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낫으로 깎은 연필 Jan 30. 2024

그날 정형외과에 마취제가 없었다

한계를 넘어선 고통

아픈 어깨를 들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창구 앞, 대기실은 오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없다. 간호사는 차트를 들고 주사실과 진료실을 분주하게 다니고, 오랜 경력을 가진 정형외과 의사이자 원장님은 안과 밖을 뛰어 다니는 베테랑 의사이다.


보름째 이어지는 어깨통증. 집 앞에 있는 동네의원에 갔다. 어깨가 뭉친 거라며 어깨 주위에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왔지만, 다음날에도 통증은 어제와 변한 게 없다. 

삼일째,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의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 왼팔을 잡아 바깥쪽으로 젖혔다.

“으으아” 

“오십견이네”

“네?” 

통증의 뿌리를 건드린 아픔에 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병명은 오십견. '허어' 내 나이 마흔넷인데 무슨 오십견이라니, 오진이라고 믿고 싶지만, 힘없이 “네에” 하고 답했다.

 ‘어르신들이나 나이가 든 어머니들이 걸린다는 오십견을 내가 걸리다니, 차암나, 세상 사람들과 믿고 산다는 것이 새삼 이해하기 힘든 오늘이었다.’     


이병은 점점 언 듯이 굳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는 병. 그러나 그 과정이 길고 통증이 커, 심지어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할 정도로 불편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고약한 병이다.     

직장이 있는 홍대 사거리 정형외과에서 본격 치료를 하기로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은 뼈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당연하지, 다친 적이 없는데.’ 몸을 지탱하는 뼈가 문제없다니까 큰 병은 아닐 걸로 생각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을 계속 듣자니 약 먹고 끝나는 쉬운 병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난 아직 건강하고 다른 질병도 없는데, 왜 이런 병이 생겼지?, 원인도 모른 채 치료를 위해 항상 바쁜 나의 일상의 시간을 손해 본다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깨를 들어 움직이며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어깨 관절이 붙었으니 찢자고 했다. 

‘하아’ 어깨가 종이도 아니고 찢는다니 나는 치료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거북스럽고 품위 없게 들렸다. 

쇠를 두들기는 대장간에서나 들을 법한 말을 편안하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난 쇠도 아니고 도구도 아닌데' 기분은 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깨를 찢는다는 말에 겁이 났다.

좋은 말도 많은데 말이다. 관절이 붙었으니 살살 돌려서 관절을 부드럽게 해 봅시다. 이런 고운 말도 있었는데, 어깨를 확 찢자고 하니 잘 못 들어왔단 생각도 들었다.


등받이가 없는 낮은 의자에 나를 앉히고, 간호사를 불러 내 오른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았다. 

‘후하’ 심상찮다. 곧 무시무시한 원시적 상황이 일어날 거라고  예감했다. 그런데 난 이미 뒤로 물릴 수 없는 위치에서 간호사에게 붙잡힌 상태다. 의사 선생님은 왼팔을 8번 크게 돌린다고 했다. 젊으니까 참으라고 했다. 금방 끝난다고 했다.  

"흐흡 후우"

'심호흡을 세 번은 더 한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굳은 내 왼팔을 잡아들자 어깨째 하늘로 향하며 엄청난 통증이 전달되었다.  

내가 고구마줄기도 아니고 줄기를 잡고 고구마까지 뽑아버리려고 했나, 줄기를 걷어내고 고구마를 안 다치게 캐야 하는데 인정사정없이 의사 선생님은 한 움큼 쥐어 잡아당겨 버렸다. 


 ‘완마’

  총 맞은 자리에 칼로 도려내는 아픔일까? 엄청 큰 종기를 짤 때보다 백배는 더 아프다. 아마 천배인지도 모른다.

의사가 미쳤을까? 공포영화의 사이코인가? 팔을 빼려고 작정했나?, 누가 현장을 본다면 딱 그런 장면이다. 무지막지하게 잡아 돌리는 의사와 간호사. 어깨관절을 꺾어 돌릴 때, 우두뚝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내 팔을 달라고 의사 선생님과 생사의 줄다리기를 했다.

“으아아으으윽”     


밖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알렸다. 아마 다음 차례가 당신이 될 거라고, 생생한 고통의 신음을 진료실 밖으로 던졌다. 

 아프다고, 죽겠다고, 응원해 달라고,  더 크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난 소리 질렀다. 솔직히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고통의 비명을 안 낸다는 건,  그런 사람은 통증을 모르는 불감증 환자일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속으로 숫자를 안 셀 수가 없다. 한 번이라도 숫자가 줄어 들으라고, 어깨가 8바퀴가 끝나고 난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장이 외지고 어두운 창고라면 공포영화를 찍는 장면이 딱 맞을 것이다. 당하는 주인공과 괴롭히는 의사와 간호사. 아마 끝내주는 진짜 같은 현장촬영이지 싶다.’     

의사 선생님은 방글방글 웃는다. 

정말 딱 맞다. 괴롭히는 자와 당한 자의 정반대의 표정이.


 “다 됐어요. 수고했어요.” 통증을 제외한 의학적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의사. ‘와아’ 아픈걸 더 아프게 만들었나 보다. 

어깨관절이 욱신욱신 숨을 쉰다.   

사실 마취주사를 맞고 치료하는 것인데, 노련한 의사 선생님은 내가 젊기에 번거로운 매뉴얼을 생략했다. 아주 심하게 굳은 환자나 약자, 노인 그리고 뼈가 약한 할머니들은 마취제를 놓는다고 나중에 들었다.

  나는 마취주사를 맞지 않아서 좋았지만 너무 아팠다. 마취제가 얼마나 비싼지 모르지만 마취제값은 항목에 없었다.  그래봐야 의료보험, 실손적용하면 얼마 차이 없겠지만 화학약품이 내 몸에 안 들어온 걸로 만족했고 더구나 무서운 주삿바늘에 찔리지 않아서라고 작으나마 만족하고 싶다. 

물리치료를 받고 나오자 그 많던 환자들이 없어졌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베테랑, 있는 힘껏 최대 속도로, 

치료를 명목으로 나를, 막잡아 돌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