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번째 도전, BOSCH 인턴십

4.1. 글로벌 기업에서의 또 다른 시작: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스템

by Youhan Kim

보쉬 인턴십에 지원할 때만 해도, 저는 “독일계 자동차 부품 공장이라면 수평적이고 글로벌한 문화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막상 첫 출근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꽤나 달랐습니다. 복도를 오가는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수직적인 의사소통 체계가 여전했습니다. 팀장-부장-임원으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과, “급할 땐 빨리빨리!”라는 한국식 속도전이 이곳에서도 여전했던 거죠. 그런데 한편으론 독일 본사의 영향을 받아 문서 양식이나 매뉴얼, 직인 관리 규정 등이 철저하게 정비돼 있었습니다. 일종의 ‘이중 문화’가 공존하는 특이한 환경이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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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사팀(HR)에서 채용 담당과 여러 업무 전담을 동시에 맡게 되었습니다. 채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각 부서에서 “얼마만큼의 인원이, 언제쯤 필요하다”는 요구를 일일이 파악하고, 지원 서류를 추려서 담당 팀장들에게 전달하며, 면접 일정을 조율하는 등의 업무가 하나로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은 부서장들이 “지금 당장 사람을 뽑지 않으면 업무가 마비될 것 같다”는 식으로 긴박하게 요청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저는 지원자들에게 연락해 “면접 시간을 바꾸어달라”거나 “추가 서류를 요청한다”고 안내해야 했습니다. 그와 함께, 인턴십 형태로 입사한 신규 인력들 중 누구에게 정규직 전환 기회를 줄지 결정하는 책임도 컸습니다. 적어도 30명이 넘는 신입·인턴을 선발했는데, 그 하나하나가 제 손을 거쳐갔으니 얼마나 눈코 뜰 새 없었을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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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점에서 제게 가장 큰 변수가 있었다면, 바로 조울증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심리적인 기복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탓에 업무 효율이 들쭉날쭉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기분이 고양될 때는 “밤새 서류 정리를 하고 내일 아침 PPT 발표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어!”라며 스스로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조금만 피로가 쌓이거나 예기치 않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이 훅 꺼져버리기도 했거든요. 팀장님이나 부서 담당자들이 갑작스럽게 면접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면 “내가 그걸 미리 못 예측했어… 제대로 대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자책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인사팀의 동료들은 저를 잘 이해해줬습니다. 고작 5명이서 모든 HR 업무를 수행해야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서로의 상태와 일정, 그리고 전문 분야를 존중해야 했거든요. 저는 맡은 일이 많아 감정 기복을 감추기 어렵다고 느끼는 날엔, 솔직히 “오늘은 조금 컨디션이 저조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동료가 “그러면 중요한 회의 준비는 내가 미리 해놓을 테니, 너는 서류 정리 위주로 해줘”라며 제 기분 상태에 맞춰 일의 종류를 조정해주기도 했죠. 이를테면, 기운이 좋을 때는 제가 영문 번역이나 C-level 보고 PPT 제작 같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주로 맡았고, 우울감이 올 때는 정적이고 반복적인 메뉴얼 업데이트나 자료 검수에 집중해도 괜찮았습니다. 그 덕분에 조울증이 업무 전체를 망치는 일은 의외로 적었고, 오히려 팀워크 안에서 자연스럽게 제 역량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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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강력하다는 점도 이 회사의 특징이었지만, 제가 직접 노사 협상을 담당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노조가 인력 충원이나 임금 문제로 인사팀에 항의하면, “아, 이 서류 여기 있나요?” “이번 통계청 보고 자료, 혹시 노조 쪽에도 공유했나?” 같은 식으로 제게 문의가 자주 들어왔죠. 