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서른 살 나는 광주에 있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완충기에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유신아. 다음 주 일요일에 시간 좀 내줘”
“응 뭔데”
“할아버지 묘지 이장하는데 같이 가자”
“으윽, 그거 아무나 해도 돼?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시골에서 자란 나는 무덤을 파고 매장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다만 상여를 멘 마을 사람들이 동내를 돌아 산으로 올라가는 광경은 여러 번 보았다.
2년 선배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다음 일요일에 묘지 이장을 하는데, 나는 그러자고 말했지만, 집에 와 생각해 보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날짜가 다가오는 와중에 선배에게 물었다.
“형 무덤 파는데 무섭지 않을까 송장 나오면 어떡해?”
“무섭긴 뭐가 무서워 30년 전 돌아가셔 다 삭고 없을 거야”
“음. 그래도 찜찜한데”
“괜찮아 그냥 가서 두어 시간이면 끝나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왠지 무섭기도 했지만 믿지도 않았던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아 찜찜하고 캄캄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약속한 일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기에도 비옷을 입기에도 어중간한 비, 먹구름은 스멀스멀 비를 뿌리고 있다.
사실 아침부터 비가 오니 미뤄질까, 좋아했다가, 다음으로 미뤘으면 하고 내심 기대도 했지만 묘지이장은 미룰 수 없다고 한다.
선배와 함께 매형 차를 타고 담양의 한적한 산으로 갔다. 길도 제대로 없는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무덤 하나가 오랜 풍화를 견디고 납작 엎드린 채 비에 젖고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덤은 축축이 젖은 채 무덤을 중심으로 소나무에 둘러싸여 무덤 안쪽에선 나무 말고는 밖을 볼 수 없다. 나무들이 무덤을 둘러싸고 지키는 건지, 무덤은 나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건지, 낮아진 무덤은 자리를 확실히 지키고 있다
.
우리는 다 같이 할아버지 묘에 절을 했다. 나는 뭔가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느끼며 점점 으스스 해지고 있다.
80년대 후반 홍콩영화가 유행했을 때 강시영화 한 장면이 문득 들었다. 근데 오늘은 직접 무덤을 파는 날이다. 괜한 걱정을 한다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무서움은 나를 움츠리게 했다.
삽 세 자루와 마대, 유해를 구분해 담을 수 있는 천으로 된 넓은 보와 비닐을 우리는 꺼내 펼치고 있다.
매형은 큰소리로 말한다.
“자 빨리 파자”
모두 삽을 들었다. 매형은 무덤의 한가운데 꼭대기에 올라 삽 언저리를 힘껏 밟자 삽은 깊숙이 박혔다.
나도 선배도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은근 죄짓는 느낌도 들었다. 어린 시절 시골 무덤가에 놀며 많이 올라가 봤지만, 오늘은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닌 직접 무덤을 파니 나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판다는 것은 나를 어색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 눈 가리고 보았던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처럼 뭔가 나올 거 같은 분위기다. 날씨도 딱 절묘하다. 보슬보슬 비도 내리고.
그런데 생각보다 무덤은 비에 젖어 삽은 쑥쑥 잘 박힌다. 고운 황토로 봉분을 쌓아서 그런지 자갈이나 돌이 걸리지 않아 비교적 수월했지만, 비에 젖어 무거진 흙은 꽤 힘이 들었다.
빗물과 땀에 모두 흠뻑 젖었다. 매형은 이쯤이면 나올 거 라며 천천히 파라고 말했다. 우리는 조금씩 조심스럽게 파 내려갔다.
드디어 어떤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각과 면이 보이고 그것이 관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을 때 나는 소극적으로 흙을 걷어 가고 있다. 매형이 말한다.
“관이 다 썩어 브렀네 천천히 걷어 내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