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엌칼의 위압

라면을 좋아하는데

by 낫으로 깎은 연필
ramen-gbcdfc7337_640.jpg


물이 끓자 면과 스프를 넣었다

물도 알맞고 조리 시간도 정확하다


처음부터 내가 끓인다고 했는데

내가 더 잘 끓이고 잘할 수 있는데


부엌칼은 냅다 뺏은 냄비를 곧바로 싱크대 물을 틀어 받는다

흰머리 부엌칼은 날마다 인사만 받더니 내 속은 알려하지 않는다


깨끗이 씻었다 해도 한 번은 놀라지 않게 헹굼이라도 해야 않겠니?

어느 나라는 숟가락도, 포크도 순서가 있고 꼭 자리도 지켜야 한다던데

나는 옆에 놀고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려 했는데

그러면 물도 깨끗하고 뜨거워 시간도 단축되는데


무지막지한 부엌칼은

내 손에 든 냄비를 가로채는 손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농구시합도 아닌데


벌써 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일을 덜어주려 했는데


부엌칼과 나는 조리법이 다르다

1950년도 아니고

1970년대도 아닌데

지금은 2023년인데

나는 라면을 씹었다


맛있는 라면을 찾아갔다가 배만 채우고 있는 나

정확하게 끓였어도 입맛이 사라져 버린 사랑 없는 라면

부엌칼 보고 있니

2023년에는 사랑하며 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 브로드웨이 42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