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홀러의 커리어 생존기

“그 비자로는 어렵습니다”라는 말 앞에서 내가 한 일들.

by Youhan Kim


1. 프롤로그 — 그냥 여행일까, 잠시의 도피일까


2025년 4월, 나는 한국을 떠나 멜버른행 비행기에 올랐다.

워킹홀리데이 비자(WHV)를 들고, 마치 ‘잠시의 휴식’이라도 찾아 나서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택은 결코 가볍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나는 약 1년 동안 한국에서 구직활동을 했다.

이력서를 수십 번 고치고, 면접 준비에 날을 지새우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버텨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내 시간은 점점 의미 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없이 그저 붙잡힌 상태.

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한 나’만 존재하는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커리어가 ‘누군가의 승인’ 없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이 회의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멈춰있는 거라면, 내가 주도해서 멈추자.”


워킹홀리데이라는 선택은 나에게 있어 도피가 아닌 전환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진 가능성들을 다시 조율할 수 있는 시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살고 싶었다.


물론 걱정도 컸다.

“레쥬메에 또 공백이 생기면 어쩌려고?”

“너무 튀는 이력 아니야?”

주변에서 들려오는 현실적인 조언들은,

결국 이 선택이 내 커리어에 레드 플래그를 심을 수 있다는 경고였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확신을 잃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멜버른 땅을 밟았다.

커피 한 잔도 6~7천 원을 넘는 이 도시에서,

내 커리어와 생존 사이의 균형을 다시 설계해 보기로 했다.




2. 비자라는 이름의 벽


멜버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비자가 어떤 방식으로 보이는지를 곧장 체감할 수 있었다.

Working Holiday Visa, 줄여서 WHV.

누군가에게는 자유롭고 젊은 모험가의 상징이지만,

구직 시장에서는 꽤나 불편한 조건을 달고 있는 이름표였다.


호주 정부가 이 비자를 설계한 방향성은 명확했다.

단기 노동력 충원을 위한 제도, 특히 농장, 건설, 리조트 등 지역 기반의 육체노동 중심 일자리를 장려하는 구조.

즉, 사무직이나 전략직처럼 연속성과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WHV 소지자가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곤 했다.


현실도 그랬다.

수많은 채용공고(Job Description)에는 버젓이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WHV, Student Visa holders need not apply.”

단 한 줄.

그 문장 하나로, 내 이력서와 커버레터는 도달조차 하지 못한 채, 묻혔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구가 없는 공고’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Google에서의 Account Strategist 경험, Bosch에서의 HR 어시스턴트 경력,

그리고 5개 대학을 거쳐 쌓아온 내 배경을 바탕으로 정성껏 맞춤 지원서를 보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돌아오는 메일은 너무도 익숙한 형태였다.


“Unfortunately, we regret to inform you…”
“We truly appreciate your interest in the role and encourage you to keep in touch.”


무슨 회사든, 어느 직무든, 거절의 문장은 너무도 정중했고,

그 정중함이 때로는 더욱 허무하게 느껴졌다.


물론 한국에서 1년 가까이 구직활동을 해온 나에게, 거절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

그 점이 더 답답하고, 더 외로웠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나의 이력은 경쟁력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WHV라는 문장이 모든 경험의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순간들을 반복해서 마주하자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 생존과 커리어 사이, 나만의 루틴 만들기


처음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는 사무직 위주로 구직을 시작했다.

HR, 리쿠르팅, 세일즈, 마케팅…

익숙한 분야였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포지션들이 대부분 ‘장기 근무’를 기본 전제로 한다는 점이었다.

“최소 1년 이상 근무 가능자”,

내 비자는 6개월 한계.

그 문장이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준비형 워홀러였다.

혹시라도 구직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한국에서 바리스타 자격증(ICA)을 미리 취득해 두었고,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화이트카드, 지게차 면허, 고소작업, 밀폐공간 작업 등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자격들’*을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기회가 없을 땐, 만들 수 있는 것부터 준비하자고 다짐하면서.


낮에는 SEEK와 LinkedIn에서 채용공고를 찾아 맞춤형 이력서를 쓰고,

저녁에는 현지 리크루팅 에이전시에 전화를 돌리며

내 비자 상태를 설명하고 가능한 포지션이 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하루 3~5개의 지원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4월 후반부쯤, 생계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렌트비는 빠져나가고, 고정 지출은 쌓여가고,

은행 계좌의 숫자가 점점 바닥을 향해 달려갈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커리어’가 아닌 ‘생존’이었다.


결국 나는 타일 보조 일을 시작하려 했다.

