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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an 14. 2021

주변인탐구일지#12 형준님

마케터

<주변인탐구일지>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탐구하기 위한 인터뷰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혹은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궁금한 걸 마음껏 물어보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저의 즐거움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전형준이고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처음 해봐서 되게 설레요. 제가 누군가를 인터뷰했던 경험은 많은데 반대는 처음이에요. 누가 저한테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주는 자체가 너무 좋아요. 관종끼가 있나 봐요.


인간은 모두 관종 아닐까요.(웃음)

맞아요. 관종의 정도가 다를 뿐.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0년이 이틀 남았어요. 기분이 어때요?

진짜 1년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르겠어요. 1년 전 이맘때하고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이 상태가 꾸준하지 않을 걸 알고 있어서 늘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왜 지금 상태가 꾸준히 갈 것 같지 않아요?

작년에 신장 이식을 받았거든요. 이식받은 신장도 수명이 있어서 언젠가는 제 역할을 못 해요. 그때는 다시 이식을 받던지 투석을 받아야 해요. 신장 관리가 중요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런데 저의 노력과 상관없는 경우도 있고 결국에는 하늘의 뜻인 것 같기도 해요.


평균적으로 몇 년 정도 가요?

15년 정도로 알고 있어요. 평균이라는 게 나이 든 사람도 있고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편차가 커요. 관리하기 나름이긴 한데 오래 써야죠. 저는 30년 정도 유지하고 싶어요. 그때쯤에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보통은 어떤 방법을 많이 택해요? 이식을 하나요?

이식이 쉽지 않아요. 가족한테 받는 게 첫 번째 방법이고 그게 안되면 병원에서 장기기증을 받아야 해요. 장기기증을 신청한 사람들한테 받는 건데 뇌사자 기증이거든요. 길게는 10년씩 기다려야 해서 대부분은 투석을 받아요.











1년 전

나의 모습



작년 투석받을 때 사진

작년 이맘때는 어떻게 지냈어요?

1월 1일이 수요일이었을 거예요. 당시에 월수금마다 투석을 받았거든요. 늘 똑같이 일어나면 병원 가서 투석 받았어요. 회사 일도 그만뒀을 때라 신장 이식 수술 받을 날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았죠.


그때 자주 한 생각 있어요?

생각이 오락가락했어요. 어느 날에는 어차피 이식받을 거니까 1년 쉬면서 자기계발도 하고 그러면 더 나은 곳에 갈 수 있겠지 싶기도 하고요. 어느 날에는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싶어서 우울해하기도 하고요. 남들은 회사 다니고 잘 놀고 여행도 다니는데 나는 왜 병원에서 네 시간 동안 이렇게 누워있는 거지 싶었어요. 열심히 하면 뭐하나 싶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우울한 생각에 빠질 때는 어떻게 했어요?

당시에 친구들이 응원해주고 좋은 말 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실 우울감에 빠졌을 때는 방법이 없어요.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죠. 제가 아버지한테 신장을 이식받았거든요. 아버지를 향한 감사함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겨냈던 것 같아요.











일의

중요도



아픈 후에 삶에서 일의 중요도가 달라졌어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이제는 일을 위해 건강까지 투자하고 싶지는 않아요.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는 다 그렇잖아요. 설레기도 하고 진짜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에 열정이 넘치잖아요. 어차피 10시에 집에 갈 거니까 9시에 출근하나 9시 반에 출근하나 상관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마인드가 생기니까 야근을 참 많이 했었어요. 아프고 나니까 그렇게 일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가끔 필요할 때는 하겠지만 반복되는 야근을 참아가면서까지 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프면 다 끝이니까요.


부질없죠.

맞아요. 부질없어요.


야근을 떠나서 성장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커요?

