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퍼스널 브랜딩 디렉터
이름 : 이진선
하는 일 : 디자이너, 퍼스널 브랜딩 디렉터
브런치 주소 : https://brunch.co.kr/@jin-lab
독서 → 낮잠 → 마트 → <한달라이브톡> → <한달> 질문지 세팅 → <한달 6기> 준비 → <한달전화인터뷰> 관련 전화
<한달>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평소였으면 회사 일도 있었을 텐데 쉬는 날이어서 그랬나 봐요. 회사 일을 안 할 때는 <한달>만 해요.
책은 언제 읽어요?
책을 읽는 것도 <한달>에 포함되어 있어요. 저는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책을 읽거든요. 항상 책 읽는 목적이 분명해요. 요즘 책을 읽는 카테고리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자기발견 콘텐츠를 찾고 더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 책을 읽고, 두 번째는 <한달> 커뮤니티를 키우고 싶어서 사업 관련된 책을 읽고 있어요.
단순히 흥미로 책을 읽는 경우는 잘 없나요?
일과 관련이 없는 흥미를 말하는 건가요? 제 관심사는 항상 일밖에 없어요. 일과 관련해서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재미로 읽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단순해서 한 가지밖에 못 해요. 사람마다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고 우선순위가 다른데, 저는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중요해서 다른 건 없었어요. 여행도 잘 안 가고 친구도 잘 안 만나고. 그래서 남들이 볼 때는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저는 재미있지만요. 못하는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은 잘하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다른 부분에서도 삶의 재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해요.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사람들도 만나고 놀러도 가야겠다고요.
언제 처음 글을 썼어요?
9월 28일(2017년)에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어요. 제 생일 전날이었거든요. 브런치 서랍에 글 두 개를 써놨었는데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반년 정도 발행 안 하고 있다가 결심했어요. 생일이니까 한 번 오픈해보자. 다음 날 '3색 볼펜으로 거침없이 더럽혀라'라는 글이 카카오 채널에 올라갔어요. 알람이 계속 울리는데 브런치에서 생일 선물을 주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후로 글을 2개 더 쓰고 안 썼어요. 작년 7월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예요.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책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거에요?
원래는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 브런치에서 연재하고 있는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이라는 테마로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일하는 아는 분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대중성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명한테 들은 게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들었어요. 디자이너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다가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출판 시장 안에서 파이가 작다고요. 그래서 아무리 잘 써도 힘들다고. 스타 디자이너가 써도 팔릴까 말까 한데 저는 유명한 디자이너도 아니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제 글에 자신 있었거든요.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먼저 대중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글을 써서 인지도를 높여야겠다 판단했어요. 그래서 시의성이 없는 독서법에 대한 글을 썼어요. 글을 쓰는 동안 반응이 괜찮았지만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글이 따로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써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시간이 2년 정도 지난 거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디자인 관련 글을 썼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어요.
디자인 글을 올린 건 작년이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하신 거네요.
네. 저는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때는 아는 게 없으니까 쓸 수 없잖아요. 연차가 쌓이면서 글감을 조금씩 축적해왔어요. 일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잖아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많고, 왜 이렇게 일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요.
일하면서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질문을 모아뒀거든요. 이제는 그 질문에 답을 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일할 때 옆에 있는 디자이너들한테 얘기를 많이 해주는데 한 명한테만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말하면서도 아쉬운 거예요. 분명 이 친구처럼 궁금해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요. 더 많은 사람한테 얘기하고 싶어서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단지 디자이너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기획자 막내들과 친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든지 분야를 넘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 본질적인 얘기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테니 예전에 출판사에서 들었던 얘기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도가 생각을 만든다>
"내 눈에는 이 많은 시안들이 전부 하나처럼 보여. 방향성이 없잖아. 고객은 언제나 선택하길 원하거든. 계속해서 스킨만 갈아 끼운다고 통과될 리가 없지. 디자인이 단지 예쁜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큰 방향을 설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지금처럼 작업자들만 고생하게 돼."
원문 : https://brunch.co.kr/@jin-lab/40
고객은 선택하길 원한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요?
여기서 고객은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을 말해요. 돈을 주고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까다로워지기 마련이거든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으면 내가 돈을 주고 사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손에 쥐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2-3개라도 선택지가 있으면 내가 원해서 선택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글에서 얘기한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디자이너들이 시안을 여러 개 가져가긴 했는데 방향성이 없었어요. 시안은 여러 개인데 고객의 눈에는 하나로 보이는 거죠. 시안마다 방향성이 확실하게 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고객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해요.
설 프로모션이었는데 명절 시즌에는 마트 매출이 평소보다 훨씬 높거든요. 엄청 중요해요. 그런데 시안에 설이라는 글자를 크게 쓴 다음 예쁘게만 꾸며서 고객에게 가져간 거에요. 시안 마다 장식적인 부분만 달랐어요. 스타일만 다르고 방향성은 결국 똑같은 거잖아요. 고객 입장에서는 스타일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거든요. 회사의 주력 제품을 어떻게 많이 팔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예쁘게 꾸밀 것인가만 생각해서 가져가니까 고객은 만족할 수 없었던 거죠. 디자이너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에요.