육체적으로 힘들겠지만, 당장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작업화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Sidekicker에서 연락이 왔다.


“Hi, we’ve reviewed your application for the Client Services Consultant role and would love to chat further.”


순간, 정말 순간이었다.

잊고 있었던 JD 한 줄에서,

“이건 딱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느꼈던 바로 그 포지션이었다.


스크리닝 인터뷰는 예고 없이 갑자기 걸려온 전화였고,

비몽사몽 상태에서 받았던 나는 완벽한 답변을 하지는 못했다.

JD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날 밤,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어도, 이번엔 기회를 얻었으니까.”




4. 변화의 순간 — Sidekicker에서 온 연락


기회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걸 잡기 위해선,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Sidekicker의 채용 공고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치 확신이 들었다.


“이건 딱, 나한테 맞는 일이다.”


Sidekicker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운영되는 단기 인력 매칭 플랫폼이다.

일반적인 잡서치 앱과는 달리, 기업과 단기 인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케이터링, 물류, 접객, 이벤트 운영, 리테일, 사무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기업들의 일시적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고퀄리티의 인재풀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플랫폼이 단순히 ‘단기 노동’을 중개하는 게 아니라

고객사와 현장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문제를 조율하며,

기업이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원한 Client Services Consultant 포지션은

그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였다.


고객사와의 커뮤니케이션


인재 매칭 및 관리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팀 내 오퍼레이션 조율



그 어느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Google에서 Account Strategist로 수백 개의 광고 계정을 관리하며,

시장별 인사이트를 도출해 세일즈 전략을 제안하던 기억.

Bosch에서 HR Assistant로 일하며 채용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Diversity Day, 조직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순간들.


JD의 단어 하나하나가, 내가 걸어온 길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이건 단순한 계약직도, 단기직도 아니었다.

내 커리어의 다음 챕터를 위한 합당한 무대였다.


그런데 연락은 아주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반쯤 잠에 취한 상태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스크리닝 인터뷰였다.


머릿속이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였고,

JD를 다시 훑어볼 시간도 없었으며,

심지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가다듬지 못했다.

질문 하나하나에 ‘기억을 더듬으며 답하는 나’를 느끼면서,

그저 진심만큼은 전달되길 바랐다.


“완벽한 답변은 못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아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 건 이런 감정이었다.


“이번엔, 나를 볼 기회라도 얻었다.”


Sidekicker의 이 포지션은 나에게 또 하나의 알바가 아니라,

내 커리어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실마리였다.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보관’하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건 숫자로는 측정할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자존감과 커리어의 무게를 다시 바로 세우는 데는 충분한 기회였다.




5. 커리어는 비자가 정하지 않는다


호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자유로운 체험’의 기회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주 만에 그 생각은 바뀌었다.

이 비자는 자유보다 조건을 먼저 요구했다.

6개월이라는 고용 제한, 기업의 채용 리스크 회피, 그리고 사람들의 고정관념.

‘워홀러는 일시적인 인력’이라는 이미지가 내게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비자가 나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커리어를 설계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한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WHV니까, 어차피 내가 잘하던 일은 못하겠지.’

그건 스스로를 좁히는 사고였다는 걸 알게 됐다.


Sidekicker의 JD를 보고 지원할 수 있었던 건,

그 전까지 나 자신을 비자로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온 일들, 내가 좋아하는 방식, 그리고 장기적으로 만들고 싶은 나의 모습.

그걸 잊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고민했고, 포기하지 않았고,

때로는 타일을 들어야 한다면 들자고 마음먹을 만큼 현실과도 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년 넷플릭스 인터뷰에서 받은 피드백은 아직도 내 안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너는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걸 증명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 말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


워홀이라는 조건 아래서도,

나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고,

나의 커리어는 이어질 수 있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걸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자는 조건이지만, 커리어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시작된다.




6. 에필로그 — 나에게 건네는 말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그 정도로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즐기고 와.”

그 말은 따뜻했지만,

나는 내가 쉬는 걸 바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살아 있기를’ 바랐다.


생존의 문제와 커리어의 방향성 사이에서

매일같이 고민했고,

적어도 나만은 내 이력을 구겨 넣고 싶지 않았다.


낮에는 이력서를 고치고,

밤에는 호주식 커버레터 문장을 되새기며

100개가 넘는 지원서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나는 나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무게를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이력서,

거절 메일이 쌓여가는 메일함,

점점 조여오는 잔고와 현실.


그렇다면 나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잘 버텨왔다.
나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감사함을 연습하는 사람,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조건 속에서도 방향을 고집하는 사람.


그게 지금의 나고,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다면

우리, 이곳에서 꽤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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