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두 번째 도전, BOSCH 인턴십

4.3. 극복을 넘어 성장으로: 달라진 환경에서도 이어진 도전과 배움

by Youhan Kim


나는 인사팀에서 채용과 여러 업무 전담을 함께 맡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서장들에게 전화나 메일이 쏟아졌다. “지금 당장 사람을 뽑지 않으면 힘들다”는 부서장들이 있었고, 반면 일정이나 절차를 확인하려는 독일식 시스템도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조울증까지 겹쳐서, 감정이 오를 때는 번역과 보고 작업을 몰아서 하는가 하면, 내려갈 때는 사소한 업무조차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인사팀 동료들은 내가 이런 상황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고, 일감을 서로 조정해가며 버텨냈다. 기운이 좋을 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컨디션이 나쁠 땐 반복적인 문서 검수나 자료 정리에 치중하면 됐다. 그 덕에 조울증 때문에 업무가 무너지는 상황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계속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인턴 30여 명을 채용하고, 그들의 정규직 전환 여부까지 관리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면접 일정을 조율하고, 건강검진이나 복지 안내를 도맡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들이 회사에 안착해가는 모습을 볼 때는 묘한 뿌듯함이 생겼다. 서류 심사나 면접에서 어리둥절하던 이들이, 나중에 “이 회사 괜찮네요”라며 웃으면 “그래, 내가 중간 역할을 제법 잘해냈나 봐” 하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 작은 성취감이 피로를 상쇄해주곤 했다.


가끔 정신이 급격히 다운될 때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오히려 회사의 규칙과 매뉴얼이 도움이 되었다. 문서 양식을 준비하고, 결재 라인을 타고, 직인을 찍고, 통계청과 노조 요청에 맞춰 서류를 제출하는 등 정해진 순서를 따라 일하면, 내 감정 기복을 업무가 어느 정도 완충해준다. ‘난 그냥 이 단계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돼’라는 생각으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다. 퇴근 직전까지 잔무를 처리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중요한 파일을 만들어야 할 때면,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 싶을 정도로 지쳤다. 하지만 팀원들이 번갈아 가벼운 저녁 식사나 맥주를 제안해주거나, “오늘은 네 기운이 안 좋아 보이니까 우선 급한 회의는 내가 챙길게” 하고 배려해주면, 다시 마음이 추스러졌다. 한 사람의 조울증을 온 팀이 함께 관리해준 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은, 컨디션이 오를 때 빛나는 집중력으로 번역 자료를 단숨에 끝내거나, 중요한 보고서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인턴십 마지막 즈음, 떠올려보면 한층 달라진 내 모습이 있었다. 처음엔 ‘장애가 있는데 회사 일까지 어떻게 견디지?’라는 의구심이 늘 머리를 눌렀지만, 어느 순간 그 부담이 ‘해낼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수십 명의 인턴 선발을 주도하며, 대내외 업무와 노조·통계청 보고까지 처리하는 사이, 나는 “조울증이란 것도 이 시스템과 팀워크를 통해 충분히 극복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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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독일식 절차와 한국식 속도전이 뒤섞인 이중 문화 덕분에 오히려 다양한 스킬을 익혔다고 느낀다. 번역이라든가 매뉴얼 작성, 결재 라인 통과, PR과 관공서 대응 같은 잡다한 업무들도 내겐 일종의 훈련 과정이었다. 감정이 오르내리는 한가운데서도, “일단 규칙대로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안전장치를 갖추고, 다른 날엔 스스로 에너지가 넘칠 때 재빠르게 일의 공백을 메꿔나가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적응력이 훨씬 좋아졌달까.


나는 이런 경험을 두고 “장애 극복”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조울증은 여전히 내 안에 있고, 언제든 감정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느낀 건 “극복”보다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가깝다. 어려움이 존재해도, 상황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필요한 자원을 활용하면,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게 바로 “장애를 넘어선 도전과 배움”이 아니었나 싶다.




보쉬 인턴십은 내게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 낯섦 속에서 배우고 또 도전할 수 있었다. 다국적 팀원들, 수직적 조직문화, 독일식 문서관리, 그리고 내 조울증까지. 한꺼번에 겹치니 정신없이 복잡했지만, 그래서 더 단단해졌다. 매일같이 저글링하듯 업무를 쳐내야 했고, 감정 기복을 조절해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도와줘야 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어쩌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인턴십이 끝나고, 다시 돌아보니 그 시간이 참으로 값졌다. 평소라면 차마 시도해보지 못할 일들을 겪으며, 나 스스로를 시험해봤고, 다른 동료들과 멋진 시너지를 만들었다. 팀장님들은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면 일을 잔뜩 안겼고, 컨디션이 나쁠 때는 쉬엄쉬엄 하도록 배려해줬다. 덕분에 조울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 내가 “장애를 넘어서 성장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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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어?”라고 놀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조직 문화와 팀원들의 이해, 그리고 내 의지와 시스템이 서로 어우러진 결과물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엔 내가 활기찬 날이면 달려들고, 조용히 매뉴얼 정리나 데이터 입력이 필요한 날엔 감정이 지쳤을 때도 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회사 전체로 보면 단순한 인사 업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장애를 가진 채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내 몫을 해내는 과정이었다.


결국, 나는 이 인턴십을 통해 ‘도전’과 ‘배움’을 동시에 잡았다. 처음엔 “독일계”라는 이름에만 혹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식 속도전과 독일식 절차주의가 섞여 있는 곳이었고, 내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층 더 유연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조울증이라는 내 상황을 동료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팀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니,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단 함께 넘어서는 문제처럼 보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음에도 많은 걸 얻어 갔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적절한 도움을 청하고, 팀원들이 “니가 잘할 때는 맘껏 해도 괜찮아, 힘들면 조금 쉬어”라고 말해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그토록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도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긴 어려웠을 거다. 단순히 “장애가 있어도 이 정도 해낸다”는 자존감 차원을 넘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협업하고 내 장점을 발휘하면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인턴십은 내가 “장애 극복을 넘어 성장”이라는 표현을 직접 체감한 대표적 사건이다. 극복은 어느 한순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조울증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어떻게 업무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찾았다. 만약 또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는 이 경험을 복기하며 “나, 한 번 해봤으니까 또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내가 얻은 진짜 배움이자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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