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대신 헬멧을 쓴 내가 마주한 새로운 배움의 현장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사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저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바쁘거나, 관심이 줄어서였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꽤 개인적이고 복합적인 이유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 지원 자격인 만30세 막차를 타고, 호주 멜버른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 저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 전혀 다른 방식의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변화의 폭이 크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적응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제 마음이 아직 ‘쓸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 삶의 방향을 바꾸는 또 다른 선택, 건설 자격증 취득이라는 도전
디지털 마케팅, HR, 콘텐츠 기획 등 여러 방면에서 쌓아온 경험들이 저의 큰 자산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실용적이고 직접적인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분야는 바로 건설업입니다.
처음 이 분야를 선택했을 때, 저 자신도 조금 놀랐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기획서를 쓰던 사람이, 이제는 공구를 들고, 안전모를 쓰며, 몸으로 일하는 환경에 뛰어드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직업’에 대한 저의 정의도 달라졌고,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쌓는 일이야말로 제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2. 호주에서 일하려면 꼭 필요한 첫걸음, 화이트카드 취득기
호주에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화이트카드(White Card)를 반드시 소지해야 합니다. 이는 일종의 기본 산업안전교육으로, 사고 예방 및 작업 중 지켜야 할 규칙들을 이론과 사례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집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교육이기에 언어적 이해도 중요했고,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나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자격증을 얻는 것을 넘어서,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 자세’를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3. 밀폐된 공간, 그리고 높은 곳에서의 작업: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
화이트카드 취득 이후, 저는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추가 자격증 과정에도 등록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Confined Space Entry.
좁고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의 작업은 항상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고도의 주의력과 장비 활용 능력이 요구됩니다. 직접 방독면을 쓰고, 벨트를 착용한 채 모의 상황을 실습하면서 ‘몸으로 배우는 일’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또 다른 자격증은 Working at Heights입니다. 고소 작업이 필요한 현장에서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죠.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절차부터, 긴급상황 대처법, 장비 고정과 해체까지. 하나하나가 생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기술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4. 키보드 대신 헬멧을 쓴 내가 마주한 새로운 배움의 현장
예전의 저는 회의실에서 PPT를 열고, 이메일과 마케팅 문구를 고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안전화를 신고, 강의를 들으며, 장비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아직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몸으로 배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깨달음을 준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눈빛, 장비 하나에도 깃든 경험과 기술, 실수 하나가 얼마나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매 순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저는 다시 겸손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5. 쓰지 못한 시간이 헛된 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 역시 저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익혀온 경험들.
비록 글로 옮기진 못했지만, 마음속에는 꾸준히 쌓이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흘러나올 준비가 된 듯합니다.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다시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
앞으로는 멜버른에서 겪는 일상, 자격증 준비 과정에서의 이야기,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며 느낀 감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사소하지만 소중한 깨달음들을 천천히 나누어보겠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주제라도 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꺼내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제가 전하는 이야기가 작은 영감이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