그렇죠. 일을 짧은 시간에 끝내려면 더욱 전문성을 키워야 해요. 아는 것도 많고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야 집에 빨리 갈 수 있더라고요. 회사를 안 다니는 동안 강의도 많이 듣고 공부도 많이 했거든요. 자기계발은 언제나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마케터로

산다는 것



형준님이 회사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에서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건 진짜 고민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우선 마케팅이라는 업무가 제가 정말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인지 고민돼요. 마케팅이라는 분야로 쭉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예요.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은 아니니까요. 그냥 뭐랄까... 자극적인 도파민을 만들진 못하는 느낌?


마케팅 일을 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6년쯤 된 것 같아요. 2014년부터 일을 했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네요.


일을 시작한 지 6년이 넘었는데 지금 고민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예전의 저는 지금이랑 달랐어요. 에이전시에 입사해서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경력 쌓아서 인하우스 가고 다음에 큰 회사로 옮기고 이런 걸 꿈꿨었어요. 에이전시에 다니다가 마케팅을 더 잘하고 싶어서 이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프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꼬여서 퇴사하게 됐죠.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스터디하고 사이드 프로젝트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 하면서 마케팅보다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하나의 서비스가 사업성을 띠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이런 걸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거든요.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다 같이 모여서 여러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좋았고요.


마케팅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맞는 것 같아요?

계속해왔던 일이니까 방법을 아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할 때는 이런 식으로 고민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요. 그런데 마케팅하는 사람들을 줄 세웠을 때 제가 어디쯤 위치할지 생각해보면 미약한 존재일지도 모르죠.


새로운 회사 명함이 나왔어요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느껴지지 않아요?

그걸 알기 위해 주도적으로 일해서 성과를 내보고 싶어요. 에이전시 경험을 제외하고 그런 경험이 없어서 아쉬워요. 스타트업을 다닌 적이 있는데 성과를 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이번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매출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프로젝트 목표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매출 성장률일 수도 있고 고객 수일 수도 있고 브랜딩 결과물일 수도 있어요. 하나의 끝을 맺어서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는 결과물을 받아보고 싶어요.


마케팅 일 자체가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는 일이잖아요. 성과를 낸 경험은 많지 않아요?

맞아요. 에이전시에 있었을 때는 KPI라는 게 있어서 그걸 달성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그건 저 혼자만의 결과물은 아니잖아요. 광고비의 영향일 수도 있고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힘일 수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LG나 삼성 등 대기업하고만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한 거죠. 이미 브랜드 자체가 유명하니까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진짜 제로베이스인 곳도 있고요. 그런 곳에서 성과를 내보고 싶어요.











내가 가진

재능



펭귄시리즈를 그렸었어요. 펭수 뜨기전에!!

원하는 재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 가지고 싶어요?

잘 생기는 재능(웃음)


진짜요?(웃음)

제가 지금 직업이 마케터니까 갖고 싶은 재능은 그런 거 있죠. 창의적이고 우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싶은 능력이요. 제가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두 명 봤어요. 우와 저런 생각은 못 하겠다 싶고 진짜 멋있더라고요. 내가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겠다 싶은 사람들이었어요. 이건 노력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참 부러웠어요.


이런 뮤지컬도 했어여

형준님은 어떤 재능을 가진 것 같아요?

재능? 그러게요. 제가 가진 재능이 뭘까요. 현타 오네요.


특출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들 있잖아요.

글을 꾸준히 써요. 그리고 새로운 취미를 잘 즐겨요. 뮤지컬이나 그림 그리기 같은 것들이요. 뭐 있을까요 또 재능이...


제가 말해드릴게요.

그거 할게요.(웃음) 말해주시면 저의 재능으로 삼을게요.


형준님은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좋은 것 같아요. 쉬운 단어로 감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요.

그렇게 쓰고 싶어서 썼는데 그렇게 읽어주니까 참 좋네요. 과하지 않게 불편함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느껴요.

맞아요. 그게 그렇네요. 스스로는 잘 모르는구나. 항상 비교를 뛰어난 사람하고 하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저는 브런치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글은 잘 쓰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형준님 글 좋다고 자주 말했잖아요. 믿어보세요.(웃음)

믿을게요. 저는 글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정식 기자는 아니지만 일종의 기자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주변에 기자 입사 준비해서 입사한 분을 봤거든요. 그 정도로 고민하고 공부해도 기자가 될까 말까인데 어디 가서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이야기하기가 민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쵸. 자만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누군가는 형준님의 글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좋네요. 어디 가서 그렇게만 얘기해야겠다.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요.


