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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닌 망각, 일본식 카레라이스

ep.06

by 유자씨





딸아이가 하교한 뒤 학원에 가고 나면 나에게 정확히 1시간 50분의 시간이 생긴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버릴 것 같아서 키보드와 수첩을 챙겨 집 근처 스타벅스로 왔다. 벚꽃이 만개할 때 스타벅스 옆에 있는 가로수의 벚꽃들을 보며 커피 한잔 마시려고 아껴두었던 스타벅스 커피쿠폰으로 따뜻한 드립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2층으로 올라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창밖을 한참 내다보았다. 꽃은 왜 보아도 보아도 이리 좋을까. 이내 떨어질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쉬운 마음이 커서일까. 아래에서 올려다본 벚꽃나무는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멀게만 느껴졌다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벚꽃나무의 가지와 피어낸 꽃잎들은 손 닿을 거리에 있다. 이미 꽃잎들을 다 떨구어 내고 초록잎을 피우는 가지도 있고, 새하얀 꽃잎 사이에 자줏빛 꽃수술을 품고 오묘한 빛깔을 뿜어내는 가지도 있다.


벚꽃나무 아래로 지를 주워 정리하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인다. 그들의 굽은 등 위로 벚꽃 나뭇잎이 한잎 두잎 떨어진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댈 때마다 마치 눈송이가 흩날리듯 하얀 잎들이 속절없이 떨어진다. 어둔 창문 사이로 꽃잎을 흔들어대던 바람이 들어와 나를 간질였다. 몇 해가 지난 뒤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던 봄날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떨어지는 벚꽃 잎이 살포시 내려앉던 그 두 명의 굽은 등을 기억할까.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남 같은 나의 고모가 있다. 고모는 내가 어릴 때부터 홍길동처럼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는 삶을 살아왔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있다가 만나면 일본에서 살다왔다고 했다. 또다시 연락이 두절되어 있다가 몇 해뒤 만났을 땐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식당을 하고 있었다.


고모가 운영하던 일본식 카레식당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고모는 원래도 음식솜씨가 좋았는데 일본에 살다오고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판메밀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고모가 직접 끓였다는 메밀 육수와 메밀면을 먹고는 맛있어서 두 눈이 튀어나 올 정도였다. 고모가 해준 일본식 카레는 여태껏 내가 먹어왔던 카레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 있는 맛이었다. 고모에게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그렇게 고모는 나에게 일본식 카레로 남아있다. 연락이 두절된 남 같은 고모라는 진실대신 나는 망각을 선택했다. 일본식 카레를 끓일 때마다, 그 카레를 맛있게 먹는 나의 가족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고모를 떠올린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그녀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워하며 그녀가 어디선가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고모의 일본식 카레라이스 비법

재료: 고체카레 4조각 6인분 기준(에스비 골든카레 혹은 바몬드 카레 ), 양파 한 개 반, 각종버섯, 당근, 감자, 소고기 불고기용 300그람

만드는 방법

1)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다음 양파 한 개 반을 채 썰어 중 약불에 볶는다. 양파가 완전히 갈색이 날 때까지 볶는 게 중요하다. 타지 않도록 계속 섞어주어야 한다. 양파가 갈색이 날 때까지 볶으면서 양파의 단맛과 감칠맛이 극대화가 된다. (제일 중요한 부분)

2) 당근, 감자, 버섯등 채 썰어 넣고 살짝 볶아준다.

3) 물 700ml를 붓고 끓인다.

4) 재료들이 끓으면 불고기용 소고기를 야채와 비슷한 크기로 채 썰어 넣는다.

5) 소고기가 익으면 불을 약하게 낮추고 고체 카레 4조각을 넣고 잘 풀어준다.

6)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얹어서 먹으면 끝!

* 소고기 대신 버섯을 종류별로 넣어서 비건으로 즐겨도 좋고, 햄을 넣어서 끓여도 맛있다.


간단하지만 먹어보면 깊은 감칠맛에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맛이다. 계란 프라이 하나 얹어서 먹으면 영양 만점!




고모의 비법 일본식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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