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양자 탄생의 역사"

빛과 물질, 그 경계를 허물다

by Youhan Kim

양자역학은 마치 날개 없는 새처럼, 처음에는 거대한 미스터리 속에서 출발했다. 전통적인 물리학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빛과 물질이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라는 근본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장에서는 ‘빛은 파동이다, 아니다, 입자다’로 정신없이 논쟁하던 시절부터 막스 플랑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양자역학이 태어나게 된 초기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맨 처음 문제의 시작은 의외로 ‘빛’이었다. 19세기 말까지 대다수 과학자들은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수면 위로 잔물결이 일어나듯, 빛도 공간을 파도처럼 ‘진동’하며 전파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전자기 이론을 완성하면서, 빛이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이라는 사실은 교과서적인 지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열복사(흑체복사) 문제에서 비롯된다.


blackbody-radiation-Fig1.png 흑체는 들어오는 모든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하여 상온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물체이다.


흑체복사 실험이란, 어떤 물체를 달궈서 나오는 빛(복사 에너지)의 세기를 온도별로 측정하는 실험이다. 이 이론을 고전 물리학으로 계산하면, 고온일수록 짧은 파장의 빛(주로 자외선 영역)이 무한정 크게 나와야 했다.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면 빛의 세기가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었다.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로, 고전 물리학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모순이었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인물이 바로 막스 플랑크였다. 플랑크는 에너지가 연속적(파동)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덩어리(양자)’로 주고받는다고 가정해보았다. 한 마디로, 빛이나 열 에너지가 “분할이 불가능한 최소 단위(양자)”를 통해 이동한다는 말이다. 이 전혀 새로운 접근법은 처음에는 플랑크 본인조차도 “설마 진짜로 이런가?”하며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이 가설을 적용하자, 흑체복사 문제의 실험 결과가 딱 맞아떨어졌다. 이 작은 가정 하나가 훗날 ‘양자’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첫걸음이 된다.


뒤이어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같은 개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19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빛이 ‘광자(광양자, photon)’라는 입자로서 작동한다고 제안했다. 당시는 이미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빛은 파동이다’라는 결론이 대세였기에, 빛이 입자라는 주장은 굉장히 이단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빛을 쬐었을 때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빛이 ‘에너지를 가진 작은 입자’로 이해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보았다.


Screenshot 2025-01-22 at 3.56.48 PM.png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광전효과의 예시


이 광전효과란 무엇이었을까? 간단히 말해, 특정 파장(주로 자외선 영역)의 빛이 금속 표면에 닿으면 전자가 튕겨 나온다는 현상이다.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세기를 아무리 크게 해도(예를 들어 매우 밝은 빛) 에너지를 충분히 몰아넣기만 하면 전자가 튀어나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특정 문턱 이상의 ‘주파수(빛의 색상에 해당)’가 아니면 전자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예컨대 아무리 강한 빨간 빛을 쏴도 금속의 전자를 떼어내기 어려웠지만, 푸른빛이나 자외선처럼 더 높은 주파수를 가지면 상대적으로 적은 세기라도 쉽게 전자가 떨어져 나왔다. 이것은 마치 코인을 정해진 액수만큼 ‘정확히’ 지불해야 문이 열리는 자판기와 흡사했다. 빛도 ‘파동’이라기보단 에너지가 뭉친 입자처럼 작동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말이 쉽지, 당시 과학자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빛이 파동이면 입자적 성질은 전혀 없는 것 아닌가?”라는 통념을 완전히 깨부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했던 개념이 ‘양자(Quantum)’였고, 이를 바탕으로 더 깊이 들어간 이론들이 결국 양자역학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


hanuk0644_Create_images_that_best_describes_blackbody_radiation_11f6b5ce-193f-445c-b3f6-7a760707edc7.png 빛의 파동과 입자적 성질을 모두 나타내는 '양자'를 표현한 사진


물론 이 시기에는 아직 우리가 아는 양자역학의 전모가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는 “에너지는 연속이 아니라 양자 단위로 전달될 수 있다”라는 단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속적’이라고 믿었던 물리량(에너지, 빛 등)이 사실은 ‘이산적(불연속적)’이라는 발견 하나가, 물리학 전체의 판을 뒤흔들었다. 이후 닐스 보어는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을 양자화 개념으로 설명했고, 드브로이는 전자도 파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동-입자 이중성의 범위를 확대했다. 이렇게 잇달아 나온 연구들이 점차 ‘고전 물리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미시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해명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양자역학의 체계가 조금씩 다듬어졌다.


중요한 점은, 양자역학이 단박에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보아야 한다!’며 완성된 학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과학자들이 고전 물리로 설명 안 되는 여러 실험적 모순에 부딪혀, 여기저기에 ‘가설’을 내놓았고, 그 중 일부가 더 많은 실험과 검증을 거치며 진짜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배척당했던 가설들이,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으며 물리학 교과서 맨 앞장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결국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 난제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인류는 ‘입자처럼 행동하는 빛’과 ‘파동처럼 행동하는 전자’라는 다소 역설적인 결론에 이른다. 이 역설이야말로 양자역학의 탄생을 결정짓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선 주요 인물들이 바로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같은 물리학자들이었다.


hanuk0644_Make_photos_that_describe_Light_behaves_like_a_partic_7a24dc3d-7e47-4c3f-8941-ad249e66b445.png ‘입자처럼 행동하는 빛’과 ‘파동처럼 행동하는 전자’


이번 장에서는 빛의 이중성, 플랑크의 양자가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등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 배경을 통해, 양자역학이 ‘원래부터 어려웠던’ 이상한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실험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지극히 과학적인 결과물임을 깨닫게 된다. 다음 장부터는 또 다른 주요 개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양자역학의 신비한 세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빛과 물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체감하고 나면, 이 여행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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