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
2022년 12월 24일 토요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내가 사는 동네에 예술의 전당이 있다. 나는 예술의 전당 앞을 일 년에 백번을 지나가도, 극장표를 끊는 건 3년에 한 번 정도랄까. 이날은 한집에 사는 우리 아가씨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한 달 전에 이뤄졌다. 회사의 복지 포인트가 매년 지급이 되는 데 용도가 한정되어 있어 나와 우리 아가씨는 고민 끝에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예매했다.
서초 3동 사거리 반포대로에서 예술의 전당 쪽으로 걸어가는 나와 우리 아가씨는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집 안에 있을 땐 체감할 수 없는 것이 날씨라지만, 내일 날씨가 춥다고 어젯밤 뉴스에서 수없이 말했는데 몇 년 만에 가는 문화관람이라 뭘 입고 가냐의 결정으로 추위는 무시됐다. 지금 뼛속으로 스며 오는 한기에 우리는 반포대로를 빠른 속도로 걸었다.
나는 우리 아가씨한테 물었다.
“춥지, 엄청나게 춥지”
찔리는지 "하나도 안 추워 안 춥다니까"
차가운 손은 춥다고 말하는데도.
브로드 웨이는 뉴욕에 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 당시에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배경으로 만든 극이다. 확대하자면 1932년 건립한 102층의 초고층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건립된 요크공의 도시라는 뉴욕, 그곳이다.
배우가 꿈인 코러스 걸 페기가 연출가 줄리안 마쉬, 그리고 끝장 다 본 내리막길 프리마돈나 도로시, 신인 페기가 스타가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시골 출신의 페기는 뮤지컬 댄서가 되는 꿈을 안고 프리티 레이디라는 작품 오디션을 보려 하지만 시간에 늦게 도착하고. 한편, 최고의 스타였지만 이제는 내리막에 들어선 여배우 도로시가 오디션에 결국 붙게 된다. 이는 애인 애브너가 그녀를 출연시키는 대가로 공연에 자기 돈 1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원하는 최상의 공연을 위해 단원들을 열심히 연습을 한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그러다 도로시의 발목이 부러진다. 프리마돈나를 잃은 줄리안 마쉬는 공연을 취소하려 하지만 실업자가 될 위기의 단원 들은 페기를 추천한다.
가방을 싸 기차역으로 나간 상태의 페기를 극적으로 데려오며 스타가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불어넣는다. 공연 시간 까지는 36 시간, 25페이지 분량의 대사. 노래 6곡, 10종의 춤이 페기에게 주어지고 페기는 열정적으로 출발한다.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지켜본 도로시는 페기를 인정하며 힘을 실어주고 본 무대는 시작된다.
혼자 추는 페기의 피아노 위 탭댄스를 나는 집중력 있게 보았다. 제일 뒤에서 보는 거라 진짜 피아노인지 아니면 모형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정말 리듬감 있게 추는 탭댄스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즐거운 박자감으로 박수가 절로 나왔다.
무대 위의 화려하고 빛나는 막도 수없이 오르내리고 바뀌었다. 정확히 세 보진 않았지만, 약 30여 명의 코러스가 춤추는 탭댄스와 율동은 분명 즐겁고 화려한 축제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줄리안 마쉬 연출자의 혹독한 연습량을 보며 정말 저렇게 해야 최고가 된다는 걸. 도로시의 입장도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대접받으며 지켜왔던 자리, 아무나 줄 수 없는 자리 그 프리마돈나를 넘겨주고 퇴장하는 마음을. 새로운 스타를 위해 조언과 축하를 하는 결말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들 즐겁게 춤췄다
.
나는 처음 볼 때 뻔한 내용 일거라며 싱겁게 관전했지만 점점 흥겹게 몰입되고, 보고 난 후에도 잘 봤구나 하고 스스로 인정했다.
내 공간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살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기도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물러가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생각해 보았다.
나와 우리 아가씨는 반포대로를 걸으며 추위를 잊은 채 도로시와 페기를 놓고 서로 누가 더 잘했니 좋았니 하며 길 건너 팥죽집으로 향했다.
뉴욕 브로드웨이는 유명한 극장가라던데, 나는 반포대로를 걸으며 브로드웨이를 가서 본 것처럼 즐겁게 걷고 있다.
“춥냐?”
“하나도 안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