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번째 도전, BOSCH 인턴십

4.2. 협업 속에서 빛나는 다양성: 다국적 팀원들과의 소통과 상호 존중

by Youhan Kim

회사의 로고를 가슴팍에 단 채로 사무실 복도를 오가며, “진짜 글로벌 기업 맞구나” 하고 실감했던 순간이 잦았다. 특히 내가 몸담았던 곳은 본사가 독일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었고, 한국 지사에는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부사장은 한국인이었지만, 또 한 명의 부장님은 독일인이어서 영어와 독일식 커뮤니케이션이 일상 속에 뒤섞여 있었다.


처음엔 “와, 이곳은 독일 계열이니 수평적·합리적 분위기가 강하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러나 막상 출근해보니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와 결재 라인을 타는 수직 구조가 여전히 공고하게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부서만큼은 조금 다른 색을 띠고 있었는데, 바로 독일인 부장님이 이끄는 팀이었다.


그 부장님은 키가 훤칠하고, 늘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다니셨다. 첫인상은 솔직히 ‘뭔가 차가울 것 같아, 혹은 깐깐할지도 몰라’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왜냐하면 언제나 완벽한 문서와 정확한 스케줄 관리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달까.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인사팀(HR) 업무 차원에서 채용 관련 서류를 전하러 그 부장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됐다. “Oh, you’re from HR, right? Come in, come in!” 하며 영어로 아주 편안하게 인사를 건네신 것이다. 영어 발음도 너무 자연스럽고, 웃는 표정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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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간단히 서류 전달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부장님이 손짓을 하며 자리에 앉으라 했다. \(“요즘 인턴 채용을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 부서에서도 새 인턴이 필요하거든요.”

“네, 저희는 인턴 채용을 적극 검토하고..." 하고 대답하는 내게, “어떻게 진행하면 되죠? 채용 프로세스를 알려줄 수 있나요?"라며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보통 다른 부서장님들은 한국어로 “인턴 아직 뽑아요? 언제까지 서류 볼 수 있죠?” 정도로만 간단히 묻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장님은 오히려 “저는 정확한 일정과 기준, 그리고 면접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라는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오, 이 사람은 일 처리에서 굉장히 정확함을 추구하고, ‘왜 그렇게 하는지’ 논리를 중시하는 타입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해온 간단한 자료를 내밀며 “이렇게 서류 심사를 하고, 저희가 1차 면접 일정을 조율해서…” 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이 길어질수록, 부장님이 영어로 추가 질문을 계속 던졌다. “보통 이 프로그램으로 인턴을 몇 명이나 선발하나요? 최종 합격 비율은 어느 정도고, 업무에는 어떻게 배치되나요?” 등등. 땀이 날 정도로 꼼꼼한 면접이었다.


그 상황에서 느낀 건, 다국적 팀원들과의 소통이란 게 단순히 언어만 바꾸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식으로 “면접 날짜 잡아서 안내하고, 그 뒤에 합격 결정하면 끝”이 아니라, 부장님은 ‘왜 이 절차가 필요하고, 이 절차가 회사에 어떤 가치를 가져다주는지’까지 알고 싶어 했다. 이런 건 그동안 한국 부서장님들과는 거의 나눠보지 못했던 대화였다. 그때 처음으로 ‘독일식 커뮤니케이션’의 면모를 제대로 체감한 셈이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어느새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부장님이 제안했다. 한 번도 직접 면접관이 되어보라 권유받은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걸 ‘면접을 함께 진행해보자’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여해주길 바란다”는 식이었다. 나에게 마음을 연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실제 면접에 저와 함께 들어오는 게 어때요? 질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싶고, 게다가 당신이 저희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면서 말이다. 회사에는 한국인 부사장도 있었지만, 인턴 채용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세세히 질문하고, 또 HR 담당자에게 면접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은 이 독일인 부장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나는 인사팀(HR) 내에서 채용·PR·업무 메뉴얼 관리 등등 온갖 일을 맡고 있었고, 노조 관련 서류나 통계청 보고 자료 같은 급한 일도 많았다. 이미 야근이 일상이었던 터라, 도저히 면접관으로 새로운 업무까지 맡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부장님 제안이 반가우면서도, “아, 이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부장님이 “정말 꼭 함께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인사 담당으로서의 시각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거듭 말씀하실 때, 마음이 솔직히 흔들렸다. 한편으론 “아, 이런 기회 흔치 않은데…” 싶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지금 일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면접까지 책임지면 어떻게 되려나” 싶었다. 결국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I’m so sorry, but I have a lot on my plate right now…”라며 죄송함을 전했다. 부장님이 약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알겠어요, 이해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메일 부탁해요.”라고 이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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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면접관을 맡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 인턴 후보들 중 서류나 영어 면접 결과가 궁금하면 종종 부장님이 “이 지원자에 대한 피드백 좀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하며 영어 메일로 물어봤다. 나도 빠르게 회신을 해주며 “네, 영어 능력은 꽤 괜찮다고 판단했는데, 팀과의 적합성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해요.” 같은 요령껏 답장을 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좁혀졌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가장 깐깐한 독일인 부장님’으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영어로 대화하고, 일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다 보니 오히려 소통이 더 원활해진 셈이다.


