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양자역학과 정보이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

양자역학과 양자정보학의 세계

by Youhan Kim

양자역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정보 이론은 주로 디지털 통신과 데이터 압축 같은 고전적인 문제들을 다뤄 왔다. 예컨대,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클로드 섀넌은 전화선이나 라디오 신호에 섞여 들어오는 잡음(노이즈)을 어떻게 극복할지 연구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수학적 틀이 인터넷과 데이터 압축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여기서 “정보”란 보통 비트(bit) 단위로 표현되어, 전기신호든 종이든 상관없이 어디에든 기록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정보라는 것도 결국 물리적 세계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라는 관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즉, 정보가 단순히 추상적인 기호나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특정한 물리적 상태(전자 스핀, 광자 편광, 원자 에너지 준위 등)로 구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정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칩, 광섬유, 전파 등은 모두 물리적 제약과 법칙을 따른다. 양자정보학(quantum information science)은 바로 이 부분을 깊이 파고든 분야다. 정보 이론을 양자역학적 원리 위에 새롭게 세우면서,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혁신적인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이런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이 바로 큐비트(qubit)다. 전통적인 비트(bit)는 0 또는 1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는 이진 단위지만, 큐비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superposition)’ 상태를 통해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과 완전히 달라서, 이를 이용해 특정 문제를 ‘병렬적으로’ 해결할 잠재력이 생긴다. 물론 여기에 이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큐비트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느냐 하는 물리적 과제다. 큐비트는 주변 환경과 조금만 상호작용해도 쉽게 본래의 양자 상태가 망가지는(‘데코히런스’가 일어나는) 특성을 지니므로, 이를 막기 위한 극저온 장치나 진공 환경, 정교한 오류정정(error correction) 기술 등 다양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연구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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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정보학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단순히 ‘새로운 컴퓨터 만들기’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정보 이론에서는 데이터 복사, 전송, 암호화 등의 과정이 순전히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절차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양자정보학에서는 한 입자의 양자 상태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복제 불가능성(No-Cloning Theorem)”이 등장한다. 이것은 컴퓨팅이나 통신의 보안을 다루는 데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누군가 정보를 훔치기 위해 측정 시도를 하거나, 원본의 양자 상태를 몰래 복제하려고 하면, 그 행위 자체가 시스템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만약 양자통신이 일상화된다면, 도청 시도를 바로 감지하고 중단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보안 체계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점은 현대 암호학의 미래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 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암호 대부분은 커다란 수를 소인수분해하기 어렵다는 수학적 난제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한다면, 이런 수학적 난제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암호 체계가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데, 이에 맞서는 것이 양자암호(quantum cryptography)다. 양자암호는 양자의 물리 법칙 덕분에, ‘정보를 가로채려는 시도 자체’를 실시간으로 알아챌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 수준의 보안을 넘어, 물리적 세계 자체가 보안 체계가 되어주는 셈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로, “양자텔레포테이션(quantum teleportation)”을 꼽을 수 있다. 흔히 영화에서 다루는 ‘인체 순간이동’과 달리, 실제 양자텔레포테이션은 양자 상태를 멀리 떨어진 곳에 재현하는 프로토콜이다. 여기에는 얽힘(entanglement)과 고전적 통신이 함께 쓰이는데, 원격지에서도 원본과 동일한 양자 상태를 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네트워크와 분산 양자컴퓨팅 기술을 혁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물론 이를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선 여러 난관이 남아 있지만, 이미 연구실 차원에서는 작은 규모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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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보 이론과 양자역학의 결합은, 우리가 “정보는 추상적 기호에 불과하다”거나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는 물리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기존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 정보가 실제로 구현되는 하드웨어, 그리고 그 하드웨어가 따르는 물리 법칙이 곧 정보 처리의 능력과 한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정보학은 물리학과 컴퓨터공학, 수학, 전자공학, 심지어 철학까지 아우르는 다학제적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과 연구소들이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며 ‘양자컴퓨터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잠재력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큐비트를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문제, 양자오류정정 코드를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문제, 상업화에 필요한 비용과 인프라 등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상당한 연구와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에 정보 이론이 디지털 혁명을 일으키며 인터넷, 모바일, 스트리밍 산업 등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듯이, 양자정보학도 21세기의 또 다른 혁명을 이끌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특히 빅데이터, 인공지능, 보안, 의료, 재료 개발 등 수많은 산업이 고성능 연산 자원을 갈망하고 있는 만큼, 양자컴퓨팅이나 양자통신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상상 이상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정보가 ‘물리적 실체’라는 통찰이다. 우리가 컴퓨터 속에서 0과 1로 쉽게 다루는 것들도, 사실은 전자기 신호, 원자의 에너지 상태, 광자의 편광 등 구체적인 물리 현상을 반영한다. 양자정보학은 이 사실을 한껏 확대해 “정보가 곧 물리량이자 우주의 작동 원리 중 하나”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그 결과, “정보 처리”와 “물리 현상” 사이의 경계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해졌고, 우리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오늘날 양자정보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이론이 전통 물리학과 컴퓨터 과학, 그리고 실용 기술의 접점에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초정밀 물리 실험과 이론 연구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IT 기업들이 미래의 양자 생태계를 선점하려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래서 양자정보학이 일으킬 혁신은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경제, 나아가 우리 생활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막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 양자정보학은,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며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암호화 기법이 어느 날 순식간에 무력화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날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안전한 통신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양자텔레포테이션 같은 기술이 더 정교해진다면, 데이터 전송의 개념 자체를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돌파구들이 현실화되는 순간, 21세기가 맞이할 “정보 혁명”의 풍경은 확 달라지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양자정보학은 정보 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해 “정보가 곧 물리량”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분야다. 큐비트와 중첩, 얽힘, 복제 불가능성 같은 양자 현상들이 더 이상 이론적 호기심만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컴퓨팅과 통신, 암호 시스템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지만, 그만큼 잠재된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먼 훗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미래의 양자 혁명이 막 불 붙기 시작한 시대”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정보와 물리의 결합이 우리에게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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