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회적 기대: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야만 인정받는다’
“장애가 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느새 저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이미지를 덧씌우곤 했습니다. 무조건 평범한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고 말이죠.”
어느 날, 한 지인이 건넨 이 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 속에는 두 가지 불편한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애초에 ‘못할 것이다’라고 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편견을 뒤집으려면 “두 배 이상 잘해야만 인정받는다”는 사회적 요구였습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처럼 정신적 장애를 겪는 분들에게는 이 부담이 더욱 극단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는 날엔 “역시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서 일을 못하나 보네?”라는 비판이 돌아올까 두렵고, 반대로 컨디션이 좋을 때는 ‘누구보다 완벽하고 번뜩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결국 일상 속에서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장애가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해내야 팀에 누를 끼치지 않겠지”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집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악의 없이 건넨 한마디가 저를 옭아맸습니다. “장애가 있는데도 정말 대단하네!” 처음 들었을 때는 칭찬처럼 여겨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애가 있으면 대단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대단함’마저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보통 이하’로 추락할 거라는 불안감도 뒤따랐습니다. 사람들은 한 번 놀라운 역량을 보여준 장애인에게, 그다음에도 늘 그 이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정신적으로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이면 “오늘 나는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불량품이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말도 안 되는 공포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입니다. 이 무의식적 압박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날조차 억지로 버텨야 했고, 결국 탈진하듯 며칠을 앓아누운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러면 자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역시 나는 폐만 끼치는구나”라는 부정적 결론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벼랑 끝 같은 압박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평범한 사람과 똑같거나 그보다 더 뛰어나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요. 예를 들어 조울증의 경우, 조증 상태일 때는 창의력과 추진력이 강하게 발휘될 수 있지만, 우울이 찾아왔을 때는 다른 방식의 사고나 감정적 섬세함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여러 기분 상태와 리듬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받아들일 때,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조직과 사회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데도 대단하네”라는 단편적 평가보다, “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기분이 좋을 때는 탁월한 집중력이나 창의력이 빛을 발하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에는 세심한 공감 능력으로 팀의 과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돕는 식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이라면, 누군가를 슈퍼히어로로 치켜세워 끊임없는 ‘초인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각자의 속도와 강점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정착될 때, “장애가 있으면 평범함으론 부족하고 월등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조금씩 옅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강약점을 조화롭게 맞춰가는 인간적인 팀이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도 ‘완벽하게 뛰어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다고 해서, 훨씬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두 배는 잘해야 한다”는 말은 실은 두려움과 고단함을 대변하는 외침이었습니다. 그것이 의지나 열정을 표현하는 문장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속도와 방식을 갖고 일할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날은 느리게, 또 어떤 날은 힘차게. 그러한 자유가 보장될 때, 장애를 지닌 사람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걸어나가며, 다른 이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월등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