<목소리를 잃어버린 디자이너의 말하기>
속으로만 삼키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두려웠지만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원문 : https://brunch.co.kr/@jin-lab/22
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자유를 느끼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어려움, 아픔이 있단 말이에요. 숨기는 사람이 있고 드러내는 사람이 있어요. 숨기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안 보이지만 내 눈에도 안 보이잖아요. 안 보인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그 고통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요.
작년에 공개 스피치를 했는데 준비하면서 스크립트를 썼어요. 글을 쓰면서 제 눈으로 계속 제 이야기를 보잖아요. 매일 반복해서 마주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너무 익숙한 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졌어요. 하라 켄야의 <백白>이라는 책이 있어요. 흰색에 관해서 쓴 책인데 '미지화(未知化)'라는 단어가 나와요. 같은 대상도 깊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예요. 익숙한 대상인데 계속 주시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낯설게 보이는 거죠.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양면성이 있는데요. 제 약점을 나에게서 완전히 분리시켰다는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내 삶에 완전히 포용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안 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평생 함께해야 할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내 이야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렇게 객관화됐어요.
그전까지는 제 목소리와 관련해서 친구나 직장 동료와 대놓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저랑 얘기하면 당연히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알잖아요. 그렇지만 암묵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하지 않은 거죠. 스피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갔고, 그 경험을 글로 썼어요. 지인들에게 제 글을 보냈는데 공개적으로 말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해 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너무 차가워>
실리콘밸리에 99%를 위한 자리는 없다
크고 유명한 회사,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팀, 상위 1%의 틈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박탈감과 무력감 그리고 소외감을 동반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멋진 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있다 해도 소수이며 나에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을 거라며. 5-6년 전의 내가 패티의 글을 읽었다면 그가 리드와 함께 넷플릭스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한껏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사이 나는 달라졌다. 나와 잘 맞는 동료들과 팀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내가 관심 있게 바라보는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위 1%에게 집중했던 시선이 이제는 최고의 팀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99%에게 향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소박한 현실에 더 마음이 쓰인다는 얘기다.
원문 : https://brunch.co.kr/@jin-lab/45
관심 있게 바라보는 대상이 1%에서 99%로 바뀐 이유가 있어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처음 디자인을 시작할 때 야망이 있잖아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 재능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7~8년 차가 될 때까지도 디자인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세상에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특히 저랑 똑같이 시작했는데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승진도 잘했어요. 같은 에이전시에 있는 친구들도 저보다 먼저 팀장이 되는 걸 봤고요.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도 많고요.
큰 회사에 가고 싶어서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험도 하고 스펙 관련된 부분에서 박탈감을 많이 느꼈었어요. 이 모든 게 상위 1%를 바라보고 사는 삶이잖아요. 전체 디자이너 중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숫자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데 그것만 정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시간이 흐르고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내 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서 관점이 달라졌어요. 스펙이 좋은 디자이너만 훌륭한 디자이너가 아닌데, 좋은 학교나 유명한 회사에 다니지 않은 디자이너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없는 건가? 이런 의문이 생긴 거죠. 스스로 증명해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저의 강점은 사수가 바로 옆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알려 주는 듯한 친근감이거든요. 상위 1%가 아니라 소외된 99%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99% 중에서도 특히 어떤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요?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요.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어린 사람은 아니거든요. 20대는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30대, 40대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많단 말이에요. 지금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없잖아요. 요즘에는 40대에도 은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일을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조직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회 전반적으로 은퇴 시기가 너무 빨라지고 있어요. 디자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찍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건 마찬가지에요. 앞으로의 사람들은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될 텐데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자기발견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환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모색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구덩이는 내가 다녀 본 곳 중 가장 평온한 회사에서 불현듯 찾아왔다. 직전에 다닌 회사는 힘든 곳이었다. 다니는 동안 무리하게 일을 많이 해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도 상당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번아웃(Burnout)을 경험했다. 퇴사 후 나는 마치 보상이라도 받기 위해 작정한 사람처럼 이전 회사와 모든 면에서 반대인 회사를 찾아 입사했다. (중략) 카페테리아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 일 년을 보낸다면 어떨까. 2년을 보낸다면, 그리고 3년을 보낸다면 분명 지금처럼 여유롭고 평온하겠지? 와... 나는 참 평온한 구덩이에 앉아 있구나.'
원문 : https://brunch.co.kr/@jin-lab/26
평온한 회사 생활이 왜 힘들었어요?
디자이너가 많지 않은 회사였어요. 직원이 300명인데 거의 개발자고 디자이너가 7명이었거든요. 대표님이 개발자 출신이라서 개발자의 근무 환경을 향상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복지도 좋았고 일정도 느슨하게 줬어요. 에이전시는 사이클이 빠르게 돌아가거든요.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게 기본인데 여기는 시간의 흐름이 완전 달랐던 거죠.