좋은 글의 기준은 결국 나한테 있잖아요. 제가 유명한 작가의 글보다 형준님의 글을 좋아하면 저한테 좋은 글은 형준님의 글인 거니까요.

맞아요. 그렇게 얘기 들으니까 제가 방금 한 말이 의미 없는 것 같네요. 누가 저한테 물어보면 저도 똑같이 얘기할 것 같아요. 나는 네 글이 되게 좋아서 네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고요. 자신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어요.











좋아한다는

기준점



나이가 들면 이전만큼 순수하게 사랑하기 어렵다는 말에 공감해요? 반대해요?

그건 각자의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 중에 아직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친구는 누군가를 만날 때 여전히 순수하거든요. 굉장히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좋아해요. 반면에 어떤 친구는 누구를 만나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어요. 자신이 겪은 경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형준님은 어때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막 설렐 때도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좋아하겠지만요. 그 고민을 하거든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좋아한다는 기준점은 뭘까? 내가 얼마나 좋아해야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사귄다는 개념을 갖기 위한 좋아함의 정도는 어느 정도지?


저도 그 고민 많이 해요.

제가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을 때나 상대방이 저한테 호감을 보일 때 큰 고민 않고 자연스럽게 만난 경우가 많았거든요. 서로 알고 난 지 얼마 안 됐어도 마음에 들면 연애를 바로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연애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까 내가 정말 진지하게 좋아할 때만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귈지 말지 쉽게 결단을 내리면 안 되겠다고요.


좋아한다는 기준은 진짜 헷갈려요. 미칠 정도로 좋아해야 좋아하는 건가.

저는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랑 같이 살게 된다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봐요. 그것도 있어요. 내가 이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여자에게 눈을 안 돌릴 자신 있을까.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고 느끼면 저는 그 사람과 만날 것 같아요.











내일에 대한

기대감



작년 홍콩과 마카오를 갔을 때다. 문득 아침에 눈을 떴는 데, 잠깐 홍콩 에어비앤비했던 그 집 침대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 지, 어디를 갈 지 고민하고. 마음 한켠으로는 오늘의 이 시간이 가장 천천히 가길 바라며 문 밖으로 나가겠지. 처음으로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오롯이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만 다녔던 날이었다.

원문 : https://brunch.co.kr/@fiveio27/23


글을 읽는데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서 설렜어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서 설레요. 그날의 도시에서 나오는 향기, 공기 다 기억나요. 날씨랑 장면도요. 가끔 생각해요. 한 번만 더 그 시간을 보내봤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너무 그립죠. 그리워요.


지금 여행 가면 못 느낄까요?

나름대로 새로운 감흥도 있고 좋겠지만 그 시간하고는 다를 것 같아요. 회사 다닐 때는 휴가 가도 일 고민, 미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가 처음으로 퇴사하고 간 여행이었거든요. 세 달 동안 매월 마지막 주에 해외로 떠났어요. 특히 홍콩 갔을 때가 너무 좋아서 기억이 정말 많이 나요.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친구랑 동네에서 약속 잡듯이 다음 주에 홍콩에서 볼래? 하고 만났었거든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친구라 더 행복했어요. 진짜 일 생각 하나도 안 하고 '오늘은 어디 가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뭐 먹지?'라는 설렘만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제가 아프다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크게 아프기 전이었거든요. 신장이 안 좋긴 하지만 당장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40~50대쯤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걱정 없이 다녔었어요.


오늘 느끼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은 어때요?

내일은 회사에서 오늘 제가 준비한 걸로 다른 사람들과 미팅을 할 예정이에요. 미팅 결과가 괜찮았으면 좋겠고 빨리 결정이 나서 다른 작업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잘될 것 같기도 해서 기대감이 있네요. 이런 거 보면 지금 회사가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퇴근하고도 자연스럽게 일 생각하잖아요. 좋은 거 아닐까요.


