소를 제외하고는 달리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어딜 가나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 같았다고. 근데 그들이 그렇게 달리는 이유를 알 것 만도 같다. 달리는 그 순간만은 적어도 정신이 맑고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뭔가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는데 일조하는 느낌이랄까? 너무 좋다 짜릿해!
1시간 정도 걷고 뛰다가 집에 들어와 아침을 먹었다. 오늘 아침 메뉴는 '납작 복숭아'이다 (영어로는 Doughnut peach 혹은 Flat peach라고 하는 것 같다). 일반 복숭아보다 많이 달달하다고 들어서 기대가 조금 있었는데 그 명성대로 달콤했다. 많은 과자를 어제 덜어내서일까? 이따가 빠르게 체크 아웃을 하기 위해 짐을 미리 쌌는데 조금은 가벼워진 캐리어. 그전에 잠깐 들를 곳은 바로 집 근처에 있는 Fotografiska로 사진 박물관이다.
스웨덴의 여름은 자외선이 강렬한데, 선크림을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특정 부분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상이려나? 조금 걱정이 되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이 없어서 생각보다 조금 빠르게 봐야 했다.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미리 알아봐 두었던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식당은 타이 식당으로 밥과 아시아의 향기가 너무나 그리워서 미리 알아놓았던 곳.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해서 헐레벌떡 뛰어가며 도착했는데 주말 이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자리는 여유롭였다. 바깥 풍경도 볼 겸 홀로 야외 자리에 착석했다. 메뉴판을 보는데 감이 오지 않아서 직원 분에게 추천을 받았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직원 Korean이라고 하자 엄지를 치켜든다. 뭘 좀 아시는군요 ^^
곧이어 나온 직원 분이 추천해준 음식을 받아보았을 때의 첫인상을 말하자면 사실 너무 단출해 보여서 솔직히 실망했다. 이거 뭐지? 곧이어 한입 맛을 보고서는 게눈 감추듯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먹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양 음식에 물려있던 나에게 딱 맞는 음식이었다. 스웨덴에서 타이 음식이라니 생각해보고 조금 웃겼지만 도저히 나는 시방 더 이상 양식 먹는 것을 거부한 한국인이었다. 오후 2시 30분에 친구 Manuela와 커피 약속이 있었기에 서둘러 숙소로 가서 캐리어를 픽업해야 했다.
숙소로 가는 길 근처 거리인 Fjallagatan 전망대에는 독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버스들과 여러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 얘기를 주고 나누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는 나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새로 가는 숙소도 에어비앤비로 Karlaplan이라는 역 근처에 위치한 숙소이다. 숙소 평도 너무 좋았고 특히나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에 도착했는데 안내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가는 길을 모르겠는 거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니 내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지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오더니 "도움 필요해요?"라고 물었다.
북유럽 여행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6,7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분 이셨다. 친절하게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신 그분은 이전에 아시아 여행을 많이 해보셔서 우연히 나를 보았는데 도와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어쩌다가 얘기가 길어지게 되었고 뭔가 더 얘기하고 싶으신 느낌을 받아 "괜찮으면 식사 한번 같이 할까요? "라고 얼떨결에 말을 했다. 근데 여쭈어보니 핸드폰 번호를 모르신다고 하신다?!
아 어쩌지? 하고 있는데 본인은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매일 12시 정각에 저기 뒤에 있는 분수 쪽에 있는 벤치에서 (손가락을 가리키며) 점심을 한다면서 뒤쪽에 있는 분수로 오라는 말을 남기셨다. 사실 분수가 1개 인지 정확히 어디에 있는 분수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당시 정신이 없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이번 숙소는 주인 분 내외와 같이 머무는 숙소였는데 숙소 주인인 Edwin은 매우 친절하고 깔끔하신 분이셨다. 캐리어를 방에 두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Sergels torg로 갔다. 친구 Manuela와는 올해 6월 말에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우리가 만난 처음이었다. 6월 초쯤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곧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온다고 해서 만나게 되었고, 서로 알고 지낸 기간으로만 따지면 1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서로 낯가림도 없고 화통한 성격의 친구 때문에 (그녀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나는 참 좋다 ) 이렇게 인연이 닿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본인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스웨덴으로 20대 후반에 가족들과 함께 이민 오게 된 사연 등을 듣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자리를 떠나면서 가보고 싶은 빵집이 있어서 함께 갔는데, 웬걸 구글에 나와있는 영업시간과 다르게 일찍 문을 닫아버린 빵집. 언젠가 또 보자며 아쉽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스톡홀름을 떠나는 친구 Johan과 저녁을 먹고자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 이름은 Bar Agrikultur로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고 갔는데 솔직히는 기대 이하였고 친구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맛이 별로였던 건 아닌데 비쌌던 가격을 감안하면 글쎄. 뭐 그래도 이것도 경험 아니겠냐며 웃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쿵스 홀멘을 걸었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친구가 조금 지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눈치껏 여기서 그만 작별인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되면 꼭 한번 한국에 놀러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도중 갑자기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 Slussen의 Manteliusvagen을 가보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나도 좀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뭔가 오늘이 아니면 가지 못할 것 같아 무리해서라도 가기로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지 않는가. 예상에도 없던 Slussen 역에서 낼려서 조금 걸어갔다. 역시나 그곳의 석양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핑크색의 네온사인 색인 하늘을 밤 10시까지 멍 때리면서 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커플, 친구 그리고 가족단위였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여행 중간중간 친구들과의 약속이 많았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이 날도 역시나 불을 켜고 잠들어서 중간에 한번 일어나서 불을 다시 끄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