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번째 도전, LG전자 인턴십

2.1. 배수진을 치다: ‘떨어지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쓴 지원서 LG

by Youhan Kim

LG전자 터키지부 인턴십에 지원서를 쓰던 날을 떠올리면,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래, 떨어지면 그만이지 뭐”라는 씁쓸한 혼잣말이 울립니다. 사실 LG라는 거대한 이름은 저에게 너무 먼 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기회가 적어 보였고, 학점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도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니까요. 친구들은 “LG 같은 기업에는 정말 스펙 뛰어난 애들만 들어가는 거 아냐?”라는 말을 쉴 새 없이 해댔고, 저 역시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정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무작정 지원서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떨어지면 어때? 어차피 지금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잖아.” 스스로를 배수진에 몰아넣는 느낌이었죠. 사실 생각해보면, 포기한다는 선택지보다는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더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몇 번의 광탈(서류심사나 면접 탈락)을 겪어볼 수도 있지만, 그 경험조차 늘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던 제 일상에는 없는 스릴과 배움을 줄 것 같았거든요.


지원서 작성에 담긴 진심

LG전자 인턴십 지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상당히 솔직한 자기고백의 시간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다 보니, “우리 회사에 왜 지원하셨나요?” 같은 질문이 계속 등장하더군요. 보통이라면 ‘큰 회사에서 성장 기회를 얻고 싶다’거나 ‘제가 가진 역량을 발휘해 회사 발전에 기여하겠다’ 같은 문장을 적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제가 노력했을 때 이 회사에서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식으로, 오히려 불리해 보이는 장애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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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이야기가 통할지는 저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면 그만’이라는 전제 덕분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적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저를 뽑든 뽑지 않든, 이 순간만큼은 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만약 “조금 숨겨야지. 장애가 있다는 걸 가려야지” 하는 욕심이 있었다면, 제 자기소개서는 다른 수백 장의 지원서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을 겁니다.


주변의 우려와 나의 두려움

물론 주변의 반응은 십중팔구 “무모하다” 혹은 “그냥 조금만 감추지 그러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도 “장애가 있다고 너무 대놓고 쓰면 꺼릴 수 있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겠지요. 적당히 포장하고 넘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 장애를 완전히 숨긴 채 일하다가, 나중에 상황이 들통나서 곤란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컸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투명하게 밝히고, 그럼에도 받아줄 기업이라면 오래 함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래도 혹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피어올랐습니다. LG 같은 대기업은 인재 풀이 워낙 넓고, 경쟁도 치열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떨어지면 어때, 너 원래 아무것도 없었잖아. 정 안 되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이 양면의 감정이 뒤섞여, 저는 결국 “배수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함’보다는 ‘담담함’으로

흥미롭게도, 배수진을 치고 나니 부담감이 훨씬 덜해졌습니다. 꼭 합격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정말 잘하고 싶다”는 동기가 오히려 솔직한 글을 쓰게 했고,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도 “괜찮아,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회사가 나와 맞을까? 만약 인턴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항목에 맞춰 무난하게 대답만 쓰는 대신, 실제로 이 회사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은지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간절함도 좋지만 때로는 담담함이 더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목숨 걸고 붙어야 해!”라는 생각보다 “떨어져도 그만, 붙으면 감사”라는 마음가짐 덕분에 제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이 ‘진짜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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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기다리며…

물론 서류를 내고 난 뒤에는 “어차피 떨어질 거야”라는 체념과 “설마 그래도 한 번은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교차했습니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합격’ 메일인가 싶어 가슴이 뛰기도 했지요. 그런 초조함 속에서도, 적어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배수진’이란 표현 그대로, 이미 뒤로 갈 길을 끊어버린 상태였으니까요. ‘이렇게 살아본 적도 없고, 또 이런 지원서도 처음 써봤다’는 사실이 좀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운명처럼 LG전자 인턴십 서류 합격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사실 그 순간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써도 가능성이 있긴 있구나!” 하는 안도와 “이제 더 큰 도전이 시작되겠네”라는 작은 설렘이 교차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면접과 실무 배치 등의 hurdles(허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럼에도 적어도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건, ‘떨어지면 그만’이라며 배수진을 친 제 선택이 적어도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솔직해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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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LG 인턴십이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제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또 어떤 배움을 얻었는지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 시작점이었던 지원서 한 장에는, 사실 ‘떨어지면 그만’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여주자’는 작은 용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 용기가 곧 새로운 길을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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