같이 일하는 만수에요 ㅋ_ㅋ

자신을 설레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어요? 귀여운 것도 좋고요.


아 귀여운 거 완전 좋죠. 회사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너무 귀여워요. 설레는 거... 누가 이렇게 저 칭찬해줄 때 되게 좋고요. 또 연락 안 하고 지내던 친구들한테 가끔 잘 지내냐고 연락 올 때 좋아요. 그리고 어느 장소를 지나가다가 과거에 지나갔던 모습 생각할 때. 그때는 이런 생각 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 하면서 살고 있네 할 때 설레면서 기분이 묘해요.



여기서 더 많은 만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고 싶은 일



논문제목 완전 재밌겠죠 후후

돈 걱정이 아예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돈 걱정이 없으면 저는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했을 것 같아요. 석사하고 박사하고 최종적으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수도 해보고 싶고요. 석사 공부했을 때 재미있었어요.


또 원하는 삶의 모습 있어요?

그 돈을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창업할 것 같아요. 목표가 있는데요. 저는 돈이 많으면 장애인들을 고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연봉 받으면서 사회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저 스스로가 아프기도 하고요. 특히 투석을 받아보니까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더라고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투석하는 시간만 생각하면 일주일에 3번, 4시간만 받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투석을 받고 나면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다음날 출근해서 7~8시간 근무를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시간도 여유 있게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병원에 3시에 가서 7시에 투석을 받아야 할 때도 있어요. 환우 카페가 있는데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병이 보통 40~50대에 일어나요. 특히 저처럼 어린 나이면 먹고 사는 거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거든요. 사람들이 돈에 대한 걱정 없이 병을 잘 치료 받으면서 일도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대한

생각



일회용카메라로 찍는 감성 좋아해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그냥 오늘처럼 평범한 삶을 살면 좋겠어요. 오늘은 몸에 대한 의식 없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출근하고 퇴근해서 밥 먹었거든요. 미래 생각도 하고 나중에 뭐 할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아플 때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계속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고,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오랫동안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건강할 겁니다.

70까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농담처럼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거 있잖아요. 게임 지면 죽어야지 이런 뉘앙스. 그 말을 자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죽을 거면 장기기증 신청하라고 했거든요. 너의 신장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요. 오래 살아야 돼요. 죽는 게 좋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주변에서 오래 살 거라고 건강할 거라고 이야기해줘서 좋아요. 기운을 많이 얻어요. 하나하나에 엄청 예민하거든요. 몸이 약간 부은 것 같은데.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혹시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걱정될 때가 많아요. 무서워요 사는 게.


무서울 것 같아요.

맞아요. 환우 카페에 종종 들어가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엄청 많아요. 태어나자마자 신장이 안 좋아서 이식받는 아기도 있고요. 이미 시각 장애가 있는데 신장이 안 좋아서 이식받는 친구도 있어요. 근데 피아니스트가 꿈이라 아픈 와중에도 피아노를 배우고 쳐요. 대단하지 않아요? 처음에 그거 보고 친구랑 엉엉 울었어요.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요. 그리고 나는 또 뭐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냐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가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진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얻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매슬로의 욕구를 보면 자아실현 욕구가 맨 위에 있잖아요. 그런 것도 다 욕구지 않을까요. 하나하나가 충족될수록 높은 단계로 넘어가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안전의 욕구, 건강의 욕구가 충족이 안 되니까 불안한 거고요.

그래서 아까 연애 이야기가 나왔지만 연애하는 게 맞는 지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나를 못 견디겠는걸요. 제가 되게 우울해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될 것 같아서 함부로 못 하겠어요. 2월에 또 검사하러 입원하거든요. 누군가를 만나던 이런 이야기밖에 할 수 없어요. 내 몸 상태가 어떻고, 입원할 거고, 검사할 거고... 서로가 행복할까요? 저는 술도 못 먹고 8시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어요. 저를 만나려면 얼마나 이해해줄 게 많겠어요.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요. 요즘은 바뀌긴 했지만 주로 남자가 가장의 역할을 맡아서 돈을 버는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만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저를 만나는 걸 반대할 수도 있고... 쉽지 않아요.