기분이 다운된 상태에선 그런 갑작스러운 요청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한편으론 “아, 내가 이 자료 하나만 잘 정리해도 팀 전체가 한결 수월해지겠지”라며 동기부여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잘 해내고 나면, 이중으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조울증으로 인한 피로가 컸지만, 그만큼 한 건 한 건 해결할 때마다 “괜찮아, 난 잘하고 있어”라는 작은 승리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보람 있던 부분 중 하나는, 제가 뽑은 인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서류나 면접 때만 해도 서툴렀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함께 동업을 하고 프로젝트 마감을 하며 “이 회사, 생각보다 할 만한 곳이네요”라고 웃어 보일 때, 저는 “내가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특히 건강검진 일정을 잡고 신입들이 복지 혜택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한 명 한 명이 자기만의 빛을 찾아가는 걸 보니 HR이야말로 조직과 사람을 묶어주는 연결 고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계 회사답게 문서·결재 라인은 엄격하고, 관공서(통계청 등)로부터 오는 각종 요청도 모두 체계적으로 처리해야 했지만, 한국식 ‘빨리빨리’ 습성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매일이 전쟁터 같았습니다. 제 조울증 역시 이런 과부하에 휩쓸려 크게 흔들릴까 우려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일이 많으니 바빠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점이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가 확 올라오는 날엔 밤낮없이 자료를 정리했고, 컨디션이 가라앉을 땐 적절히 팀원과 업무를 재배분하거나 조금 더 단순 반복 업무에 시간을 할애하며 페이스를 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아무리 해도 일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날이 오면, 동료들이 “퇴근 후에 간단히 맥주나 하자”라고 말해줘 그제야 숨이 트이곤 했습니다. 이처럼 서로를 돌보는 팀 문화는 제 조울증 관리에도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문서 관리나 직인 규정 같은 부분은 처음엔 답답했지만,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이게 혼란을 줄이는 체계 역할을 하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조울증이 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건, 기분에 따라 일이 엉망진창으로 흩어질 수 있다는 불안인데, 명확한 매뉴얼과 규칙이 있으니 “이 단계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가이드에 따라 일하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게 되는 거죠. 게다가 대외적으로 PR이나 관공서 응대 업무를 할 때도, 매뉴얼에 맞춰 “이건 이 순서대로 제출하면 되고, 그다음 단계에서 승인나면 직인을 찍는다”는 흐름이 정해져 있으니까, 제가 기분이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업무 자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조울증이 주는 감정적 기복을 회사의 시스템과 동료의 배려가 완충해줬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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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쉬 인턴십은 “이중 문화”라는 낯선 환경과 더불어 제 조울증까지 겹치면서도,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됐습니다. 매일같이 치열한 채용 업무와 영문 번역, 노조·통계청 서류 대응 등을 해내면서도, 다운된 날이면 다운된 대로, 업된 날이면 업된 대로 업무를 조정해주는 조직의 유연함을 경험했거든요. 이 경험은 제게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적절한 시스템과 팀워크가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업무가 켜켜히 쌓여가며 몸이 고단했던 날들도 많았지만, 인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 부서장들이 “이 인재 참 괜찮다”며 흡족해하는 순간, 그리고 팀원들과 각종 문서를 마감해놓고 난 후의 뿌듯함은 정말 큰 보상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조금 기운이 없을 때도 “나중에 돌아보면 이 시간이 쌓여 나를 더 튼튼하게 만들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조울증에 대한 부정적 시선보다 “우리 다 같이 하면 괜찮아”라고 외쳐준 팀 분위기가 무척 컸습니다.




인턴십이 끝나고 돌이켜보면, 독일식 원칙과 한국식 속도전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혼돈이 저를 한층 더 단단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 혼돈 속에서, 제 조울증은 때론 걸림돌 같았지만 때론 추진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든 걸 소화해낸 결과, “나도 꽤 해낼 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자신감이 싹텄고, “만약 여기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적응하고 기여할 수 있겠다”는 시야가 생겼으니까요. 어쩌면 그 시야가, 앞으로 또 다른 도전을 맞닥뜨릴 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건, 결국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던 제 역할—또한 그 역할을 기꺼이 인정해준 회사와 동료들의 배려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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