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다.
양자역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실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라는 생각부터 드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은 늘 ‘사물은 딱딱하게 정해져 있고,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축구공을 찼을 때 공이 날아가는 각도와 속도를 계산할 수 있고, 계란을 떨어뜨리면 언젠가는 깨진다는 식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상적 물리 법칙이 익숙하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우리가 알던 세계의 규칙을 조금 뒤집는다. ‘오류가 없는 정확한 계산’을 추구하는 고전물리에서 조금 벗어나,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일어난다”는 아주 낯선 관점을 펼쳐 보여준다.
이 낯선 관점은 처음 듣기엔 미스터리 소설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조차 ‘직관적으로 이해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토록 수수께끼 같은 양자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GPS, 반도체 등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의 뿌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무언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이론’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 안에서는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간단히 말해서, 아주 작은 세계—즉 원자, 전자, 광자 같은 미시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보통 우리의 감각은 ‘눈에 보이는 크기의 사물’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원자 수준보다 훨씬 더 작은 세상에서만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직관적으로 잡아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전자가 한 군데에만 존재하지 않고 여러 곳을 동시에 ‘중첩’ 상태로 있을 수 있다거나, 서로 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얽혀’ 서로에게 즉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얘기는 그냥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단순히 공상과학 같다는 이유로 ‘그럴 리가 없다’며 무시하기엔, 이미 수많은 실험 결과들이 양자역학이 실제로 맞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 행동하거나, 전자가 특정 공간에 ‘존재할 확률’만을 가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 등은 더 이상 이론이나 상상 속 장면이 아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은 우리가 100%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그 예측 결과만큼은 틀리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자, 그렇다면 이 학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 더 들어가 보자. 20세기 초, 막스 플랑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같은 과학자들은 기존 물리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컨대 빛이 파동처럼 퍼져 나가는 동시에, 때론 입자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대체 말이 돼?”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이 양자역학의 씨앗이 되었다. 그 후 새로운 실험 결과와 수많은 논쟁을 거치며 양자역학은 점차 이론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지금은 전자공학, 화학, 심지어는 생물학 영역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렇게나 중요한 학문이라면, 당장 안 배우면 손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양자역학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엄청난 수학 공식이나 복잡한 방정식을 전부 암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방정식, 연산자, 확률 진폭 등등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수학적인 기초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일은, 양자역학이 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는지, 그 핵심 아이디어를 맛보는 것이다. 즉, ‘우리는 왜 양자역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흐름으로 느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양자 세계가 보이는 ‘확률’이라는 측면이다. 전통적인 뉴턴 역학에서는 공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공의 미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전자 하나가 이 지점에서 발견될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 정확한 지점이나 속도를 동시에 완벽히 알 수 없다. 이를 ‘불확정성 원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지 우리 측정 도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 자체가 원래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확률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알게 되면, 우리의 사고방식도 자연스레 유연해진다.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작은 변화가 거시 세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식이 실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라는 철학적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시작한 양자역학이 심리학이나 철학, 심지어 예술 분야에까지 통찰을 제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고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이 단지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이미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든 레이저, 트랜지스터, 반도체 칩을 통해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양자컴퓨터’라는, 더 판을 뒤흔들 거대한 도전에 인류가 직면해 있다. 기존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활성화되면, 지금껏 해결 못 했던 복잡한 과학 및 산업 문제들이 빠르게 풀릴 수도 있다는 기대가 크다. 암호학, 보안, 재료 공학, 신약 개발 등 그 영향 범위는 거의 무한대다.
그러니까 양자역학을 배운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열리지 않은 ‘미래 문’ 너머를 살짝 엿보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곧바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되어야만 한다거나, 대학원 물리학과를 졸업해야만 가능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열린 자세다. 우주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를 알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그 원리가 우리 삶과 기술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다면, 한 걸음씩 그 세계로 다가가 보면 된다.
이 책(또는 이 시리즈의 글)에서는 바로 그 ‘한 걸음’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가급적 수학적 공식을 최소화하고, 우리가 ‘감각적으로’ 혹은 ‘이해 가능한 비유로’ 접근할 수 있는 예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양자역학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가장 중요한 몇 가지 개념들—파동-입자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양자얽힘 등—을 이야기하고, 궁극적으로 양자컴퓨터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까지 연결해 보려 한다. 만약 한 번 읽고 다 이해하기 힘들다면,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된다. 물리학자들도 평생을 바쳐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이 양자역학이다. 하지만 적어도, “양자역학이란 게 나랑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꽤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우리의 첫 장을 열어보자. 마치 안개로 가득 찬 아침 숲길을 한 발 한 발 내딧듯이, 양자역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탐험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복잡해 보이겠지만, 분명히 재미있는 발견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일상이 훨씬 더 흥미롭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우리 앞의 긴 여행을 위해, 한 템포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볍게 정비해보자. 이제 곧,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는 아주 짜릿한 경험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