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되는 순간
긴장되는 순간이다. 작은 빈틈으로 보이는 시커먼 속은 뭔지 알 수가 없다. 손과 다리도 얼은 듯 삽을 든 손이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머뭇 거리는 나와 선배를 비집고 매형이 갑자기 삽으로 관을 부숴 버렸다. 아니 부쉈다기보다 관 채 흙을 걷어 버렸다고 할까.
관의 일부가 삭아 뜯기며 안이 검게 보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어떤 형태랄 수 있는 흔적이 바닥에 깔려 있다.
혹시나 우려했던 송장도 시신도 없었다. “으하하하” 하며 뛰쳐나올 것 같았던 대마왕 귀신도 없었다. 관도 시커멓게 삭아 부서지고 조각나 흘러내리는 흙과 뒤섞여 유해를 알아볼 수 없다.
손으로 관 바닥을 긁어서야, 다 썩지 못한 바스러지는 뼈가 젖은 흙과 범벅이 되어 있다. 관의 방향으로 북쪽이 머리고 남쪽이 다리라고 인지하고 머리와 어깨, 팔다리를 어림잡아 조상님의 흔적을 가져온 면모에 가지런히 놓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굳었던 내 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숙연해지고 정숙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집중하여 열중하고 몰입되어 힘든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있다. 다만 비 오고 땀 나서 축축해서 싫을 뿐이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고고학자 마냥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게, 나는 관 바닥을 손으로 훑어가며 걸리는 모든 뼈를 찾아냈다.
소슬비 내리는 검푸른 키 큰 잔디
파헤친 무덤은 상처 입은 영혼의 눈물인가 반가운 저항인가
오랜 기다림 끝, 서운함의 항의 인가
줄 것도 바랄 것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너지는 무덤
황토색 흙은 피만큼 진했다
개화기는 말이 없다
육신의 흔적을 제 몸으로 보듬은 작은 흙무덤
검은 옷 구름이 비를 가져와 무덤을 다독인다
혼은 바람에 날려 구름 타고 하늘에 오르고
흙이 된 육체는 최초에 대지로 돌아간다
우리 세 사람은 파헤친 구덩이를 삽으로 열심히 메웠다. 봉분은 만들 이유가 없으니 덮는 것은 파는 것보다는 수월하고 금방 끝났다.
이 무덤을 처음 만들 때, 아버지를 묻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과 친인들이 이곳에서 마지막 이별을 했을 것이다. 나는 상상했다. 개화기에 태어나 일가를 이루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생이 다해 늙어 쓰러진 할아버지. 오랜 시간이 지나 그대로 흙이 된 흔적을.
세 사람은 수습한 유해를 싣고 선배네 집 뒷산 밭으로 이동했다. 밭 가장자리에 매형이 전날 파놓은 무덤이 있다. 우리는 유해를 차분히 하나하나 순서대로 내려놓고 관을 덮었다.
나는 오늘 무덤 파는 일이 꺼림칙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직접 해본 결과 어렵지 않았고 그런 생각들은 다 사라지고 경건하고 차분했다. 그냥 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람의 마지막 표시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덤 속 주인은 선배 할아버지지만, 그에 앞서 그는 우리의 조상이며, 웃어른이다. 선배 할아버지와 내 할아버지의 선조를 거슬러 천년을 올라가며 잔 가지를 센다면 내 먼 할아버지와 친구일 수 있고 내 먼 할머니의 사촌일 수도 있다. 한 민족 이란 말이 이런 걸까. 나는 생각 끝에 그럴 거라고 믿었다.
선배의 아버지는 오늘 왜 처음의 장소와 새 무덤에 오지 않았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열로 하셔서라고 선배는 말했지만, 집뒤 뒷산 가까이 있는데도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셨다면, 아버지는 과거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또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슬퍼하겠지.
다만 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장소와 가까운 장소로 옮기고 싶은 자식의 마음이 더 컸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
무덤이 공의 단면처럼 만들어질 때 비는 그치고 있다. 민무늬 황토무덤에 주문해 온 떼를 타일 붙이듯 한 장 한 장 올려 삽등으로 다독다독 두들겼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어 알 수 없지만, 묻히기를 두 번 하고 다시 무덤에서 나오기도 했다. 아마 훗날 내가 죽으면 이런 일은 없겠지. 이제는 장례 문화가 바뀌어 화장하는 것이 정착화되었으니까.
나도 언젠간 죽을 텐데.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고 두렵지만 나는 이제 죽음이 조금은 두렵지 않아 졌다. 그냥 어제보다는 죽음에 대해 긍정으로 차분해져야지. 하며 내 오늘은 흔하지 않은 특별한 체험으로 의미 있는 날로 기록되었다.
마을로 내려온 나와 선배, 그리고 매형은 팔순이 넘은 아버지께 끝내고 간다는 인사를 했다. 선배 아버지의 늙으신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는 무덤에 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같이 한 것 같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선배에게 말했다.
“형 고생 했소”
“뭘, 네가 고생했지 고맙다.”
“형, 다음에 우리 할아버지 묘지 이장 하면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