내가 원하면 계속 다닐 수 있는 회사였지만 저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면 불안해지거든요.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처음 3개월 정도는 좋았지만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었던 거죠. 여기서 1년, 2년 있으면 분명 디자인 실력이 엄청 줄어들 테니 그만두게 됐고 더이상은 정규직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로 프리랜서를 하신 건가요?
네. 그 회사가 정규직으로 일한 마지막 회사였어요.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몸도 많이 안 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전에 있던 회사랑 완전히 반대되는 곳에 갔던 거예요. 모든 면에서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간 건데 거기서도 만족을 못 하니까, 회사를 옮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정규직으로 들어갈 때마다 계약서를 쓰면서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떤 회사를 가던지 '내가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규직은 '언제까지'라는 게 없잖아요. 그게 저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구속받는 느낌도 들고요. 그걸 십몇 년 동안 했으니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 후로는 계속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훨씬 마음이 편해요. '이때까지 일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게 되요.
보통은 잘릴까 봐 불안해하잖아요. 너무 오래 다니고 싶지 않아서 불안한 건가요?
제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잘릴까 봐 불안해하는데 저는 계속 다니는 게 걱정인 거예요. 회사마다 들어가는 목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 들어간 회사도 있고 디자인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배우려고 들어간 곳도 있는데, 목적이 달성되면 더 이상 그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는 거예요.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못 참는다고 했잖아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지금의 나와 1년 후의 내가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져요. 아까 말한 정규직으로 일했던 마지막 회사에서 그랬어요.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해서 1년 후의 내가 나아질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40대가 되면 분명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 때 이 회사를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미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퇴사하고 전과 반대로 연봉 높고 야근 안 하고 편한 곳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도 내가 성장할 수 있을까,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드는 거예요. 몸을 혹사시켜야만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요.
에이전시의 업무 환경이 문제인 것도 있어요. 요즘은 많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요. 조금 더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있으면 에이전시 다니는 것도 괜찮거든요. 회사도 힘든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대표님들도 힘들잖아요. 사실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얽혀있어서 개인이 해결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게 문제의식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성장해서 나중에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은 어렵지만.
저도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나 혼자 잘나서 돈을 많이 벌게 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오리지널스>라는 책을 보면 그런 내용이 나와요. CIA라는 조직 안에 있는 사원이 그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거예요. 근데 바꿀 수가 없잖아요. 문제 의식을 가슴 속에 품고 노력해서 영향력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요.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자기편을 많이 만들어요. 자신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경력이 쌓이고 나이를 먹으면 그런 마음을 잊어버린단 말이에요. 그런 마음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두려운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먹고 살만해져도 소리를 낼까.
할 수 있어요. 저는 매일 매일 다짐했거든요.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해요.
<멘토는 어디에 있는가>
때때로 10대의 나, 20대의 나, 30대의 나, 이 세 명이 모여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들은 너무 다르면서 또한 너무 비슷하다. 시간을 초월해 여러 명의 내가 이야기하는 모습은 즐겁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며,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 “어때? 상상했던 모습이랑 비슷하니?” 서로에게 제법 기특하다는 칭찬을 하는 중에 또 한 명의 멘토인 40대의 내가 참석한다. 미래의 나는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녀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원문 : https://brunch.co.kr/@jin-lab/10
진선 님이 그리는 40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년에 <한달>을 만나서 삶의 전환점에 서 있거든요. <한달>을 우리나라 최고의 커뮤니티로 만드는 게 목표에요. 자기발견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파생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걸 퍼스널 브랜딩 디렉터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것이고요. 그 역할을 하려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야 해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리고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나 같은 사람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요즘 똑똑한 친구들 많잖아요. 미래를 그릴 때 특정 회사의 간판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제시해주고 싶어요. 저는 지금 다른 디자이너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잖아요. 새로운 길을 하나 만들어주면 후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거니까 그런 역할도 하고 싶어요. 디자이너들이 좀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40대에는 더 바빠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30대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거니까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40대에는 하고 싶은 거 맘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한 느낌은 어때요?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얘기를 브런치를 통해 일방적으로 쓴 거잖아요. 직접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없으니까 내 얘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 건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동안 혼자 말한 게 아니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의미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 사람들한테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많이 했지만 저에게 질문해서 얘기한 경우 보다는 제가 먼저 가서 얘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아무리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듣고 지나치면 끝나잖아요. 말은 사라지기 때문에 글로 기록해서 많은 사람한테 보여줘야겠다. 그러면 한 명이라도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1. 징검다리의 첫 번째 돌에서 열다섯 번째 돌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 답답했던 날들, 남들과 비교하며 느끼던 박탈감, 건강이 크게 나빠진 경험 등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이미 오래전에 거쳐오셨다. 인터뷰 후에도 디자인과 삶에 관해 진선 님과 많은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2. 디자이너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보는 시야와 생각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었다.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앞으로 쌓아나갈 시간은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