사실 우리는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다국적 팀원들과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냥 영어로 말하면 되지 않나?”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 사례처럼, 수직적·한국적 문화와 독일식 커뮤니케이션이 어우러지면서, 조금씩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영어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존댓말/반말’ 같은 차이가 희미해졌고, ‘왜 이 일을 하는지’ 서로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당연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팀이 왜 이 인턴을 뽑아야 하는지,” “이 절차가 회사에 어떤 이익을 주는지,” “추가 질문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같은 식으로 열린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렇듯, 낯선 문화와 다양한 언어가 교차하는 곳에서는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갖고 들어가면 의외의 스파크가 튀기 마련이다. 나는 그걸 ‘협업 속에서 빛나는 다양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색다른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나한테 맞을까?’ 망설이지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만 다르다고, 국적만 다르다고 해서 불편해하거나 피하기보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왜 그런 과정을 거치는지”를 서로 묻고 답하면 의외로 엄청난 시너지가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상호 존중이고, 다국적 팀원들과 의사소통할 때 ‘논리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어떤 식으로 협업해 나가는지 막막하다면, 내가 겪은 이 경험이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굳이 면접관 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다국적 팀원과 대화할 때 “Why?” “What for?” “How does it benefit us?” 같은 질문을 서로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한층 투명하고 논리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만들어진다. 한국식 수직 문화에서 “그냥 해!” 한 마디가 종종 통하기도 하지만, 국제무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왜 이걸 해야 하고, 언제까지, 어떻게?”라는 부분이 납득되어야 마음껏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협업 속 다양성’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이미 그 회사에서 나오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 독일인 부장님과의 짧은 대화, 그리고 면접관 제안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영어로 소통하며, 내게 면접관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주겠다고 한 사람. 비록 나는 바빠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제안 자체가 나를 팀의 동료로 신뢰한다는 의미였기에 솔직히 뿌듯했다. 만약 그 시점에 내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의 협업은 더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배운 게 많았다. “다국적 팀원들과의 소통”이라는 게 예쁘게 포장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내 일상의 언어·업무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 난생 처음 영어 이메일을 세세하게 주고받으면서, 때론 “이 부분은 독일인 특유의 꼼꼼함이긴 하지…” 하고 속으로 웃기도 했고, 또 “아, 이건 한국식 ‘빨리빨리’랑 어떻게 조율해야 하지?” 하며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언어·문화가 달라도 논리와 대화를 통해 충분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양성’이 빛나는 순간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왜, 어떻게, 언제까지”를 함께 고민하려는 자세가 깔려 있을 때다. 앞으로 또 다른 다국적 팀원이나 상사, 혹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더라도, 나는 이 경험을 떠올리며 주저 없이 대화해볼 생각이다. 내가 면접관이 되기엔 바빠서 거절했지만, 그 제안을 받았던 순간의 떨림과 “You should join us”라는 말이 주는 반가움은 여전히 큰 용기로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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