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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으로 깎은 연필 Apr 27. 2024

구두 뒷굽 덧대기

비브람창으로 업그레이드

  구청에 다니는 우리 아가씨는 구두 하나를 샀는데,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크다고, 신발장에 가둬 버렸다. 맘에 드는 신발 찾아 스마트폰, 노트북, 데스크톱 속까지 몇 날 며칠을 샅샅이 뒤지다가, 성수동 수제 매장에서 어렵게 샀는데, 신발장에 가둬진 구두는 날 보고 울고 있다.


   생각 끝에 작년에 사놓은 비브람 고무창이 신발장에서 붉은 부적으로 변해 있는 걸 기억해 냈다. 내 구두 뒷굽에 붙이려고 사놓은 건데, 오늘 우리 아가씨 구두 뒷굽에 붙이기로 했다. 붙이기에 성공한다면 또각 소리는 흡음되고 구두는 신발장을 나갈 수 있다. 

 중학교 때부터 자전거를 타면서 펑크 수리를 직접 해보았기에 고무에 고무를 붙이는 건 쉽다고 생각했다. 동네 다이소에서 신발 전용 접착제를 2천 원에 사고, 집에 있는 사포와 커터칼, 고무밴드, 가위를 준비했다.

비브람 고무 원판에 구두 뒷굽을 대고 볼펜으로 재단할 금을 그었다. 민감한 우리 아가씨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지만 꽤 신중하게 뒷굽 모양 고무창을 오려냈다. 고무창 색이 붉은색이라, 멈칫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밑바닥에 붙는 거라 나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속도를 올렸다.     

구두 뒷굽을 사포로 갈아 냈다. 갈아 내는 이유는, 아주 작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표면을 거칠게 해 뒷굽의 순수한 상태를 만들어야 접착이 잘되기 때문이다. 


 뒷굽 밑면과 붙일 고무창을 빈틈없이 잡착제를 칠했다. 접착제는 고무를 녹일 만큼 냄새가 강렬했다. 보통 일반 접착제도 냄새가 독하지만, 이 신발 접착제는 그보다 강력한 PVC 파이프 전용 접착제 같다. 어릴 때 아버지가 수도공사 하는 걸 옆에서 보았기에 그때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이걸 계속 맡다가는 아마 환각에 빠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겁나진 않았다. 베란다 창을 열고 바람이 나가는 창도 열어놨고, 한 번씩 독하게 올라오는 냄새에 숨을 멈추기도 했으니 말이다.

     

  접착제 설명서는 1분 정도 말려야 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나의 공업적 판단으로 2분 이상 넉넉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았다. 이는 접착제 밀도와 두께, 그리고 날씨와 온도에 따라 붙일 시간이 다르기에 반드시 1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접착제를 바른 면이 뿌옇게 변해갈 때, 나는 뒷굽과 고무창을 천천히 잡아 들었다. 아끼는 고급 핸드폰에 필름 붙이듯 정밀하게 갖다 대고 꽉 눌렀다.


  “후아” 제일 어려운 공정이 끝났다. 반듯하게 한 번에 붙이는 것이 주 작업이기 때문에 삐뚤어지면 곤란해진다. 뗐다가 다시 붙이는 건, 접착제의 수명이 반토막 날 정도로 큰 손상을 입기에 그만큼 흔들림 없는 정밀 작업이 필요했다.      

  붙여놓은 고무창을 고무망치로 두드리면 좋지만, 우리 집엔 쇠망치도 없는데, 고무망치가 있을 리 없다. 적당한 걸 찾다가 밀가루 반죽 밀대방망이가 있어 밀대로 뒷굽을 때렸다. 0.1%라도 공기가 들어간다면 걸을 때 무게 때문에 공간이 생겨 점점 벌어져 떨어지기에 공기를 뺀다는 느낌으로, 여러 차례 두드렸다.

  우리 아가씨가 다시 편하게 예쁘게 신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마구마구 때렸다.      

  신발의 원형이 있어 아무렇게 눌러 놓으면 구겨져 안 되기에 종이 뭉치를 신발 안에 넣고 고무줄로 압박 고정했다.


  세계적인 고무 밑창회사. 비브람창을 덧대 미끄럼 방지는 물론 쿠션 작용으로 인해 소리가 흡수된다. 또 키가 5mm 커지는 효과와 더불어 발걸음이 가벼워져 이동속도가 좋아져 작업능률도 상승한다.. 더 붙이자면 이로 인해 삶의 질도 향상될 거로 기대한다.

  ‘체감하는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지만, 착용감은 확실히 차이가 나겠지’     


  다음날 오후 완성의 기쁨일지 초라한 실패일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걱정을 하면서 고정해 놓은 고무줄을 깨질까 봐 조심히 풀었다. 실패가 될 수 없다고 미리 굳게 믿고 있었기에, 기대했던 대로 빈틈없이 잘 붙었다.   공장에서 완벽하게 가공되어 나온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흡족했다. 검은색 구두에 빨간색 밑창이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검정과 빨강은 내가 볼 때 반감의 색은 아니다. 오히려 프리미엄 명품구두 밑창에 붙는 신발처럼 특별해 보였다.     

  뒷굽 덧대기를 끝내고 나니 고무 밑창 붙이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시간 나면 헌 운동화와 구두, 죄다 붙여보고 싶다. 단순한 덧대기의 완성품이 이리 즐거울 수 없다. 무엇보다 내가 정성껏 만들어 낸 것이, 말이 아닌 꽉 찬 만족으로 뿌듯해졌다.

  앞으로 ‘고무 밑창만 교체한다면 반영구적 신발도 제작 가능하리라. 

“하하하” 

  완성된 구두를 닦아 신발장 아래 현관에 가지런히 놓았다. 구두가 방글방글 웃는다. 신발 주인도 구두를 기쁘게 되찾길 바라면서, 밤일하는 나는 우리 아가씨가 들어오기 전에, 출근을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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