깊이 생각해보셨군요.

그쵸. 저도 가끔은 되게 연애하고 싶은데 도저히 정상적인 연인관계가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더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있어요. 당장 연애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소개팅도 굳이 안 하려고 하고요. 내 일이 아니면 다들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면 만날 수 있다고요. 근데 당사자가 되면 다른 일이거든요. 흔히 말하는 사랑으로 쉽게 안 되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정말 많아요. 환우 카페 보면 아픈 거 때문에 헤어지기도 하고 연애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것도 하나하나 받아들여야겠죠.


결혼까지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게 또 얼마나 상처가 되겠어요. 연애를 했는데 막상 결혼 이야기가 나오니까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저도 상처받잖아요. 어려운 문제예요.


형준님이 힘든 부분을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네요.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현실을 겪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힘든 걸 어떡해. 아픈 걸 어떡해. 몸 상태에 따라 마음가짐이 엄청 달라져요. 그래도 지금은 컨디션이 괜찮으니까 의지도 생기고 열심히 하거든요.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요.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으면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우울이 올 때가 있어요. 아버지가 신장을 주셨으니까 이겨내려고 노력은 하지만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마음이 정말 힘들어져요. 멘탈을 잘 유지하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워요. 이 신장이 수명을 다하는 날에 내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욕심이기도 한데 그래서 더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으면 좋겠고 가족이 있으면 좋겠고... 그럼 버틸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힘을 내야지 하고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강해지잖아요.

맞아요. 지금은 그게 가족이지만 나중에 온전히 혼자서 감당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내가 스스로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하고요. 힘내야죠.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한 느낌은 어때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중간중간 공감해주시고 제 글도 읽어주시고 그거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것도 너무 좋았어요. 글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했다고 막 자랑해야지.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가 쓴 글을 한 번씩 읽는데 형준님 글은 두 번씩 읽은 글이 많아요. 또 읽고 싶은 글이라서.

두번이나요? 신기하네요. 왜 그렇지. 뭐가 매력이죠.


라떼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형준님 글은 부드럽고 잔잔한 라떼 같은 느낌이에요.

쓰지도 않고.


네. 자극적이지도 않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죠. 좋네요.











당신의 특별함



형준님의 글 중에 특별함에 관한 글이 있다.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각자에게는 특별함이 있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재능을 잘 모르겠다는 형준님에게 막상 형준님은 자신의 특별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형준님은 스스로를 고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답했다. 맞다. 내 눈에도 타인의 특별한 점은 잘 보이는데 정작 나의 특별한 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눈에는 너무 잘 보이는 형준님의 특별함을 글로 적어보기로 했다.


형준님은 말하기와 글쓰기 모두 능하다. 이렇게 두 가지 다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인터뷰 녹음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신뢰감을 주는 동시에 부드럽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느라 같이 회의할 일이 많았는데 형준님은 내가 어릴 때 생각하던 어른 같은 느낌이다. 진행이나 발표하는 걸 들으면 드라마에 나오는 일 잘하는 본부장님이 떠오른다. 이런 모습과 달리 친해진 후에는 귀여운 어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장난을 잘 치고 작은 것에 쉽게 들떠 한다. 그럴 때면 어릴 때의 형준님을 만나는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평소에 남들의 장점을 자주 발견하고 마음속에 꼭꼭 저장해둔다. 부끄러워 하나하나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날이면 나에게 연락해주기를. 최소 10개 이상의 장점을 줄줄 읊어줄 자신이 있다. 나는 몰래 당신의 특별함에 순간순간 감탄하고 있으니까.






인터뷰 날짜 : 2020.12.28 10:00 PM

장소 : Zoom 회의실

인터뷰이 : 전형준

인터뷰어, 글 : 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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